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 그리고/나눔의 문학

[단상] 이 남자가 사는 법

자오나눔 2007. 1. 16. 14:18
      주일 저녁에 목양교회 윤혜숙 전도사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어떤 남자가 휴가를 받았는데 휴가 기간에 어딘가에 가서 봉사를 하고 싶다고 해서, 자오쉼터를 소개했다는 것이다. 부부가 목양교회에 출석하고 있고 아내는 출산을 위하여 나주에 있는 친정에 내려가 있단다. 자오쉼터는 장애인들이 살아가는 곳이라고 하니 본인도 장애인이라며 손을 보여 주는데 손가락 두개가 잘려져 뭉툭하게 되어 있더란다. 소개해 주고도 혹시 자오쉼터에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주일 저녁에 다시 나와 통화를 했을때 월요일 오전에 일찍 오시라고 해 놓고 잠시 외출을 하고 돌아 오니 지금 수원이라며 전화가 왔다. 한밤 중에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를 쉼터에 들인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수원까지 왔다니 무슨 뜻이 있겠지 하며 자세하게 길을 가르쳐 주었다. 마도 사거리에 도착해서 쉼터까지 걸어가는데 몇분이나 걸리느냐고 묻는다. 그래서 어른 걸음으로 20분정도 걸린다고 했더니 걸어 오겠단다. 시간은 밤 11시를 넘겼다. 아내도 낮에 무리하게 일을 한 덕분에 지쳐서 잠이 들어 있는데 마중을 나가라고 하기도 미안하여 걸어 오라고 했다. 택시를 타고 와도 된다고 했지만 걸어 오겠다니 알아서 하시라고...

      쉼터에 도착한 그에게 새벽예배가 5시에 있으니 어서 주무시고 새벽예배 시간에 보자며 먼저 씻고 자라고 방 한칸을 내어 준다. 새벽예배 시간에야 이름을 물어 보고 나이를 물어 보았다. 송종섭, 33살이란다. 새벽예배를 마치고 나니 아침나절 일이 크다며 무슨 일을 하면 좋겠느냐고 묻는다. 축대에 얼키고 설켜있는 잡초들과 넝쿨들을 제거하는 작업을 해 달라고 하니, 장갑과 연장을 챙겨들고 나간다. 구슬땀을 흘리며 꼼꼼하게 열심히 일을 해 준다. 마치 내 일처럼 열심히 하고 있다. 더운데 쉬어가며 하라고 해도 씽긋 웃고는 계속 일을 한다.

      아침을 먹으며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나눌 수 있었다. 통영에서 측량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마침 이번에 휴가를 내 주기에 만삭인 아내가 조산기가 있어서 나주에 있는 처갓집으로 아내를 데려다 주면서 몸 조리를 하게 해 놓고 모처럼 휴가를 즐겨 보려는데, 아내가 말 하기를 "이렇게 소중한 시간에 놀지만 말고 어디 어려운 곳에 방문하여 봉사를 해 보는건 어떻가."라고 하기에, 교회에서 전도사님께 부탁을 하여 자오쉼터에 오게 되었다는 사연이었다.

      개인적으로 마음껏 즐길 수 있는 황금같은 시간에, 만삭인 아내의 권면을 받고 봉사를 하러 온 사람도 멋지지만, 남편에게 무언가 보람있는 일을 해 보게 하려는 아내의 건전한 생각도 믿음의 사람들로서 본이 되는 모습이었다. 2박3일 동안 열심히 봉사하는 종섭씨를 보며, 내가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하여 이 자리에까지 있게한 목양교회 성도라는 것이 참 감사했다.
      세상에는 말로는 무슨 일이든지 하는 것처럼 하지만, 막상 행동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구경꾼의 자리로 물러나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세상에, 어려운 이웃을 돌보며 나누는 삶에 말보다 행함으로 본을 보이는 이 사람을 보면서, 하나님이 진짜 기뻐하실 사람은 누구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2박3일의 봉사를 마치고 돌아가려는 그를 태우고 부천까지 가는 차 안에서 그가 하는 말, "시간만 나면 와서 봉사를 할께요."

      2003.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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