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 그리고/나눔의 서평

서평 - 경청을 읽고

자오나눔 2007. 10. 21. 15:54
 

- 서론 : 들어가는 말


환자들과 상담을 하기 위해 예수병원에 갔다. 지난주에 만났던 환자에게 책을 한 권 선물하고 싶어서 책을 골랐다.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를 타는 환자에게 가족이 있다. 그는 아내의 헌신적인 사랑을 받으며 살고 있다. 마치 내 경우처럼 말이다. ‘내가 사랑하지 않았으면 아내가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될 터인데….’라는 생각을 자주 했는데, 그 환자도 나의 경우처럼 ‘그런 마음이 들었을 때가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고른 시집이 정호승님의 ‘사랑해서 미안해’였다. 책을 고른 다음 내가 읽을 책을 한권 더 고르고 있었다. 그때 내 눈에 확 들어오는 책이 있었다. 바로‘경청’이었다. 교수님으로부터 언젠가 간단하게 소개를 받았던 책이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책을 펼친 시간이 밤 10시. 책을 다 읽고 책을 덮는 시간이 11시 50분이었다. 1시간 50분 만에 책을 모두 읽었다. 책을 읽고도 그 책을 책꽂이에 꽂아 놓지 못하고 침대 곁에 두고 중간 중간을 펼쳐보고 있었다. 내가 읽은 책들을 생각했다. 집에 있는 책이 1700권정도 되니까, 어릴 때부터 읽은 책을 합하면 수천 권은 될 것이다. 물론 기억나는 것은 몇 개 되지 않지만 말이다. 그래도 머릿속에 입력이 되어 있으니 필요할 때 출력을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그 많은 책 중에 가장 감동은 성경이었다. 두 번째가 존 번연이 쓴 천로역정이다. 그리고 세 번째가 이번에 읽은 경청이다. 삼성가의 전설로 내려오는 경청이라지만, 나의 목회 사역에 꼭 필요한 내용이 들어 있는 엑기스가 들어 있기에 나의 전설로 만들어 보고 싶을 정도로 내 마음을 움직이게 했던 책이었다. 많은 내용이 있었지만 내 삶에 바로 접목시킬 수 있는 내용을 독자의 시선으로 재편집하여 본론에 적어 보기로 한다.



- 본론 : 독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경청


1. 책 소개

조신영 박현찬이 지은 경청.

‘듣는 사람’보다 ‘말하는’ 사람이 더 많은 이 시대와 우리 사회에 가만히 상대에게 귀 기울여 듣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소통의 지혜인지 일깨워주는 자기계발서. 저자는 보통의 대한민국 40대 전후의 직장남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는 단절된 소통의 답답함을 현실적으로 접근시킨다. 직장과 가정이라는 삶의 터전에서 점점 더 주변인물로 소외되어가는 남성들이 늘어가고 있는 요즘, 이 땅에서 직장인으로, 남편으로, 아버지로 더불어 잘 살아가기 위해 꼭 한 번쯤은 귀 기울여야 할 삶의 자세를 전하는 책이다.

이청득심(以聽得心), 귀 기울여 듣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지혜이다


이청은 별거 중인 아내와 발달장애인 아들을 둔 악기 회사에 다니는 30대 후반의 직장인이다. 어느 날 그는 심한 두통으로 결근하게 되고 며칠 후 출근한 회사에서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발표되었음을 알게 된다. 이청은 구조조정에 협조하면 악기 대리점 개설권을 준다는 회사의 제안에 동료들의 비난을 뒤로 한 채 그 일에 적극 협력한다.

그러나 대리점 오픈 당일 아침, 갑자기 심한 어지럼 증세가 나타나며 쓰러지게 된다. 의사는 뇌줄기암을 선고하고 수술조차 불가능한 상황임을 알려온다.

평소 건성으로 “알았다”라는 말을 달고 살았던 그는 남들이 무슨 말을 하던 자기 편한 쪽으로 이해하고 결정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렇게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살아온 이청에게 ‘들을 수 없는’ 불치의 병이 생긴 것은 운명일까?

이청은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하지만 이대로 인생을 마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독선적인 행동으로 직장과 가정 모두에서 소외된 처지의 그였지만, 생의 마지막으로 아들에게 무언가를 남겨주고 싶다는 결심을 하고 바이올린을 떠올린다.


