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것에 대하여...1
자전거...
언제부터였는지 자전거는 커 가는 아이들의 필수품이 되었다.
내가 자랄 땐 어른들도 자전거를 타면 멋쟁이였고 부자 측에 속
했다. 그러다 학생시절로 들어서니 자전거로 통학하는 친구들이
몇 명 보였고, 어느 순간부터 자전거로 통학하는 것이 유행처럼
되어 버렸다.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친한 벗에게는 뒤에 타라는
배려를 아끼지 않던 녀석들도 꽤 많았다. 한 손 놓고 자전거를
타는 것도 묘기라고 할 때였는데, 두손 놓고 몸으로 균형을 잡으
며 자유 자제로 달리는 선생님은 단연 인기 최고였다. 체육대회
때면 누가 늦게 가는가 시합을 하곤 했는데 키 작은 벗은 언제나
우승을 차지하곤 했다. 그 친구는 자전거 묘기의 달인 같았다. 자
전거에 얽힌 추억들이 많다.
준열이가 자전거를 무척 타고 싶어했다. 동네 친구들에게 아
쉬운 소리를 해 가며 세 발 자전거를 얻어 타는 게 안쓰러워, 5
개월의 용돈을 모아 사준 적이 있었다. 자전거에 이름을 써 놓았
기에, 그리고 아파트 안이라 걱정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어느 날
보니 없어져 버렸다. 준열인 얼굴이 하얗게 변하더니 울고불고
난리다. 괜히 어른들의 마음이 상한다. 속이 상해 있던 나는 우는
준열이에게 고함만 꽥 지른 후 입을 다물게 만들어 버렸다. 또
다시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순간이다. 이제 다시는 자전거를 사
주지 않겠노라는 다짐을 하며 자리에 누워 버린다.
첫 번째 자전거를 잃어버린지 2년만에 막내 여동생이 네발(뒤
에 작은 바퀴가 두 개 더 달린 것) 자전거를 사 왔다. 준열인 신
이 났다. 틈만 나면 자전거로 동네를 누비고 다닌다. 수시로 교회
에 자전거를 타고 온다. 이젠 친구들도 뒤에 태워서 다니곤 한다.
그 모습을 보면서 대견해 하면서도 일말의 불안감이 없잖아 있
다. 유난히 차량이 많은 복잡한 동네라 걱정이 된다. 수시로 인도
로 자전거를 타고 다니라고 말하지만, "형아들은 좋은 길로 다닌
단 말예요..."라고 대답하는 준열이를 달랠 말이 마땅치 않다. 안
전하게 타고 다니기만을 기도할 뿐.
준열이가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하고 나눔 사무실로 온다. 깜
짝 놀라 안고 달랜 후 물어 보니 자전거를 누가 가져 가 버렸단
다. 교회에서 친구를 태우고 문방구 앞에까지 갔는데, 문방구 앞
에 자전거를 잠시 세워 놓고 들어갔다 나오니 친구가 타고 가더
란다. 그런데 친구는 안 타고 갔다고 우기고... "준열이가 잘 못
봤겠지"라고 말을 하니 분명히 친구가 타고 갔단다. 어린아이의
말만 믿고 어른끼리 다투는 것이 싫어 내 자식 탓으로 돌려버린
다.
준열이의 마음을 달래 줘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준열이를 안
고 기도를 해 준다. 이 어린 영혼이 자전거로 인해 상처받지 않
게 해 달라고.... 그리고 나서 준열이에게 설명을 해 준다. "아들~"
"네.." "아들이 자전거 타고 가다 넘어지면 안 아프지?" "아니요~
많이많이 아파요." "친구들 자전거랑 부딪쳐서 넘어 질 때도 아팠
어요?" "응..." "얼마나 아팠지?" "준열이 아파서 울었어요." "그
래... 그러면 커다란 자동차하고 부딪치면 어떨까?" "피나고 아파
요..." "그래요. 준열이가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길에 자동차가 너
무 많이 지나다녀서 준열이 다칠까 봐 자전거를 가져 가신거에
요." "누가요? 하나님이가요?" "그래요." "......" 준열이가 곰곰이
생각하는 것 같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준열이의 질문에 나는 대
답을 못하고 말았다. "아빠! 아파트에서 타면 되는데 왜 가져가
요?" "윽! 아파트에도 차가 많이 오잖아..." 결국 시원한 대답을
못해 주고 준열이를 꼬옥 안아야만 했다.
