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 그리고/나눔의 문학

[수필] 모기 잡는 모기장

자오나눔 2007. 1. 16. 12:30
      무료 급식에서 밥이 부족해 남편인 나에게 점심을 사 달라고 할 때가 많
   다. 그럴 때마다 아내가 귀엽고 안쓰럽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미안함을 금할
   길이 없다. 요즘은  무료 급식을 위한 자선 바자회를 준비한다고  모두가 분
   주하다. 앞에서 이끌어 가는 장애인 남편의 손과 발이 되어 주면서, 또한 바
   자회 책임자로 수고하려니  아내도 무척 바쁘련만 마음은  언제나 넉넉하다.
   꼭 연상이라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생각ㅎ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참
   속이 깊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아이디를 '큰샘물'이라 지어 주면서 고향에
   있는 마르지 않는 샘물을 생각했었다. 그 샘의 이름도 큰샘물이었다.

      낮에 열심히 일하고 저녁 시간이  되어 밥을 하러 가야겠다던 아내가 갑
   자기 삼겹살을 먹고 싶다고 한다. 삼겹살 집에 가서  사 먹으면 되겠지만 기
   어코 시장에 가서  삼겹살을 사겠다고 한다. 함께 바자회 준비를  하던 지인
   들과 시장을 간다고 한다. 모처럼 시장 구경을 할  기회라 생각하고 따라 나
   섰다. 언제나 시장은 살아 있다.  사람 냄새가 난다. 상추를 사고, 깻잎 천원
   어치, 내일 교도소  봉사 가면서 잡채를 해갈 거라며 시금치와  당근까지 사
   서 챙기는 아내를 보고 천상 나눔의 일군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아내는 양손 가득  푸성귀를 사 들고 푸줏간에  들려 목삼겹으로 두근을
   샀다. 모처럼 저녁상이 푸짐하겠다. 집으로 돌아와 주섬주섬 상을 펴고 버너
   를 켜고 불 판을  올려놓고 지인은 고기를 굽고... 친구까지 전화로  불러 집
   으로 오게 한다. 바싹 익은 게 좋다며 삼겹살에게  고문을 가한 덕분에 반지
   하 방안에 연기가  가득하다. 현관문 영고 유리 창문  열고 연기를 빼 낸다.
   아무래도 날벌레들이 많이 들어 올 것 같다. 삼겹살  익는 냄새가 담을 타고
   앞집으로 건너 갔는가  보다. 삼겹살이 어쩌고 하면서 문을 닫는  소리가 들
   린다.

      부엌에서 밥을 하고 있는 아내에게 "내일 교도소 갈 준비 다 됐어요?"라
   고 물으니 아내도  자연스럽게 "네 됐어요..."하고 대답을 한다. 언뜻  들으
   면아내를 교도소 보내는  것 같은 대화다. 참 별난 부부라는  생각을 하겠다
   는 생각이 들어 혼자 싱긋 웃어 본다. 미소의 의미를  아내가 알리는 없지만
   감사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작은 삶속에서 행복을  찾아가는 아내가 고마
   울 따름이다.

      모처럼 포식을 했다.  지인들을 태우고 집에까지 데려다 주러  아내는 나
   가고, 나는 아들과 모처럼  스킨쉽을 했다. 항상 바쁘기만 하는 아빠가 그리
   웠던지 품에 안겨  나를 침대로 쓰러뜨린다. 10살 먹은 사내아이  치곤 너무
   나 말랐다. 먹는 것은  잘 먹는데 살이 찌지 않아 아내에게 미안할  때도 있
   다. 남들이  "애는 왜 이렇게 말랐어요?  많이 먹여야겠네요..."라고 할  때
   면 아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녀석과 끌어안고 뒹구는  모습이 영락없이 레슬링을 하는 것  같다. 방안
   에 모기가 몇 마리 들어와 신경을 쓰이게 하고  있다. 처서를 지나면 모기도
   힘을 쓰지  못한다고 하던데 요즘 모기는  비아그라를 훔쳐먹었는지 기운도
   세다. 아들에게 모기장을 치고  잠을 잤던 옛날 이야기를 해 준다. 아침이면
   모기장 구석에 배가 불룩한 모기가 몇 마리씩 있어서 그것을 잡았던 이야기
   를 해주니  녀석의 대답이 걸작이다.  "아빠~ 그러면 우리는  모기장이 없어
   모기를 잡지 못하겠네요?"

      그러고 보니 모기장은 모기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도구로도 쓰이지만,
   모기를 잡는 수고를 덜어 주는 도구로도 쓰이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런데
   도 모기장은 모기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도구로만 인식을 하고 있었던 것
   이다. 다른 생각, 다른 각도에서 사물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 참 좋은 것이
   다. 창의력의 발로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루를 배웅하고 있다. 지울  수 없는 삶, 때로는 지우고 싶은 일
   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래도 행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 아직은 살 만한
   세상이 아니던가?

      2001.9.6

'나와 너, 그리고 > 나눔의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 만남  (0) 2007.01.16
[시] 가을소곡  (0) 2007.01.16
[시] 아픔에 대하여  (0) 2007.01.16
[시] 타는 것이라네  (0) 2007.01.16
[시] 사모님 사모님 우리 사모님  (0) 2007.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