* 경청운동

1) 공감을 준비하자

대화를 시작할 때는 먼저 나의 마음속에 있는 판단과 선입견, 충고하고 싶은 생각들을 모두 다 비워내자.

그냥 들어주자.

사운드박스가 텅 비어 있듯. 텅 빈 마음을 준비하여 상대방과 나 사이에 아름다운 공명이 생기도록 준비하자.


2) 상대를 인정하자

상대방의 말과 행동에 잘 집중하여 상대방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인정하자.

상대를 완전한 인격체로 인정해야 진정한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

자녀든 부하 직원이든 상사든 한 인격체로 상대방을 인정하고 대화를 시작하자.


3) 말하기를 절제하자

말을 배우는 데는 2년 걸리지만, 침묵을 배우는 데는 60년이 걸린다고 한다.

누구나 듣기보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상대를 이해하기 전에 내가 먼저 이해받고 싶은 욕구가 앞서기 때문이다.

이해 받으려면 내가 먼저 상대에게 귀 기울여야 한다.

먼저 이해하고 다음에 이해 받으라.

말하기를 절제하고, 먼저 상대에게 귀 기울여 주자.


4) 겸손하게 이해하자

겸손하면 들을 수 있고, 교만하면 들을 수 없다.

상대가 내 생각과 다른 말을 해도 들어줄 줄 아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

경청의 대가는 상대의 감정에 겸손하게 공감하며 듣는 사람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자기 말을 진정으로 들어주고 자기를 존중해주며 이해해주는 것이다.

항상 겸손한 자세로 상대를 이해하자.


5) 온몸으로 응답하자

경청은 귀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눈으로도 하고, 입으로도 하고, 손으로도 하는 것이다.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음을 계속 표현하라.

몸짓과 눈빛으로 반응을 보이라.

상대에게 진정으로 귀 기울이고 있다는 신호를 온몸으로 보내자.



2. 독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경청 재편집


어느 철학자가 말하길 예술 중에서 가장 뛰어난 예술이 바로 우리 인생이라고 했다. 음악이나 미술, 공연이 주는 감동보다 훨씬 더 강하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삶이다. 인간의 삶이 가장 뛰어난 예술 작품이라면, 나의 인생은 어떤 작품이 될까? 열심히 준비했지만 무대에 올려 보지도 못한 초라한 작품일까? 아니면 화려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작품일까? 생각해 보면 답을 내릴 수가 없다.

중국 고서 장자에 ‘음악소리가 텅 빈 구멍에서 흘러나온다.’ 이 말은 악기나 종은 그 속이 비어 있기 때문에 공명이 이루어져 좋은 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마음을 비우지 못하면 상대의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 상대의 말을 듣기도 전에 미리 나의 생각으로 짐작하고 판단을 한다. 그러나 상대의 말을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빈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텅 빈 마음이란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나의 편견과 고집을 잠시 접어두라는 의미이다.

누군가 내게 무슨 의사 표시를 하는 것은 자기를 알아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들어주기는커녕 무시해 버리면 참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럴 때는 어떤 말도, 어떤 제안이나 아이디어도 자발적으로 말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경청(敬聽)의 청(聽)자를 부수별로 분석해 보면, 왼쪽에는 귀이(耳)자 밑에 임금왕(王)자가 있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열십자(十)밑에 눈목(目)자를 옆으로 눕혀 놓은 글씨가 있고, 그 아래 한일(一)자와 마음심(心)자가 차례로 놓여 있다. 듣는 다는 것은 왕같은 귀를 갖는 것이다. 즉, 들을 때 집중해서 들으라는 뜻이 담겨 있다. 귀로 다 들을 수 없으니 열 개의 눈으로 들으라는 것이다. 상대를 집중해서 바라보며 상대의 말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그의 표정이나 눈빛, 태도 등의 보디랭귀지를 열 개의 눈으로 파악하면서 들으라는 뜻이 담겨 있다는 놀라운 해석을 해 주고 있다. 마음심(心)자는 마음의 눈을 말하는데, 상대와 한 마음이 되라는 뜻이다. 들을 청의 마지막 조합은 바로 일심(一心)이었다. 들을 때는 상대방의 마음과 하나가 되라는 말이다. 상대의 마음을 읽는 것이 듣기의 핵심이라는 말이다. 말하는 사람의 입 모양에 주목하고, 상대의 마음을 읽으려고 노력하는 새로운 습관을 가져야한다.

