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 그리고/나눔의 문학

[수필] 봄을 기다려도 될 것 같다.

자오나눔 2007. 1. 26. 02:01

여권을 만들기 위해 수원에 있는 월드컵 경기장으로 가다가 다시 확인 전화를 했더니, 매일 아침 9시까지만 접수를 받는단다. 하루에 600건을 처리하는데 새벽 4-5시부터 대기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네. 와~ 대단한 사람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외국의 실상을 보고 와서 우리의 삶에 적용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조기 유학이니 이민이니 하는 것은 우리와는 별개의 사람들 이야기 같아서 관심도 없다. 시청에 접수하면 한 달 걸리고 도에서 하면 일주일 걸린다기에 수원으로 나가다가 그냥 시청에서 하기로 하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하니 오늘이 6일이니 남양 장날이다. 아내와 함께 장 구경을 하고 가기로 했다. 어제 소한이 무척 추웠는데 오늘은 어제보다 더 춥다. 평소 장날이면 왁자지껄 혼잡했었는데 오늘은 썰렁하다. 인도로 바짝 붙여서 좌판을 깔아 놓고 장사하는 사람들은 거의가 노인들이다. 이 겨울에 씨앗을 펼쳐 놓은 할아버지는 용돈이라도 벌기위해 오신 것일까? 아니면 씨앗을 팔아야만 생계를 꾸려갈 수 있기에 나오신 것일까? 벙거지 모자를 깊게 눌러쓴 모습에서조차 추위를 느낀다. 생선과 건어물을 팔고 있는 아저씨의 손님 부르는 소리가 시장에 쩌렁쩌렁 울린다. 지나는 사람도 얼마 없고 차들은 문을 굳게 닫고 무심하게 지나간다.

추운 날에는 불이 좋다. 연기가 나는 것을 보니 사각페인트 통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손을 녹이고 있는 상인들의 모습이 정겹다. 구수한 군밤 냄새가 난다. 귀에 익은 사투리가 고향을 생각하게 한다. 사투리에 이끌려 군밤을 파는 곳으로 간다. 30대 후반 정도 되는 부부가 초라한 좌판에 군밤을 올려놓고 팔고 있다. 굵은 모래보다 더 굵은 맥반석 속에는 밤이 익어가고 있었다. 쉼터 식구들이 생각나 군밤 세봉지를 샀다. 잠시 고향 가는 길에 대하여 군밤장사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냥 반가운 만남이다. 많이 파시라며 차에 오르니 아저씨가 뛰어와 차 문을 닫아 주려고 한다. 목발 짚고 차에 타는 내 모습이 불안해 보였는가 보다. 마주보는 얼굴에 밝은 미소가 피어난다.

평소 보이던 잉어빵 아줌마가 보이지 않는다. 잉어빵과 어묵이 유난히 맛있던 곳이었는데, 장날에 나오지 않으신걸 보니 무슨 사연이 있는가 보다. 장날에는 아무래도 장사가 더 잘될 터인데……. 괜히 걱정을 해 본다.
좌판위에 올려 있는 상품들이 거의 얼어 있다. 추워서 좋은 사람은 생선장사 아저씨겠다. 고기가 상할 염려가 없으니 말이다. 단골 미용실에는 여전히 손님이 많다. 참 친절한 미용실이다. 손님이 많은 이유는 아마…, 손님이 제대로 대접을 받기 때문일 것이다.

이 겨울이 빨리 지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아마도 부자보다 서민들이겠지? 이제 1월이 되었으니 봄을 기다려도 될 것 같다. 군밤이 다 식겠다. 어서 가자.

2006. 1. 6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