...............................
아들아...
아빠는 말이야... 지금의 상처가 어른이 되었을 때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기를 바래요. 그래도 요즘은 자전거에 별 취미가 없
는 것 같아서 다행이지만 아빠 마음 한 구석에는 미안함이 자리
를 잡고 있구나. 언젠간 너도 아빠의 마음을 알아 줄 때가 있을
거야. 사랑한다 아들아....
^_^* 빙그레~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2
아파트....
중도 사고로 장애인이 된 후 임대 아파트를 신청해 놓은 적이
있었다.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나눔의 사역을 하면서 장애인 거택
(그룹홈) 마련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중, 주공 아파트 관리소에서
전화가 왔다. 아파트를 입주할 수 있으니 돈을 마련하여 언제까
지 오라는 것이었다. 길을 가다가 노다지를 발견한 기분이 이럴
까? 마음속에서 터지는 폭죽이 기분을 황홀하게 만들고 있다. 그
룹홈을 하게 해 달라고 밥먹듯이 기도하던 중 전혀 생각하지 못
했던 아파트가 생겼으니 얼마나 좋은가.
마음속에는 별의 별 생각이 다 들기 시작한다. 1차로 이번 아
파트를 그룹홈을 만들고 내년 봄에 2차로 한 개 더 만들리라. 장
애인 아이를 둔 어머니가 아이와 같이 들어와 살면서 다른 장애
우 2명 정도를 데리고 있으라고 하면 좋겠다. 물론 생활비는 우
리 자오 나눔에서 마련할 것이며... 아이들에게 재활 훈련을 시켜
서 컴퓨터도 가르치고 통신도 가르쳐주고, 주님을 알게 하리라...
생각만 해도 부자가 된 것 같다. 나눔지 원고에도 그룹홈에 입주
할 장애우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만들어 놓는다.
돈도 마련하고 마지막 서류를 만들기 위해 주택은행에 가니
이게 뭔가! 너무나 화가 나고 답답해 그대로 주저앉아 버린다. 내
가 사고를 난 후 20번의 대 수술을 하다 보니 병원비 감당을 못
해 3년 동안 부었던 청약 부금 통장을 팔았었다. 그 통장으로 분
양을 받고 명예 이전을 하지 않아서 1가구 2주택이라 해당 사항
이 안된단다. 급하게 집주인에게 연락을 해 보려 하지만 집주인
은 집을 다른 사람에게 팔고 연락이 안된다. 사정이야 어찌 되었
던 간에 불법인걸...
결국 그룹홈 한 채가 날아가는 순간이다. 마음이 많이 상했다.
식욕도 나지 않아 며칠을 물만 먹고 지냈나 보다. 속상한 마음으
로 기도를 하니 눈물만 나올 수밖에... 며칠을 가슴앓이 하다 몸
을 추슬렀다. 지금 그룹홈을 시작하면 IMF의 영향이 너무 커서
정상적인 운영을 할 수 없기에 막으신 것이라고...
사람이 시련을 겪고 나면 더욱 성장하나 보다. 차분해진 마음
으로 곰곰이 생각을 해 본다. 계획에 없던 것이 갑자기 생기니
경솔하게 행동했음이 나타난다. 평상시 사람들을 너무 믿어 알아
서 잘 해 주겠지라는 안일한 생각... 어려운 상황을 간파하지 못
한 점 등... 그런 것들을 생각하니 감사가 나온다. 비록 아파트를
잃어 버렸더라도 감사함이 나오는 건 오직 그분만의 섭리가 아닐
까?
...........................
아들아....
아빠는 말이야 가끔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내것이 아
니고 주님의 것인데 그걸 착각하고 아빠 것처럼 사용하려고 할
때가 많아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야. '약할 때 곧 강함이라'는 말을 되새겨 본다. 내가
약하다고 인정할 때 나 스스로를 포기하고 도우심을 바라며, 그
도우심에 힘입어 진정 강해진다는 뜻을....