사람들 사이에 진실이 울리게 하려면 마치 악기의 공명통을 잘 다듬어야 하듯이 마음을 비우고 정성을 다해야 한다. 그러면 그 뜻을 이룰 수 있다. 사람들이 마음속에 하고 싶은 말들을 풀어내지 못하고 가둬두면 스트레스가 되어서 결국 암에 걸린 상태가 되는 것과 같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자기 말을 들어 주고 자기를 존중해주며, 이해해 주는 것이며, 어떤 조직이든지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줄 사람을 원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질문을 할 때는 그동안 관찰해본 결과를 토대로 구체적인 예를 들어 가면서 짧게 칭찬을 해 준다, 진심이 담긴 칭찬을 받은 사람들은 예외 없이 마음의 문을 열게 되는 법이다. 온몸의 신경을 상대의 입술과 표정, 태도에 집중하면서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혼신을 다하는 모습은 상대가 스스로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의 말에 귀 기울여 주는 법이 없다. 모두 자기 판단과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상대의 말은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조금의 틈만 생기면 말을 자르고 비집고 들어와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주장한다. 결국 상대는 하려던 말을 꺼내 보지도 못하고 씁쓸하게 입을 닫고 만다.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마음의 소통이다. 내 마음이 상대와 일부가 되면 상대의 숨겨진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자연과 벗 삼아 살면서도 자연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이미 경청의 높은 수준에 올라있는 것이다. 만물은 모두 자기의 고유한 소리가 있다.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하늘의 별과 달, 태양까지도 자기의 소리로 이야기를 하는데 그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귀로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많은 말을 하고 살아가는데, 그러나 그 많은 말들을 듣는다고 해서 우리가 그 사람의 마음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속마음을 누구에게도 제대로 털어놓지 못하는 법이다. 상처받을까봐 두려워서이다. 자신의 말을 제대로 들어주지 않는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다 보니, 어느새 사람들은 자신의 진정한 속마음은 꼭꼭 숨겨 놓은 채, 마음에도 없는 말들만 늘어놓게 되는 것이다. 고정된 생각을 버려야 한다. 잔에 물을 채우려면 잔이 비워있어야 한다. 남의 말을 들으려면 먼저 자신의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것이 세상의 도리요, 자연의 이치다. 마음으로 듣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듣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진실로 입을 여는 것이다. 진실로 듣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것이다. 마음으로 듣는다는 것은 입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말, 즉 소리 없는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다. 소리 없는 말이 곧 마음의 말이다. 바른 마음가짐을 가질 때만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주인공 이토벤이 발달장애를 가진 아들에게 쓴 편지에 이런 내용이 있다.

“아빠는 노인과의 만남을 통해 정말 특별한 것을 얻게 되었단다. ‘영혼의 귀로 듣는 법’을 배울 수 있게 된 거지. 사람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눈앞에서 어떤 사람이 내게 얘기할 때, 그 사람이 소리 내어 말하는 것, 그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어. 진짜 중요한 것은 ‘마음의 소리’인데 그걸 듣기는 정막ㄹ 어려운 일이야. 마치 꽃의 소리를 듣는 것이 어렵듯, 구름의 소리를 듣는 것이 어렵듯, 사람과의 대화에서도 그 사람 깊은 것에 있는 진짜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라 생각했단다. 아빠는 귀가 잘 안 들리게 되면서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듣게 되는 것 같아. 아직 걸음마 단계이긴 하지만, 마음으로 듣기, 영혼으로 듣기를 열심히 배워보려고 한단다. 진정한 듣기는 눈과 귀, 몸과 마음을 열어 전인적으로 들으려는 마음의 자세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 치악산에서 얻은 두 가지 보물 중에서 ‘사람에게는 영혼의 귀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 더 큰 보물이었단다.”


