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중독 행복전염/봉사 댕겨 왔슈~

소록도 1세대 한센병자

자오나눔 2007. 5. 17. 17:53
 

소록도에 1세대 한센병자로 생존해 계시는 어르신 두 분이 계시는데 그중에 한 분이 홍집사님이다. 작년에 위암이 걸려 위를 거의 다 절제 하고 투병 생활을 하고 계시는데 많이 아프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무리 바빠도 병문안을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내려갔다. 소록도 어르신들을 만나러 가면서 나 혼자 가기는 12년 만에 처음이다. 항상 내 곁에는 봉사단이 동행했거나 사랑하는 아내가 동행을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혼자 내려갔다. 주암댐을 곁에 두고 달리는 국도는 한가롭고 경치도 참 좋았다. 이정표에 보이는 ‘보성’이라는 이름이 괜히 반갑다. 지인들이 살고 있는 곳이라 그런가 보다. 가을에 오면 더 멋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운전을 하고 오면서 많은 생각도 할 수 있었고, 새로운 다짐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좋았다.


5시간을 달려 도착한 병원. 병원에서 만나기로 한 김 권사님이 얼마 후에 도착한다. 소록도에 연락하니 다음 배로 나오려고 준비하고 있단다. 고흥 종합병원에 입원해 계시기에 소록도에서도 가족들이 나와야 병문안을 할 수 있었다. 먼저 김 권사님을 만나 병실을 찾아가보니 6인실인 병실에는 한센병자들이 모두 누워계셨다. 눈에 익은 분도 계셨고, 얼굴이 낯선 분도 계셨다. 홍집사님 얼굴이 퉁퉁 부은 채로 나를 반가워하신다. 힘에 겹지만 당신의 이야기를 또박 또박 해 주신다. 겸손하시고 의지가 강하신 분이시다. 내가 알고 있는 홍집사님은 소록도에 입주한 한센병자 1세대로서 오직 기도와 감사와 찬양으로만 살아오신 분이시다. 이런 저런 이야기에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겠다.

소록도에 장기 봉사자로 와 계시는 분이 병실에서 간병을 하고 계셨다. 서울에서 사시는데 천주교 사제가 되려는 과정에 계시는 분이셨다. 환자들은 조용하다. 간병인이 이것저것 설명을 해 주신다. 병실에 계시는 몇 분은 시한부 생명을 살고 계셨다. 허긴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 시한부 생명을 살고 있지만 말이다. 젊은 청년 하나가 병실로 들어와 환자 한분께 가더니 이런 저런 이야기를 건넨다. 대학을 휴학하고 6개월 봉사를 온 학생이란다. 아들처럼 손자처럼 살갑게 대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한센병자라고 당신들의 병실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 참 많은 서러움을 당했더란다. 결국 병원 측에서 한센병자를 위한 병실을 두 개 내 주어 남자와 여자 병실로 사용하고 있단다. 그 전에는 병실 앞으로 사람들도 많이 지나다녔는데 한센병자들이 입원하고부터는 조용하단다. 지금은 음성 환자라 전염이 되는 것도 아닌데 씁쓸하다는 속내를 보이신다. 따지고 보면 일반 환자나 한센병자의 입장이 모두 타당성이 있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말이다. 소록도 봉사를 그렇게 많이 인솔해 다녔지만, 그 때마다 한센병자가 어린아이를 잡아먹는다는 루머를 진실처럼 믿고 있는 봉사자들을 수시로 만날 수 있었으니…….


소록도에서 오권사님, 이 집사님, 소망씨가 나오셨다. 5개월 만에 만나는 기쁨이 악수와 허깅으로 이어진다. 오권사님은 여전히 건강해 보였지만 바라보는 눈동자엔 벌써 이슬이 맺히고 있었다. 작년 설 무렵에 장로님을 먼저 하늘나라에 보내고 이런저런 일로 마음고생도 많이 했기에 더 그러리라. 이런 저런 안부 나누기에 바쁘다. 병실의 환자들에게 안부를 묻고, 육지에 있는 우리들의 안부 묻기에도 바쁘다. 병실의 환자들과 나눴던 이야기들이 가슴에 남는다. 열심히 살아왔지만 돌아보면 후회가 더 많았다고 하신다. 이해 할 수 있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용서할 수 있는 것들도 용서하지 못했던 것들이 많았다고 하신다. 돌아갈 시간이 다되어 일어서야 한다. 홍집사님 손을 붙들고 간절한 기도를 해 드린다. “하나님, 저는 부족하지만 예수님 이름으로 드리는 이 기도를 받아 주옵소서…….”


소록도 배 시간이 지나기 전에 돌아가야 하는 소록도 가족들과 저녁을 먹으러 갔다. 김 권사님이 저녁을 대접해 주셨다.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하다가 사랑하는 아내와 오권사님이 통화를 할 수 있도록 해 드렸다. 눈물을 글썽이며 다음엔 꼭 내려오라고 하신다. 베트남 처녀를 아내로 맞이한 이 집사님은 연신 싱글벙글 이다. 한국말을 배우는 입장인 소망님께 존칭부터 가르치라고 권면을 해 주었다. 보통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이 욕이요, 빨리 빨리요, 반말이라고 하지 않는가? 어째든 신혼부부의 행복을 만끽하는 두 분이 그 마음 그대로 그 행복 누리며 살기를 바란다. 소록도 가족들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나도 차를 돌린다. 이젠 화성에 있는 나의 보금자리를 향해 5시간 운전하고 가면 된다. 기다리는 내 가족이 있는 곳으로…….


2007. 5. 11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