준열아...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하지? 이건 오늘 숙제다아~~
^_^* 빙그레~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3
아내.
밝고 구김살 없는 나의 얼굴을 보는 사람마다 한마디씩하곤
했다. "저 사람은 걱정거리가 없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절망하
는 걸 보지 못한 사람들의 말이리라. 커다란 기계에 손이 들어가
오른 손이 영영 쓰지 못하게 되었어도 그는 자신 있게 살아가고
있었다. 이해하기 힘든 별종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
나 그런 것들이 아내의 내조 덕분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사고를 나기 전에 결혼을 했었다. 준열이 위로 3살 많은 딸아
이가 있었다. 처음 태어날 때 간호사들을 이렇게 말했다. "산부인
과 간호사 생활 6년 동안 이렇게 예쁘게 태어난 아이는 처음 본
다"고... 다른 보호자들도 있는 자리에서 말을 한 것이라 접대용
인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날 그 아이를 잃었다. 심장병 수
술을 하고도 결국 살리지 못했다. 매 시간마다 체크를 하면서 간
호사는 연락을 해 준다. 아침 6시에 모든게 끝났다는 선고를 받
고 입을 다물었다. 첫눈이 오던 89년 12월 23일은 무척 날씨가
좋았다. 공중에 뿌려 주며 새가 되어 날아가라던 아빠의 마음을
아는지 하얀 눈에 섞여 내 눈으로 들어 온다. 눈물인지... 눈(雪)
물인지...
아이 낳는걸 두려워하던 아내를 달래 생긴 아이가 준열이다.
하루 일과를 마치면 어김없이 택시를 타고 응암동 감자국 골목으
로 달린다. 얼큰한 감자국에 소주 2병 정도 마시고 나면 기분 좋
게 취한다. 하던 일도 잘되고 걱정거리가 없기에 자연스레 얼굴
에 미소가 피어오른다. 아내들이 행복한 미소를 지을 땐 어떤 남
편이던 마음이 뿌듯해 질 것이다. 그렇게 행복은 끝없이 이어질
줄 알았다. 어느 날 밤에 발생한 화재는 우리의 운명을 갈라놓고
말았다.
생사의 기로에서 헤매는 남편, 백일을 갓 넘긴 아들, 수많은
수술을 하기에 수술비 마련을 위해 적금을 해약하고, 방을 빼고...
가게를 넘겨야 할 상황이라는 것을 모두가 짐작하고 남는다. 거
기다 병원에서는 살아나기 희박하며 살아나더라도 영원한 장애인
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이 견디기 힘들게 하였나 보다. 그렇게 내
청춘과 건강과 함께 아내도 떠나 버린다. 수많은 절망의 순간들...
복수에 불타던 투병 생활...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이라
는 걸 깨달은 순간 찾아온 오열... 허무와 함께 찾아온 소망 있는
포기가 나를 깨우고 있었다.
내가 잘났다고 생각될 때는 주님을 몰랐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되었을 때 내 영혼을 찾
았다.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행복하게 살고 주님을
영접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한다. 이젠 내 마음에서 그녀도 서서
히 지워야 한다. 그녀의 잔재가 남아 있는 한, 난 다른 여인을 진
정으로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아서이다. 그러나 그녀에게 진정으
로 감사하다. 그녀가 떠남으로 인해 모든 걸 포기 할 수 있었고,
내 영혼을 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니 오히려 감사를 드린다.
세상에 있던 내 모든 것까지 포기하게 만들고서야 당신을 알게
하신 깊은 뜻을 조금씩 깨달아 감에 감사가 나오기 시작한다. 모
든 것이 감사다.
....................
아들아....
언젠간 밝혀야 할 일이기에 네가 더 크기 전에 이렇게 글로써
남겨 놓는단다. 아무리 힘들었던 순간이었다고 하더라도, 기억하
기 싫은 과거로 만들지 말고, 그래도 소중했던 추억으로 만들어
가자구나. 그게 우리들의 삶을 더욱 기운차게 만들어 줄꺼야. 아
빠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만난 주님을 깊게 묵상해 보지 않을래?
사랑한다 아들아...
