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간섭과 섭리하심으로 신학대학원을 잘 마치고 졸업하던 날, 졸업식장에 앉아있는 내 눈에서는 소리 없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지난 3년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기 때문만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석사모를 쓰고 앉아있는 나를 가장 축하해주며 기뻐해 주어야할 두 사람이 함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청각장애인인 아들은 필리핀에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또 한사람은 아내입니다. 목회자가 안 되려고 참으로 많이 도망 다녔는데 아내의 회유와 눈물은 결국 신학생이 되게 했고, 신학대학원에 입학하여 3년의 과정을 잘 마치고 석사모를 쓰고 있는데, 가장 기뻐하며 행복해야할 아내는 6개월 전에 하늘나라로 갔기 때문입니다.
2006년 2월에 미얀마 비전트립에 참석하여 무리했는지 고관절 골수염이 재발했지요. 결국 입학식만 마치고 병원으로 실려가 두 달 동안 입원을 하고 허벅지 뼈까지 더 잘라냈을 때, 모든 사람은 신학을 포기하라고 했습니다. 저까지 포기하려고 했을 때 단 한사람 아내만은 끝까지 격려를 해 주며 포기하지 말라고 했었습니다.
장애인으로 살아가다보면 많은 어려움이 생깁니다. 자연스럽게 의기소침해집니다. 그때마다 아내는 “당신이 건강하든지 장애인이든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내 남편이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며 용기를 주곤 했습니다. “아무것도 염려 말고 열심히 공부하여 훌륭한 목사님 되어 나눔사역 잘 감당해 나가면서,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에게 하나님 사랑을 많이 전하라.”는 말을 자주 해 주었지요. 그렇게 했던 아내가 살아있다면 얼마나 기뻐했을까 생각하니 참 많은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렇게 신학대학원에 갔었고 열심히 배우고 익혔으며, 이제 이렇게 신학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하나님의 철저한 간섭이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을 압니다. 앞으로 목사고시도 합격해야하고 목사 안수도 받아야겠지요.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보시며 고개를 끄덕이시고 흐뭇해하실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비록 건강은 더 좋아지지 않고 육신의 고통은 어둠처럼 침범해 오지만, 마치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내가 가야할 길이 높은 산이고 거친 들이며,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될지라도 하나님 나와 함께 하시니 담대하게 이겨내고 승리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 23:10]
2009. 2. 25.
-양미동(나눔)-
'나와 너, 그리고 > 나눔의 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눔의 편지 561] 소나무 가지가 부러진 이유 (0) | 2009.03.14 |
---|---|
[나눔의 편지 560] 소록대교 개통을 축하하며 (0) | 2009.03.02 |
[나눔의 편지 558] 한 개 정도는 더 많겠다는… (0) | 2009.01.16 |
[스크랩] [나눔의 편지 557] 함께해준 2008년의 소중했던 날들을 기억합니다. (0) | 2008.12.31 |
[나눔의 편지 556] 거리마다 사람마다 (0) | 2008.1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