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 그리고/나눔의 문학

[수필] 휴가

자오나눔 2007. 1. 17. 10:52
우리 자오쉼터에 살고 있는 장애인들은 모두 지체1급 또는 정신지체 1급이라는 훈장을 달고 있다. 장애의 등급에 따라 복지혜택이 조금씩 다른 우리나라 현실을 볼 때에 ‘장애의 등급도 훈장’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중증 장애인들이기에 서로에게 남아있는 좋은 것들을 활용하여 서로에게 부족한 것들을 채워가며 살아가고 있다. 몸은 건강하지만 정신은 초등학교 1학년 수준인 혜진이, 몸은 지체1급 중증이지만 머리는 좋고 말도 잘하는 정겸이. 우리 사모는 그 둘을 한 몸으로 엮어 주었다. 정겸이는 혜진이의 머리가 되어주고, 혜진이는 정겸이의 손과 발이 되어서 행복하게 살아보자고 했다. 방도 함께 사용하게 해주니 잘 어울린다.

그래서 정겸이는 혜진이가 해야 할 일을 한 가지 한 가지씩 점검을 해주며 가르쳐 준다. 감사하게도 정겸이가 혜진이보다 두 살 더 많다. 그래서 혜진이는 정겸이를 언니라 부르며 시키는 대로 잘 따른다. 가끔 심통을 부릴 때면 걷잡을 수 없지만 그래도 잘 해 나간다.
혜진이는 정겸이의 손과 발이 되어 준다. 때로는 인력거가 되기도 한다. 정겸이가 화장실을 가야 할 때면 정겸이를 안아서 변기에 앉혀 준다. 식사시간에는 정겸이를 안아서 식당으로 이동을 시켜서 앉은뱅이 의자에 앉혀 주면 정겸이는 비로소 식사를 할 수 있게 된다. 컴퓨터를 하려고 해도 혜진이가 앉은뱅이 의자에 앉혀 주어야만 가능한데, 혜진이는 그 역할을 잘 해주고 있다. 둘이서 목욕탕에서 목욕하며 들려주는 호호 깔깔 웃는 소리는 빙그레 미소를 짓게 한다.

소록도 봉사를 간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던 우리 자오쉼터 장애인들. 지난 현충일 때 소록도 봉사를 다녀왔던 정겸이와 혜진이는 미리부터 소록도에 대하여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곁에서 바라보는 정자씨와 성용씨는 여름 소록도 봉사 때 참가할 꿈에 부풀어 있었다. 소록도로 휴가를 간다고 좋아하는 모습들이다. 휴가를 가는 것이 아니라 봉사를 가는 것이라 해도 듣는지 마는지 신났다.
봉사를 가기 전에 장거리 이동이 힘든 성용씨는 노부모님이 계시는 집으로 잠시 데려다 주었다. 휴가를 가는 것이라 생각하고 잘 지내다 오라고 했다.
봉사 출발 하루 전, 정겸이가 눈병이 났다. 비상이 걸렸다. 결론은 정겸이도 외할머님 댁으로 휴가를 보내기로 했다. 기대에 부풀어 있었는데 실망하지 않고 잘 다녀오라고 인사하는 모습이 대견하다. 아무튼 이렇게 휴가를 가게 된 성용씨와 정겸이 덕분에 혜진이와 정자씨가 편하게 되었다.

휴가,
이번 소록도 봉사는 하나님이 혜진이에게 내려주신 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겸이가 함께 참석했더라면 소록도에 가서도 꼼짝없이 정겸이 곁에 있어야 할 혜진이가 아닌가. 그런데 정겸이가 눈병이 난 덕분에 마음 편하게 활동을 할 수 있었다. 혜진이의 고백처럼 자기의 건강한 몸으로 소록도 할아버지 할머니께 봉사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하는지……. 혜진이에게 주어진 휴가. 잠시 휴식을 통하여 앞으로의 삶에서 더욱 사랑으로 살아가라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겠는가. 혜진이는 휴가를 통하여 정겸이 언니가 자기에게 소중한 사람이란 걸 알았다고 한다. 작은 것을 통하여도 감사를 배워가는 우리 자오쉼터 가족들이 장하다. 주님이 허락하신 그 순간까지 밝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잘 인도해 나가야겠다. 그것이 원장인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배려라는 것을 꼭 명심해야지…….

2004. 8. 22
‘봉사는 중독 되고 행복은 전염되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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