^_^* 빙그레~
자전거...
언제부터였는지 자전거는 커 가는 아이들의 필수품이 되었다.
내가 자랄 땐 어른들도 자전거를 타면 멋쟁이였고 부자 측에 속
했다. 그러다 학생시절로 들어서니 자전거로 통학하는 친구들이
몇 명 보였고, 어느 순간부터 자전거로 통학하는 것이 유행처럼
되어 버렸다.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친한 벗에게는 뒤에 타라는
배려를 아끼지 않던 녀석들도 꽤 많았다. 한 손 놓고 자전거를
타는 것도 묘기라고 할 때였는데, 두손 놓고 몸으로 균형을 잡으
며 자유 자제로 달리는 선생님은 단연 인기 최고였다. 체육대회
때면 누가 늦게 가는가 시합을 하곤 했는데 키 작은 벗은 언제나
우승을 차지하곤 했다. 그 친구는 자전거 묘기의 달인 같았다. 자
전거에 얽힌 추억들이 많다.
준열이가 자전거를 무척 타고 싶어했다. 동네 친구들에게 아
쉬운 소리를 해 가며 세 발 자전거를 얻어 타는 게 안쓰러워, 5
개월의 용돈을 모아 사준 적이 있었다. 자전거에 이름을 써 놓았
기에, 그리고 아파트 안이라 걱정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어느 날
보니 없어져 버렸다. 준열인 얼굴이 하얗게 변하더니 울고불고
난리다. 괜히 어른들의 마음이 상한다. 속이 상해 있던 나는 우는
준열이에게 고함만 꽥 지른 후 입을 다물게 만들어 버렸다. 또
다시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순간이다. 이제 다시는 자전거를 사
주지 않겠노라는 다짐을 하며 자리에 누워 버린다.
첫 번째 자전거를 잃어버린지 2년만에 막내 여동생이 네발(뒤
에 작은 바퀴가 두 개 더 달린 것) 자전거를 사 왔다. 준열인 신
이 났다. 틈만 나면 자전거로 동네를 누비고 다닌다. 수시로 교회
에 자전거를 타고 온다. 이젠 친구들도 뒤에 태워서 다니곤 한다.
그 모습을 보면서 대견해 하면서도 일말의 불안감이 없잖아 있
다. 유난히 차량이 많은 복잡한 동네라 걱정이 된다. 수시로 인도
로 자전거를 타고 다니라고 말하지만, "형아들은 좋은 길로 다닌
단 말예요..."라고 대답하는 준열이를 달랠 말이 마땅치 않다. 안
전하게 타고 다니기만을 기도할 뿐.
준열이가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하고 나눔 사무실로 온다. 깜
짝 놀라 안고 달랜 후 물어 보니 자전거를 누가 가져 가 버렸단
다. 교회에서 친구를 태우고 문방구 앞에까지 갔는데, 문방구 앞
에 자전거를 잠시 세워 놓고 들어갔다 나오니 친구가 타고 가더
란다. 그런데 친구는 안 타고 갔다고 우기고... "준열이가 잘 못
봤겠지"라고 말을 하니 분명히 친구가 타고 갔단다. 어린아이의
말만 믿고 어른끼리 다투는 것이 싫어 내 자식 탓으로 돌려버린
다.
준열이의 마음을 달래 줘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준열이를 안
고 기도를 해 준다. 이 어린 영혼이 자전거로 인해 상처받지 않
게 해 달라고.... 그리고 나서 준열이에게 설명을 해 준다. "아들~"
"네.." "아들이 자전거 타고 가다 넘어지면 안 아프지?" "아니요~
많이많이 아파요." "친구들 자전거랑 부딪쳐서 넘어 질 때도 아팠
어요?" "응..." "얼마나 아팠지?" "준열이 아파서 울었어요." "그
래... 그러면 커다란 자동차하고 부딪치면 어떨까?" "피나고 아파
요..." "그래요. 준열이가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길에 자동차가 너
무 많이 지나다녀서 준열이 다칠까 봐 자전거를 가져 가신거에
요." "누가요? 하나님이가요?" "그래요." "......" 준열이가 곰곰이
생각하는 것 같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준열이의 질문에 나는 대
답을 못하고 말았다. "아빠! 아파트에서 타면 되는데 왜 가져가
요?" "윽! 아파트에도 차가 많이 오잖아..." 결국 시원한 대답을
못해 주고 준열이를 꼬옥 안아야만 했다.