자연의 소리를 들으려면 내가 자연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바람은 자신이 원할 때 말을 한다. 내가 듣고 싶을 때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빗소리도 그렇다. 나무도 그럴 것이다. 상대가 원할 때 나는 듣는 것이다. 바람이든 나무든 그들이 원할 때 나는 들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상담을 할 때 상대가 입을 열어 말을 할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 보다. 흙을 이겨서 만든 찻잔이나 술병들은 그릇 내부에 아무것도 없는 공허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쓸모가 있다고 한다. 하나님이 흙으로 만드신 우리 사람들도 마음을 비워 놓아야 한다. 내 마음에 가득 들어 있는 것들을 비우지 못할 때는 제대로 쓰임 받을 수 없다. 질그릇의 용도는 채우는 것이다. 채우기 위해서는 비워있어야 한다. 심령이 가난한자는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는 말씀은 우리 현실에서도 적용되는 말씀이리라. 아무리 귀한 음식을 가지고 왔더라도 냉장고가 가득 차 있으면 넣을 수가 없는 법이다.

변화의 시기에 생존하고 성장하려면 조직의 어떤 위치에 있든 상관없이 모두가 귀를 열어 놓고 배워야 한다는 말은 참으로 소중한 메시지이다.

아라비아 속담에 ‘듣고 있으면 내가 이득을 얻고, 말하고 있으면 남이 이득을 얻는다.’는 말이 있다. 또 ‘말하는 것은 지식의 영역이고, 듣는 것은 지혜의 영역이다.’라는 경구가 있다. 이 둘은 경청의 힘을 강조하고 있다. 경청은 삶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바꿔준다.

‘귀 기울여 들으면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영혼의 귀를 열어 그 마음의 소리를 들으면 상대가 누구이든지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 누구이든지…….



- 결론 : 나는 어떻게 삶에 적용하는가.


내 아들은 이제 중3인데 청각 장애인이다. 어쩔 땐 잘못을 지적해 주는데 그럴 때 녀석의 표정에 변화가 없다. 잘 들리지 않기에 험악한 표정이 아니면 혼내는지 잘 모를 때가 있다. 문득 이럴 때 녀석은 편하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답답해할까?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누가 자기 쪽을 보고 무슨 이야기를 하며 웃으면 자기를 놀리는 줄 알고 �아가 싸움을 하곤 했단다. 그러나 지금은 좋게 받아들이려고 한단다. 때로는 무시를 해 버리기도 한단다. 듣지 않으려 자기의 방어선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녀석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 보청기를 착용했을 때 들려오던 자연의 소리에 좋아했던 그 순간을 기억해 보자고 했다. 그 소리들은 지금이나 그 때나 똑 같지만, 지금의 느낌과 그 때의 느낌은 다르지 않느냐고 물으니 다르다고 한다. 그때가 더 좋았단다. 무엇일까? 그때는 들으려고 노력했고, 지금은 덜 들으려고 노력하니 그런 것 아닐까?라는 의견을 말해주니 그런 것 같단다.

들리는 소리를 잘 들을 수 없는 사람은 들리지 않는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이 더 있다. 그 능력을 자신이 깨닫고 계속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결국 내가 마음을 비우고 산다는 것과 같다. 상대의 입장이 되어 그 마음과 동화가 되어가는 것, 그로 인하여 소리 나지 않는 소리, 즉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그 아픔까지도 함께 할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주인공 이청, 즉 이토벤이 죽음이라는 엄청난 현실을 부정하면서도 스스로 받아들이고, 그로인하여 발달장애 아들을 위해, 이 세상에 딱 하나밖에 없는 바이올린을 손수 만들어 가면서, 그는 엄청난 흔적을 남겨 놓는다. 경청을 알게 하고 경청을 실천하게 하는 흔적을 동료들에게, 지인들에게 남겨 놓음으로 인하여 사람의 마음 깊숙이 숨겨져 있던 사랑을 실천하도록 만들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고 비웃었던 것처럼, 지금은 볼품없고 초라하고 낮은 자이지만, 경청을 생활 속에 접목하여 습관으로 만든다면 언젠간 좋은 결실을 거두리라 믿는다. 아비 된 입장에서 자식이 경청을 생활화 하면 좋겠지만, 자식은 부모를 바라보며 자란다는 말을 기억한다. 아비 된 나부터 경청을 해야 함을 새삼 깨닫는다. 그것이 자식 사랑이기에….

-끝-

2007. 10.21

양미동(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