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소곤거리는 소리에 잠을 깬다. 아내와 아들의 소곤거림이다. "아빠 주무시니까 조용해라. 아빠 아파서 어제 주무시지 못했다." 비만 오면 다친 다리가 아파 날구지하는 남편의 간밤의 뒤척임 속에서도 깊은 잠을 자던 아내가 일어나 아들을 챙기는 소리다. 눈을 뜨니 아내는 아들의 가방을 챙겨 주고 있다. 어제부터 여름 성경 학교가 시작됐는데, 오늘은 아침 6시까지 교회에 가야 하기에 5시부터 분주한 아들의 모습이다. 교회에서 나눠준 여름 성경 학교 가방을 메고 이리 돌아보고, 저리 돌아보는 녀석의 모습에서 기쁨을 발견한다. 내가 어릴 때 학교에 가서 첫 소풍 갔을 때 아마 저런 기분이었을 게다.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다. 아들을 챙기는 아내의 모습이 보기 좋아 엉덩이 한 대.
아들을 보내 좋고 잠시 쉬었다가 우리도 집을 나설 채비를 한다. 아내는 무료 급식을 하러 가고 난 사무실로 나가 일을 해야 한다. 집을 나서 밖으로 나오니 주인 아주머니의 부지런함이 보인다. 비가 와서 청소를 하지 않아도 되련만, 길목을 깨끗하게 빗자루 질을 해 놓으셨다. 아마 우리 동네에서 제일 부지런하실 게다. 직접 행함으로 많은 가르침을 주시는 분이다.
차를 타고 가면서 처음 만난 분은 온몸을 비에 흠뻑 적셔서 오고 있는 어느 아저씨다. 손에는 깻잎과 호미가 들려 있는 걸 보니, 아마 밭에서 일을 하시다가 비를 맞으셨나 보다. 훤히 들여다보이는 등의 구릿빛 맨살에서 건강함을 발견한다. 누군가를 위해 수고하셨을 농부의 손바닥 굳은살이 더욱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무섭게 쏟아지던 비를 온몸으로 맞으셨을 그분의 넉넉함이 나에게 전가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마침 아는 분을 길에서 만났다. 너무나 반가워하며 팔짝 팔짝 뛰는 그 모습을 보며 소녀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언제나 반갑게 대하는 모습, 그 섬기는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은지... 러고 보니 그분이 화내는 걸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항상 밝게 웃으며 살아가는 그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은지.
무료 급식과 소록도 봉사 가서 쓸 김치라며 배추 28포기를 절여 놓고 양파와 마늘을 갈아주는 집에 들렸다. 수더분한 얼굴의 주인은 하얀 치아를 보이며 활짝 웃는다. 우리의 일을 잘 알고 있기에 언제나 넉넉하게 일을 해 주신다. 장갑을 손에 끼우며 웃으시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웃는 얼굴은 언제나 보기 좋다. 새로운 힘을 주는 것 중의 하나가 웃는 모습이다.
아들의 손을 잡고 걸어오는 어느 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 차가 지나가자 아들을 자기 쪽으로 끌어들이며 차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한
없는 부모 사랑을 만난다. 혼잡한 골목에서 잠시 차를 세우고 다른 차가 먼저 지나가게 하는 아내의 작은 배려가 보기 좋다.
기분 좋은 만남은 이렇게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하게 한다. 어지 세상에서 좋은 것만 보고 살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좋은 쪽으로 생각하며 살자. 기분 좋게 살아도 부족한 세상, 즐겁게 살아도 부족한 세상, 행복하게 살아도 부족한 세상이다. 지난 과거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가 중요하다. 즐겁게, 기분 좋게, 기쁘게,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자. 아침에 내 스스로에게 다짐을해 본다.
2001.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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