자오나눔 2007. 4. 28. 00:35
 

보름 남짓 교통사고로 입원해 있었다. 병원장과 환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장애인 복지와 노인 복지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었다. 내가 하고 있는 사역 중에 장애인 시설을 운영하고 있음을 알게 된 원장님은 관심이 많았다. 당신의 아이도 장애인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자주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를 바랐다. 겉으로 행복해 보인다고 진짜 행복한 것은 아니라고 했지 않는가. 이 세상 어느 집에 가서 근심 걱정 없는가 물어 보라고 하지 않았는가. 어느 집에나 근심 걱정은 다 있는 법이라고…….


갑자기 양로원에 계시는 할머님들이 생각났다. 병상에서 양로원으로 전화를 드렸다. 목사님이 받으신다. 양로원을 재건축하고 있는데 겉에 붉은 벽돌을 쌓는 중이란다. 몇 달 동안 양로원에 소원했음을 생각했다. 할머님들께 미안했다. 퇴원하면 한번 찾아뵈리라 생각했다.


퇴원을 하던 날, 아내는 퇴원수속을 하고 나는 물리 치료를 받았다. 행사에 사용할 현수막을 주문해 놓고 양로원으로 차를 달린다. 운전하는 아내와 조수석에 탄 난 봄나들이 가는 기분이다. 비포장도로에서 아스팔트 포장 도로로 변한지 이제 몇 개월, 차를 달리는 기분이 난다. 구불구불 시골길이라 구경할 것도 많다. 오래된 정미소가 보인다. 내가 밀어도 무너질 것 같은 정미소이지만 여전히 그 자리를 지켜주며 농부들의 구슬을 보석으로 꿰어주고 있는 정미소다. 나락이 하얀 쌀로 변해 나오는 정미소의 풍경이 정겹지 않는가.


양로원에 도착하니 공사가 한창이다. 멋진 카우보이모자를 눌러쓴 목사님의 모습이 멋지다. 일단 차에 싣고 간 수박 몇 덩이를 내린다. 양로원 목사님들은 부부가 목사님이다. 최 목사님의 아내 되시는 구 목사님 환갑이 넘으셨는데 공사 하는 인부들 밥해 주느라 많이 지치신단다. 양로원이 멋지게 건축되고 있다고 했더니 우리 자오쉼터를 모델로 양로원을 설계했단다. 그러고 보니 길이가 짧은 자오쉼터 모델이다. 임시로 마련해 놓은 비닐하우스에 들어  갔더니 할머님들이 반갑게 손을 잡아 주신다. 항상 누워계시는 할머님도 여전하시고, 귀가 들리지 않지만 눈치가 빠르신 할머님도 여전하시다. 따뜻한 봄 햇살을 받으시며 공사하는 인부들의 모습을 구경하고 계시는 할머님은 조용하시다. 커피 한잔 끓여 마시며 담소를 나눈다. 내 모습이 아들 같은지 아니면 손자 같은지 마냥 좋으시단다.


할머님 한분이 과도와 작은 바구니를 들고 앞에 있는 논으로 내려가신다. 논에 있는 미나리 뜯어서 우리가 갈 때 챙겨 주시려고 그런단다. 할머님 따라 논으로 내려갔다. 5미터만 내려가면 미나리 논이니 이동하기도 편하다. 미나리 뜯으시는 할머님과 이야기를 나눈다. 특별히 할 말이 없어도 좋다. 내가 한번 말하고 할머님이 두 번 말하게 하고, 할머님의 말씀에 고개 끄덕이며 세 번 맞장구 쳐주면 이야기가 다 된다. 할머님은 마냥 신나셨다. 미나리가 부드럽다며 가져가서 나물 무쳐 먹으라고 챙겨 주시는 할머니. 다른 할머님들과 이야기 나누고 있는 아내에게 집에 가자고 하니 일어선다. 내 모습이 지쳐 보였나 보다.


할머님들과 잠시 보내고 일어서는 시간이었지만 정을 마음껏 느끼고 왔다. 건강 회복하면 다시 자주 찾아 가야겠다. 할머님이 챙겨주신 미나리에서 향긋한 봄 냄새가 차에 가득 풍긴다. 사랑 가득한 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