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론 : 들어가는 말
10여 년 전에 나도 나무에 대한 단편 소설을 쓴 적이 있다. 빛을 내 보지도 못하고 컴퓨터 하드디스크 한구석에 파일로 저장되어 있다.
그때 나는 왜 더 정진하여 그 소설을 제대로 써 보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도 해 보지만, 좋은 경험을 해 보았음을 인정한다.
간단하게 정리해 보자면 ‘한창 열매를 맺어야할 때의 싱싱한 나무가 불에 타버리고, 엄청난 고통 속에서 나무는 생명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었고, 일을 하는 머슴은 불에 타버린 그 나무를 잘라버리려고 톱을 나무에 대고 있었다. 그때 주인이 나타나 내년 봄에 다시 잎을 틔우고 다시 무성해 질 테니 기다려 보자. 고 만류를 하면서 그 나무는 다시 화려한 부활을 할 수 있었다.’는 내용을 아기자기하게 풀어 나갔던 단편소설이었다.
이순원의 소설 나무를 읽으며 그때 그 단편소설이 떠올라 잠시 추억 속으로 빠져들 수 있었다. 내가 썼던 나무에 대한 단편소설은, 서른 살의 나이에 사고로 75%의 화상을 입고 수많은 고비를 넘겼던 내 삶을 나무로 비유하여 썼기 때문이다.
사람은, 특히 마흔이 넘은 중년부터는 서서히 추억을 먹으며 살아간다고 한다. 당시에 아무리 힘들었던 사건들이었지만 추억으로 남아 있을 때는 아름다운 유년의 추억으로 기억된다.
이 책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유년의 추억으로 달려가고 있음을 느낀다. 내 고향 작은 시골을 만났고, 내 고향의 아름다운 산야를 만날 수 있었다. 아름다운 동화, 아이부터 노인까지 함께 읽을 수 있는 아름다운 동화 속에 푹 빠져 본다.
- 본론 : 책속으로
백 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비바람을 이겨 낸 할아버지나무(밤나무)와 이제 간신히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기 시작한 어린 손자나무의 이야기가 숭고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고 있다.
“얘야, 첫 해의 꽃으로 열매를 맺는 나무는 없단다. 그건 나무가 아니라 한 해를 살다 가는 풀들의 세상에서나 있는 일이란다.”
할아버지나무는 손자나무에게 사람과 함께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열세 살에 결혼한 가난한 집안의 어린 신랑, 신부는 한 살 어린 열두 살, 신랑은 어린 신부와 함께 산에서 밤을 주웠다.
“우리 이 밤을 팔아 쌀을 사요.”
“안 돼, 그럴 수 없어.”
식량이 부족한 채 겨울을 보내고 두 사람은 민둥산에 밤을 묻었다.
어린 신랑과 어린 신부는 식량이 떨어져 냉이뿌리와 칡뿌리로 고픈 배를 달랠지언정, 그들이 묻어놓은 밤을 도로 캐내지 않았다.
집터를 확장시킨다는 명목으로 할아버지나무를 베어버렸다면 손자나무가 스스로 땅에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울 수도 없었을 것이다.
봄과 초여름에 열심히 새 가지를 뻗고 잎을 낸 손자나무는 꽃도 많이 피워서 첫 열매지만 할 수 있는 만큼 많이 맺기 위해 애를 쓴다. 비가 와서 꽃이 다 젖고 엉켜 버리자 꽃가루를 지키지 못한 것에 안타까워하고 화를 내기도 한다. 그러다 콩알만 한 밤송이가 열 개나 열리자 굉장히 기뻐하며 안에서 밤들이 커 나가길 소원한다.
그러나 나이보다 많은 밤송이를 맺은 손자나무에게는 열 개의 밤송이에게 물을 빨아올려 보내주는 것도, 햇빛을 받아 영양분을 만들어 각각의 밤송이에게 전달하는 것도 곧 힘겹게 다가온다.
무리한 고집으로 몸만 자꾸 피곤해지고 하나의 밤송이도 제대로 성장하지 못할 위기를 맞은 것이다. 그러다 영양분을 충분히 받지 못하거나 궂은 날씨로 인해 하나 둘 밤송이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때 할아버지나무는 “처음 열매를 준비할 때는 마지막 익을 때의 것과 비교해서 서너 배는 많이 가지고 시작하는 거란다. 힘이 부칠 때마다 하나씩 덜어내는 걸로 기운을 차리며 가을까지 가는 거지.”라고 조언하지만 손자나무는 섭섭해 하며 토라져버리기도 한다.
-중략-
마지막으로 작가는 ‘나무’를 통해 세상 모든 살아 있는 생명의 근원에 대해 살포시 풀어놓음으로써 인간을 비롯한 생명의 신비와 존엄의 가치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면 지금 제 몸에 달려 있는 이 씨밤의 껍질은 언제까지 저와 함께 있나요?”
“아마 네가 제대로 첫 열매를 맺을 때까지는 너를 지켜보며 응원할 게다. 그런 다음 너의 모든 걸 믿고 조금씩 썩어가며 사라지는 거지. 그것은 사람이나 산속의 짐승이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것과 똑같은 일이란다. 자기 몸에서 또 하나의 생명이 뿌리를 내리는 순간 우리 밤은 그것을 자기 목숨보다 더 아끼며 스스로 거름이 되는 거란다. 네가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의미인 거야.”
- 결론 : 나가는 말
이순원의 소설 ‘나무’는, 사람이 나무의 입장이 되어서 사람의 언어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 있다. 주연은 100년 된 할아버지 밤나무와 이제 갓 뿌리를 내린 손자 밤나무가 주연이다. 그런데 작가는 왜 주연을 할아버지와 손자로 표현을 했을까? 할머니와 손자, 또는 할머니와 손녀로 표현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랬을까? 라는 의문을 가져보았다. 그것은 배경이 집 안이 아닌 밖이기 때문이었다. 거친 세상 풍파를 이겨내는 삶을 그려내기 위해서는 남성적인 표현이 더 어울렸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할아버지 나무가 손자 나무에게 삶의 지혜라든지, 밤나무로서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들의 할아버지께서 어릴 때 우리들을 무릎위에 앉혀 놓고 들려 주셨던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이야기 일 수도 있다. 그 이야기 속에 세상이 담겨 있었고,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지혜가 들어있었다. 지금 우리는 나무에서 할아버지 밤나무와 손자 밤나무의 대화 속에서 우리의 유년 시절을 만나게 된다.
나는 지금 어떤가? 나는 지금 할아버지 나무처럼 그렇게 삶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 혼자 반문을 해 보지만 어림도 없다. 내가 머지않아 먼 길을 떠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렇게 삶을 이야기할 수가 없다. 이 책에 나오는 삶의 지혜를 모두 내가 내 것으로 만들어 갈 수 있다면, 그때야 나는 할아버지 밤나무처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산다는 것은 사랑이라고….
온가족이 읽어도 행복을 느낄 아름다운 동화 한편, 내가 사랑하는 지인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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