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라 함은 커다란 돌덩이를 흔히 부르는 단어이다. 그러나
진정한 바위는 깊은 산중이나, 동네 어귀에 있는 집채보다 더 큰
돌덩이를 말하는 것 같다. 나는 여기서 깊은 산중에 있는 바위를
묘사해 보려고 한다. 바위를 보고 운치가 있다고 할 때도 있다.
그것은 바위의 장엄함도 있지만 바위 주위에 있는 나무나 풀이
바위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을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
바위는 멀리서 보면 여러 가지 형상을 닮고 있다. 산꼭대기에
있는 커다란 바위는 동서남북 어느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모양
이 달라 보인다. 동에서 보면 범이지만, 서에서 보면 고래처럼 보
이기도 한다. 가까이에서 보면 별로 아름답지 않다. 거친 표면에
더덕더덕 붙어 있는 돌이끼는 가까이서 보면 오히려 바위를 추하
게 보이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과 산은 가까이서 보면 추
함만 보인다고 했나보다.
그러나...
수많은 세월을 말없이 그 자리를 지켜 온 바위를 보면서 우리
들은 왠지 듬직함을 느낀다. 마치 아버지의 구릿빛 어깨처럼 듬
직하다. 그것은 왜일까? 아마 수많은 풍파 세월을 묵묵히 견뎌
왔기 때문인 것 같다. 작은 이끼를 사랑으로 받아 주는 정을 우
리는 발견할 수 있다. 때로는 질서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기도 한
다. 바위를 쪼갤 때면 눈을 찾는다고 한다. 즉, 숨겨진 길을 찾는
다는 것이다. 바위에서 그 눈을 찾아 정으로 구멍을 내고 나무
쐬기를 박아 놓고 물을 부어 놓으면, 정확하게 자기의 길대로 쪼
개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아무렇게 망치로 쪼아 낸다며
아무 쓸모 없는 돌멩이로 변해 버리는 것이다. 말없이 우리들에
게 던져 주는 메시지... 그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한다.
바위를 보며 변하지 않는 믿음을 연상하기도 하지만, 더 깊이
들어갔을 땐 보석처럼 귀한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겉에서는 초
라하게 보일지라도 깊은 바위 속을 뚫고 들어가 보면 정말 귀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즉, 강함과 온유함이 공존하는 것을 알게 된
다. 하나님의 소중한 섭리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오늘도 말없
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바위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우리들에게
메시지를 던져 주고 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주만 바
라보며 살아가라고...
2000년 7월 26일
진정한 바위는 깊은 산중이나, 동네 어귀에 있는 집채보다 더 큰
돌덩이를 말하는 것 같다. 나는 여기서 깊은 산중에 있는 바위를
묘사해 보려고 한다. 바위를 보고 운치가 있다고 할 때도 있다.
그것은 바위의 장엄함도 있지만 바위 주위에 있는 나무나 풀이
바위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을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
바위는 멀리서 보면 여러 가지 형상을 닮고 있다. 산꼭대기에
있는 커다란 바위는 동서남북 어느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모양
이 달라 보인다. 동에서 보면 범이지만, 서에서 보면 고래처럼 보
이기도 한다. 가까이에서 보면 별로 아름답지 않다. 거친 표면에
더덕더덕 붙어 있는 돌이끼는 가까이서 보면 오히려 바위를 추하
게 보이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과 산은 가까이서 보면 추
함만 보인다고 했나보다.
그러나...
수많은 세월을 말없이 그 자리를 지켜 온 바위를 보면서 우리
들은 왠지 듬직함을 느낀다. 마치 아버지의 구릿빛 어깨처럼 듬
직하다. 그것은 왜일까? 아마 수많은 풍파 세월을 묵묵히 견뎌
왔기 때문인 것 같다. 작은 이끼를 사랑으로 받아 주는 정을 우
리는 발견할 수 있다. 때로는 질서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기도 한
다. 바위를 쪼갤 때면 눈을 찾는다고 한다. 즉, 숨겨진 길을 찾는
다는 것이다. 바위에서 그 눈을 찾아 정으로 구멍을 내고 나무
쐬기를 박아 놓고 물을 부어 놓으면, 정확하게 자기의 길대로 쪼
개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아무렇게 망치로 쪼아 낸다며
아무 쓸모 없는 돌멩이로 변해 버리는 것이다. 말없이 우리들에
게 던져 주는 메시지... 그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한다.
바위를 보며 변하지 않는 믿음을 연상하기도 하지만, 더 깊이
들어갔을 땐 보석처럼 귀한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겉에서는 초
라하게 보일지라도 깊은 바위 속을 뚫고 들어가 보면 정말 귀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즉, 강함과 온유함이 공존하는 것을 알게 된
다. 하나님의 소중한 섭리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오늘도 말없
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바위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우리들에게
메시지를 던져 주고 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주만 바
라보며 살아가라고...
2000년 7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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