...............................
아들아...
아빠는 말이야... 지금의 상처가 어른이 되었을 때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기를 바래요. 그래도 요즘은 자전거에 별 취미가 없
는 것 같아서 다행이지만 아빠 마음 한 구석에는 미안함이 자리
를 잡고 있구나. 언젠간 너도 아빠의 마음을 알아 줄 때가 있을
거야. 사랑한다 아들아....
^_^* 빙그레~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2
아파트....
중도 사고로 장애인이 된 후 임대 아파트를 신청해 놓은 적이
있었다.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나눔의 사역을 하면서 장애인 거택
(그룹홈) 마련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중, 주공 아파트 관리소에서
전화가 왔다. 아파트를 입주할 수 있으니 돈을 마련하여 언제까
지 오라는 것이었다. 길을 가다가 노다지를 발견한 기분이 이럴
까? 마음속에서 터지는 폭죽이 기분을 황홀하게 만들고 있다. 그
룹홈을 하게 해 달라고 밥먹듯이 기도하던 중 전혀 생각하지 못
했던 아파트가 생겼으니 얼마나 좋은가.
마음속에는 별의 별 생각이 다 들기 시작한다. 1차로 이번 아
파트를 그룹홈을 만들고 내년 봄에 2차로 한 개 더 만들리라. 장
애인 아이를 둔 어머니가 아이와 같이 들어와 살면서 다른 장애
우 2명 정도를 데리고 있으라고 하면 좋겠다. 물론 생활비는 우
리 자오 나눔에서 마련할 것이며... 아이들에게 재활 훈련을 시켜
서 컴퓨터도 가르치고 통신도 가르쳐주고, 주님을 알게 하리라...
생각만 해도 부자가 된 것 같다. 나눔지 원고에도 그룹홈에 입주
할 장애우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만들어 놓는다.
돈도 마련하고 마지막 서류를 만들기 위해 주택은행에 가니
이게 뭔가! 너무나 화가 나고 답답해 그대로 주저앉아 버린다. 내
가 사고를 난 후 20번의 대 수술을 하다 보니 병원비 감당을 못
해 3년 동안 부었던 청약 부금 통장을 팔았었다. 그 통장으로 분
양을 받고 명예 이전을 하지 않아서 1가구 2주택이라 해당 사항
이 안된단다. 급하게 집주인에게 연락을 해 보려 하지만 집주인
은 집을 다른 사람에게 팔고 연락이 안된다. 사정이야 어찌 되었
던 간에 불법인걸...
결국 그룹홈 한 채가 날아가는 순간이다. 마음이 많이 상했다.
식욕도 나지 않아 며칠을 물만 먹고 지냈나 보다. 속상한 마음으
로 기도를 하니 눈물만 나올 수밖에... 며칠을 가슴앓이 하다 몸
을 추슬렀다. 지금 그룹홈을 시작하면 IMF의 영향이 너무 커서
정상적인 운영을 할 수 없기에 막으신 것이라고...
사람이 시련을 겪고 나면 더욱 성장하나 보다. 차분해진 마음
으로 곰곰이 생각을 해 본다. 계획에 없던 것이 갑자기 생기니
경솔하게 행동했음이 나타난다. 평상시 사람들을 너무 믿어 알아
서 잘 해 주겠지라는 안일한 생각... 어려운 상황을 간파하지 못
한 점 등... 그런 것들을 생각하니 감사가 나온다. 비록 아파트를
잃어 버렸더라도 감사함이 나오는 건 오직 그분만의 섭리가 아닐
까?
...........................
아들아....
아빠는 말이야 가끔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내것이 아
니고 주님의 것인데 그걸 착각하고 아빠 것처럼 사용하려고 할
때가 많아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야. '약할 때 곧 강함이라'는 말을 되새겨 본다. 내가
약하다고 인정할 때 나 스스로를 포기하고 도우심을 바라며, 그
도우심에 힘입어 진정 강해진다는 뜻을....
