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 그리고/자유 게시판

당. 신. 멋. 져

자오나눔 2007. 2. 17. 08:48
[중앙일보 정진홍] 크고 작은 모임에 나가면 으레 건배사가 오고 가게 마련이다. 직장 모임, 동창 모임, 동호인 모임뿐만 아니라 가족 모임에서도 건배사가 오간다. 하지만 '건배''위하여' 등의 너무 판에 박은 듯한 건배사는 아쉽다 못해 식상하다. 건배사에도 격이 있다. 건배사는 자고로 TPO가 맞아야 한다. 시간(Time).장소(Place).상황(Occasion)에 걸맞아야 한다.

해 바뀔 때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이 모인 곳이라면 "나이야 가라"라는 건배사를 해 보면 어떨까. 나이 들수록 나이 먹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까짓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할 뿐 나는 여전히 '나이애가라' 폭포를 연상할 만큼 팔팔하다는 의미를 한 자락 깔면서 "나이야 가라!"를 외쳐도 좋을 것이다.

또 한 해를 시작하는 설이니만큼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담은 건배사도 좋을 것이다. 그중 하나는 '시. 미. 나. 창'이다. "시작은 미미하나 나중은 창대하리라"는 뜻을 담은 건배사다. '시. 미. 나. 창'을 스타카토 넣듯 똑똑 끊어서 외치면 더 맛있는 건배사가 된다. 사실 모임에서 건배사를 부탁받으면 대부분의 사람은 쑥스러워 사양하기 일쑤다. 하지만 이젠 그럴 필요 없다. "진하고 달콤한 내일을 위하여"라는 뜻을 담아 다소 수줍은 듯 다소곳이 '진. 달. 래' 하고 건배해도 좋을 것이기 때문이다.

새해 다짐을 담아 건배사를 하는 것도 좋을 듯싶다. 그렇다고 다짐의 변이 장황하면 맛이 없다. '일. 십. 백. 천. 만'이라고 말하면 족하다. "하루에 한 번 이상은 좋은 일을 하고 10번 이상 큰 소리로 웃으며 100자 이상 쓰고, 1000자 이상 읽으며, 1만 보 이상 걷자"는 소박한 다짐을 담은 건배사다.

직장이나 동창 모임에선 "나. 가. 자"라는 건배사도 평범하지만 좋다. 누군가 "나라를 위하여, 가정을 위하여, 자신을 위하여"라는 뜻을 풀어 말한 후 "나가자"를 선창하면 따라서 "나가자! 나가자!"를 함께 외쳐 보라. 절로 흥이 돋고 힘이 날 것이다. 때론 '당. 나. 귀'도 의미 있는 건배사가 될 수 있다. "당신과 나의 귀한 만남을 위하여"라는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동호인 모임에서 새롭게 만난 사람들끼리 나누면 좋을 건배사다.

하지만 '정해년' 최고의 건배사는 역시 '당. 신. 멋. 져'가 아닐까 싶다. "당당하게 살자. 신나게 살자. 멋지게 살자. 그리고 져주며 살자"는 뜻이 담긴 건배사다. 그렇다. 정해년 새해엔 돈에 기죽지 말고, 권세에 주눅 들지 말고, 학벌에 꿀리지 말고 당당하게 살자. 낙하산과 마음은 펼치지 않으면 소용없다. 마음을 활짝 펴고 스스로 격려하며 당차게 살자.

신나게 살자. 신날 일이 없다지만 그럴수록 내 안의 신명을 일깨우자. 우울한 생각일랑 아예 묻어버리고 스스로 박수치며 웃고 소리쳐 보자. 가장이 우울하면 집안도 아이들도 우울해진다. 회사 CEO가 울상이면 그 회사는 결국 망한다. 그러니 힘들어도 스스로 신명을 내자.

멋지게 살자. 옷과 차와 집을 바꾼다고 없던 멋이 갑자기 생겨나지는 않는다. 사람이 멋있으면 뭘 입고, 뭘 먹고, 뭘 타도 그저 멋있어 보인다. 그러니 멋있게 살려거든 먼저 내가 멋있는 사람이 되자.

그렇다면 진짜 멋있는 사람은 누굴까? 때로 져줄 줄 아는 사람이다. 삶은 전쟁이다. 하지만 모든 전투에서 다 이기려고 욕심 부리다 더 큰 전쟁에서 진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러니 때로는 져주며 살자. 그게 더 크게 이기는 길이다.

모쪼록 정해년 새해엔 더 당당하게 살자. 신나게 살자. 멋지게 살자. 그리고 때론 져주며 살자. 그런 "당. 신. 멋. 져!"

정진홍 논설위원 atombit@joongang.co.kr

'나와 너, 그리고 > 자유 게시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마중 갑시다  (0) 2007.03.01
행복해서 활짝 웃는  (0) 2007.02.28
[스크랩] 제사음식에 대한 의미  (0) 2007.02.10
[스크랩] 사도신경  (0) 2007.01.24
[스크랩] 칭찬이 좋은 30가지 이유  (0) 2007.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