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 그리고/나눔의 문학

[수필] 우리는 룸메이트.

자오나눔 2007. 1. 17. 10:57
혜진 자매와 정자 아줌마는 룸메이트다. 원래 정겸 자매와 세 명이 한 방을 사용했었는데, 정겸 자매가 하늘나라로 간 후로는 둘이서 한 방을 사용하고 있다. 방에서 둘이 있을 때를 보면 정자 아줌마는 주로 텔레비전을 보고, 혜진 자매는 조각 퍼즐을 조립하거나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러다가 심심함을 느낀 정자 아줌마는 혜진 자매에게 슬쩍 시비를 걸어 본다. “혜진이는 꼭 바보 같아 호호호”
“뭐예요? 제가 왜 바보에요?”
“아니다 혜진이가 예쁘다고~”
“아니요 금방 나한테 바보라고 했잖아요?”
옥신각신, 티격태격 소리가 점점 커진다. 그러다가 정자 아줌마가 한마디 한다.
“그래 내가 잘못했다. 혜진아 미안해~”
“왜 내가 바보냐고요~”
실랑이가 그치질 않는다. 결국 아내가 나서거나 내가 나서서 중재를 시킨다.
“외롭고 불쌍한 사람끼리 모여서 살면서 서로 아껴주고 사랑하며 살아야지 매일 다투면 되는 거냐? 우리는 가족이야! 가족은 서로 챙겨주고 아껴주고 그래야지. 서로 상처주고 아픔주면 절대 안 되는 거야!”
“네 알겠어요.”
“원장님 제가 잘못했어요.”
“말로만 잘못했다고 하지 말고~ 그런데 왜 혜진이를 약 올리는데?”
“심심해서요. 아니 혜진이가 예뻐서요.”
“뭐야? 끙.”
내가 이마를 탁 치면서 “끙!” 하면 금방 하하, 호호, 깔깔 웃음이 터진다.

혜진 자매와 정자 아줌마는 똑같이 정신지체 1급인 장애인들이다. 혜진 자매는 한쪽 뇌가 죽어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기에 생각이 단순하다. 고집이 무척 세다. 그런데 기운은 참 좋다. 덕            분에 무거운 것은 혜진 자매의 차지다. 정자 아줌마는 깔끔한 편이다. 하루에 양치 세 번은 기본이고, 꼭 손발은 씻는다. 그래서 간질 발작할 때마다 오줌을 흠뻑 싸고도 잘 씻지 않으려는 혜진 자매를 자주 괴롭힌다. 혜진 자매는 쉼터에 와서 한글을 완전히 터득했다. 성경도 잘 읽고 일기도 잘 쓴다. 그런데 정자 아줌마는 한글을 모른다. 노트에 이름을 비롯하여 몇 개의 명사를 써 주곤 그대로 쓰라고 한다. 그래서 혜진 자매에게는 정자 아줌마에게 주기도문을 읽어주며 외울 수 있도록 도와주라고 한다.
“혜진이가 선생님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 이제부턴 놀리면 안 되는 거야~”
“아~ 혜진이가 나 글 읽어 주니까 선생님 맞아요. 혜진아 미안해 이제 아줌마가 안 놀릴게.”
그러다가 금방 티격태격 이다. 정자 아줌마가 또 시비를 걸었다. 분에 못 이겨 하던 혜진 자매가 간질 발작을 일으킨다.

하루가 지나고 밤이 찾아오면 이부자리를 펴고 잠자리에 든다. 늦게까지 잠을 안자고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두 사람. 어느새 친해졌다. 전화놀이를 하고 있는 두 사람.
“여보세요?”
“네 말씀하세요.”
“거기 똥 푸는 집이지요?”
하하 호호 웃음소리가 터진다. 그렇게, 그렇게 새록새록 정들어 가며 살고 있는 우리 자오 쉼터 가족들이다. 사는 게 별건가? 정으로 살아가면 되는 것 아니던가?

2004. 11. 18
‘봉사는 중독 되고 행복은 전염되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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