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글을 쓰면서 글 제목이 <남편은 왜 사는가?>였다. 아침 일찍 출
근하여 열심히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남편들은 모두가 '편히 쉬고 싶
은 마음이다'는 것이었다. 이일 저 일로 스트레스를 받고도 집으로 돌아오는
남편은 집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편하게 안주하고 싶기 때문이라는 것
이다. 그러기 위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수많은 유혹을 만나도 과감하게
뿌리치고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어여쁜 아가씨가 유혹하는 술집, 대박이 터
졌다는 성인 오락실이 눈앞에 어른거리고, 친구들과의 술자리, 스트레스 해
소 하자며 고스톱 한판 치자는 유혹도 남편을 유혹한다.
그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집으로 돌아 왔는데 아내는 TV를 친구 삼아
남편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밤에는 컴퓨터 통신하느라 외면하고, 아이들은
게임이 더 좋다며 아버지를 외면한다면 당사자인 남편은 얼마나 초라함을
느낄 것인가 하는 내용이었다. 즉, 남편은 가정에서 아내에게 남편으로 인정
받고, 아이들에게는 아버지로 인정받아 행복함을 꿈꾸는데 그 꿈이 깨지면
집이 싫어진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쩌면 인정받기 위해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행려병자들은
인정받기 싫어할까 생각해 보아도 그건 아니다. 결식자들을 위한 무료 급식
을 2,000년 1월 4일부터 지금까지 매일 하고 있지만, 밥 한그릇을 먹기 위해
먼길을 오는 사람들이지만, 그들도 인정받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
다. "내가 지금은 이래도 전에는..."하며 자신의 과거를 말하는 걸 보면 그들
도 인정받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사람은 인정받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 신앙인은 신앙인대로, 불신자는 불신자대로 각자가 인정받기 위해 노
력하며 살고 있다.
현실은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다. 시장 바닥에서 악다구니하면서도 서로
가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상대방이 나를 인정해 주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
때는 상상할 수 없는 힘을 발휘할 때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자기의 사랑을 느끼며 인정해 주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줄 수 있는 용기가 생기는 것이다. 인정해 준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새로운 활력을 주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최대한으로 인
정해 주며 살았으면 좋겠다.
나는 어제 문학의 즐거움이라는 사이버 공간에서 작은 인정을 받았다.
두서없이 써 내려간 나의 삶의 이야기를 귀한 곳에 올려 주면서 개인 아이
디와 게시판도 받았다. 말은 등단 작가라고 하지만, 솟대 문학에서 수필로
등단을 해 놓고 특별하게 활동을 해 보지 못한 나였기에 더욱 힘이 생겼는
지 모르겠다. 아무튼 인정을 받는다는 것. 묘한 매력이 있다. 인정받는 것,
인정을 해 주는 것, 새로운 생명력이다. 언제나 맑은 샘물을 솟아 내는 큰샘
물처럼, 살아 있는 글을 쓰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인정받으며 살고 싶다
면 나의 욕심이 될까? 그러나 나는 하늘에 계신 그분께 가장 인정받는 사람
이 되고 싶다. 그 다음엔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에게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
고 싶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도 인정을 받고 싶다. 나는 오늘도
인정받기 위한 작은 몸부림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어쩌면 인정해 주기 위해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인정해 준다는 것, 그것은 사랑이다.
2001. 7. 22
근하여 열심히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남편들은 모두가 '편히 쉬고 싶
은 마음이다'는 것이었다. 이일 저 일로 스트레스를 받고도 집으로 돌아오는
남편은 집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편하게 안주하고 싶기 때문이라는 것
이다. 그러기 위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수많은 유혹을 만나도 과감하게
뿌리치고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어여쁜 아가씨가 유혹하는 술집, 대박이 터
졌다는 성인 오락실이 눈앞에 어른거리고, 친구들과의 술자리, 스트레스 해
소 하자며 고스톱 한판 치자는 유혹도 남편을 유혹한다.
그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집으로 돌아 왔는데 아내는 TV를 친구 삼아
남편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밤에는 컴퓨터 통신하느라 외면하고, 아이들은
게임이 더 좋다며 아버지를 외면한다면 당사자인 남편은 얼마나 초라함을
느낄 것인가 하는 내용이었다. 즉, 남편은 가정에서 아내에게 남편으로 인정
받고, 아이들에게는 아버지로 인정받아 행복함을 꿈꾸는데 그 꿈이 깨지면
집이 싫어진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쩌면 인정받기 위해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행려병자들은
인정받기 싫어할까 생각해 보아도 그건 아니다. 결식자들을 위한 무료 급식
을 2,000년 1월 4일부터 지금까지 매일 하고 있지만, 밥 한그릇을 먹기 위해
먼길을 오는 사람들이지만, 그들도 인정받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
다. "내가 지금은 이래도 전에는..."하며 자신의 과거를 말하는 걸 보면 그들
도 인정받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사람은 인정받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 신앙인은 신앙인대로, 불신자는 불신자대로 각자가 인정받기 위해 노
력하며 살고 있다.
현실은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다. 시장 바닥에서 악다구니하면서도 서로
가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상대방이 나를 인정해 주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
때는 상상할 수 없는 힘을 발휘할 때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자기의 사랑을 느끼며 인정해 주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줄 수 있는 용기가 생기는 것이다. 인정해 준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새로운 활력을 주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최대한으로 인
정해 주며 살았으면 좋겠다.
나는 어제 문학의 즐거움이라는 사이버 공간에서 작은 인정을 받았다.
두서없이 써 내려간 나의 삶의 이야기를 귀한 곳에 올려 주면서 개인 아이
디와 게시판도 받았다. 말은 등단 작가라고 하지만, 솟대 문학에서 수필로
등단을 해 놓고 특별하게 활동을 해 보지 못한 나였기에 더욱 힘이 생겼는
지 모르겠다. 아무튼 인정을 받는다는 것. 묘한 매력이 있다. 인정받는 것,
인정을 해 주는 것, 새로운 생명력이다. 언제나 맑은 샘물을 솟아 내는 큰샘
물처럼, 살아 있는 글을 쓰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인정받으며 살고 싶다
면 나의 욕심이 될까? 그러나 나는 하늘에 계신 그분께 가장 인정받는 사람
이 되고 싶다. 그 다음엔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에게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
고 싶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도 인정을 받고 싶다. 나는 오늘도
인정받기 위한 작은 몸부림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어쩌면 인정해 주기 위해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인정해 준다는 것, 그것은 사랑이다.
2001.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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