준열아...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하지? 이건 오늘 숙제다아~~
^_^* 빙그레~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3
아내.
밝고 구김살 없는 나의 얼굴을 보는 사람마다 한마디씩하곤
했다. "저 사람은 걱정거리가 없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절망하
는 걸 보지 못한 사람들의 말이리라. 커다란 기계에 손이 들어가
오른 손이 영영 쓰지 못하게 되었어도 그는 자신 있게 살아가고
있었다. 이해하기 힘든 별종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
나 그런 것들이 아내의 내조 덕분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사고를 나기 전에 결혼을 했었다. 준열이 위로 3살 많은 딸아
이가 있었다. 처음 태어날 때 간호사들을 이렇게 말했다. "산부인
과 간호사 생활 6년 동안 이렇게 예쁘게 태어난 아이는 처음 본
다"고... 다른 보호자들도 있는 자리에서 말을 한 것이라 접대용
인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날 그 아이를 잃었다. 심장병 수
술을 하고도 결국 살리지 못했다. 매 시간마다 체크를 하면서 간
호사는 연락을 해 준다. 아침 6시에 모든게 끝났다는 선고를 받
고 입을 다물었다. 첫눈이 오던 89년 12월 23일은 무척 날씨가
좋았다. 공중에 뿌려 주며 새가 되어 날아가라던 아빠의 마음을
아는지 하얀 눈에 섞여 내 눈으로 들어 온다. 눈물인지... 눈(雪)
물인지...
아이 낳는걸 두려워하던 아내를 달래 생긴 아이가 준열이다.
하루 일과를 마치면 어김없이 택시를 타고 응암동 감자국 골목으
로 달린다. 얼큰한 감자국에 소주 2병 정도 마시고 나면 기분 좋
게 취한다. 하던 일도 잘되고 걱정거리가 없기에 자연스레 얼굴
에 미소가 피어오른다. 아내들이 행복한 미소를 지을 땐 어떤 남
편이던 마음이 뿌듯해 질 것이다. 그렇게 행복은 끝없이 이어질
줄 알았다. 어느 날 밤에 발생한 화재는 우리의 운명을 갈라놓고
말았다.
생사의 기로에서 헤매는 남편, 백일을 갓 넘긴 아들, 수많은
수술을 하기에 수술비 마련을 위해 적금을 해약하고, 방을 빼고...
가게를 넘겨야 할 상황이라는 것을 모두가 짐작하고 남는다. 거
기다 병원에서는 살아나기 희박하며 살아나더라도 영원한 장애인
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이 견디기 힘들게 하였나 보다. 그렇게 내
청춘과 건강과 함께 아내도 떠나 버린다. 수많은 절망의 순간들...
복수에 불타던 투병 생활...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이라
는 걸 깨달은 순간 찾아온 오열... 허무와 함께 찾아온 소망 있는
포기가 나를 깨우고 있었다.
내가 잘났다고 생각될 때는 주님을 몰랐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되었을 때 내 영혼을 찾
았다.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행복하게 살고 주님을
영접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한다. 이젠 내 마음에서 그녀도 서서
히 지워야 한다. 그녀의 잔재가 남아 있는 한, 난 다른 여인을 진
정으로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아서이다. 그러나 그녀에게 진정으
로 감사하다. 그녀가 떠남으로 인해 모든 걸 포기 할 수 있었고,
내 영혼을 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니 오히려 감사를 드린다.
세상에 있던 내 모든 것까지 포기하게 만들고서야 당신을 알게
하신 깊은 뜻을 조금씩 깨달아 감에 감사가 나오기 시작한다. 모
든 것이 감사다.
....................
아들아....
언젠간 밝혀야 할 일이기에 네가 더 크기 전에 이렇게 글로써
남겨 놓는단다. 아무리 힘들었던 순간이었다고 하더라도, 기억하
기 싫은 과거로 만들지 말고, 그래도 소중했던 추억으로 만들어
가자구나. 그게 우리들의 삶을 더욱 기운차게 만들어 줄꺼야. 아
빠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만난 주님을 깊게 묵상해 보지 않을래?
사랑한다 아들아...
^_^* 빙그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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