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꽃보다/이것이 인생이다

[결혼 이야기] 10. '이것이 인생이다'에 출연

자오나눔 2007. 1. 15. 22:05
신혼여행을 마치고 올라와 열심히 살았다. 선교회 일도 열심히 하고, 교회 생활도 열심히 한다. 선교회를 이끌어 가려면 재정적인 문제도 무시할 수 없었다. 사역은 조금씩 확장되고 있는데 후원금은 오히려 줄어 들고 있었다. 무료급식도 시작했는데 장난이 아니다. 아내와 상의 끝에 포장마차를 하기로 했다. 그 당시 나는 기초생활수급자로 되어 있었기에 우리 세식구 먹고 사는데는 큰 불편함이 없었다. 포장마차를 하려고 하는데 종류가 애매했다. 이익을 많이 남기는 술장사를 하려니 예수 믿고 교회에 나가는 신앙인이 하기가 난감했다. 결론은 호떡장사를 하기로 했다. 장애인이면서도 호떡장사에는 베테랑이신 어느 아주머니께 기술을 전수받는 아내. 사정 이야기를 드리니 호떡 반죽도 잘하는 사람도 소개를 해 주신다. 송내 남부역쪽에서 장사하는 회원 가게 앞에다 포장마차를 차렸다. 초보 호떡아줌마인 아내는 열심히 호떡을 굽는다. 나는 휠체어를 타고 곁에 앉아서 동무를 해 주고... 어떤 날은 호떡굽는 솜씨가 느려서 손님을 놓치고, 어떤 날은 너무 태워서 실패하고... 곁에서 바라보는 내 심정은 편치 않았다. 꼭 이렇게까지 하며 봉사를 해야 하는가 하는 회의감마저 들기 시작한다. 어떤 날은 나가지 않고 사무실에서 내 일만 하고 있기도 한다. 아내는 호떡을 굽기 전에 무료급식 봉사를 했다. 봉사를 마치고 장사를 하고... 그런대로 장사가 되어 가던 중에 노점상 단속은 시작되고, 이런 저런일로 호떡 아줌마는 포장마차를 접는다.

그렇게 살아가던 중에 KBS1 TV에서 연락이 왔다. '이것이 인생이다'에 우리의 사연을 담고 싶다는 것이다. 아내는 절대 반대를 한다. 무슨 자랑거리라고 TV에 출연을 하느냐는 것이다. 내 의견은 달랐다. 방송에 나가게 되면 우리 자오나눔선교회 사역도 알려지게 될 것이고 그만큼 동역자들도 생기게 될테니 무조건 녹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내를 달래고 방송국 PD께 연락을 하여 준비를 한다. 내 간증집을 토대로 하여 주변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극작가는 대본을 썼다. 일주일간 쵤영을 했다. 99년 7월은 무척 더웠다. 더운 여름에 조명까지 비추니 결국 내가 기절까지 하는 소동이 일어 난다. 전신 75% 화상이라 땀구멍이 없어서 열을 발산시키지 못하니, 안에 열과 밖의 열이 합하여 기절까지 하게 된다. 그렇게 촬영을 마치고 99년 7월 29일에 방송된게 '아름다운 동행'이었다. 살면서 별걸 다해 본다.

가게를 한개 얻어서 장사를 해 보겠다며 전세금을 빼서 월세로 돌리고 가게를 얻자고 하는 아내. 그러다가 잘사는 여동생에게 부탁하여 돈을 빌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한다. 허나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결국 집 전세금을 빼내어 가게를 얻었다. 상호는 '화덕구이' 연탄불에 돼지고기를 구워 먹게 하는 가게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는 가게에서 무료급식을 했다. 주위엔 참으로 어려운 분들이 많았다. 하루에 7-80명이 찾아 오셨다. 결혼한지 1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난 처갓집 대문을 넘어 보지 못했다. 우리의 결혼을 반대했던 처갓집에서는 아무도 결혼식장에 나타나지 않았고, 처갓집 식구들을 만날 수도 없었다. 그래도 아내의 소생인 딸아이 '두리'가 우리와 왕래를 하였기에 장인 장모님의 소식은 들을 수 있었다. 그해 10월. 소록도 난방비 마련 자선음악회를 부천 복사골 문화센터에서 열었다. 모든 기획과 연출, 출연진 섭외, 포스타, 팜믈렛, 티켓 제작 및 판매 후원섭외까지 총괄을 하면서 자선음악회를 열었다. 그날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는데 아내가 나를 어느 분께 안내해 간다. 장모님이셨다. 만 2년만에 뵙는 장모님이셨다. TV에도 나오고 내가 하고 있는 사역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 장모님은 아내의 초청을 받고 행사장에 참석하신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휠체어에서 일어나 장모님을 껴안았다. "어머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조금씩 벽이 허물어지고 있었다.

매일 그렇게 3년을 무료급식을 하다가 결국 문을 닫게 된다. 장사가 인되어 가게 세를 못내고, 결국 보증금마저 다 까 먹고 가게를 비워줘야 했다. 무료급식도 자연스럽게 끝이 난다. 속이 상했지만 무슨 뜻이 있겠지...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