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 그리고/나눔의 문학

[수필] 토종닭과 산 더덕

자오나눔 2007. 1. 17. 10:51
우리나라 대표적인 인심은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중에 시골 사람들의 인심은 남다르다. 넉넉하지 않는 살림이지만 넉넉한 사람들처럼 손님을 대접하는 훈훈한 정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좋은 생선이라도 잡히는 날에는 조상들 제사 모실 제물로 사용할 것을 생각하고, 반가운 손님이 오시면 대접할 생각을 하며 그 생선을 잘 보관해 놓곤 한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던 30여 년 전에는 소금에 절여 놓거나, 햇볕에 잘 말려서 보관을 했는데 요즘은 싱싱한 상태로 손질을 잘 하여 냉동실에 보관을 한다. 그렇게 보관을 해 놓곤 일상에서는 그것을 망각한 것처럼 살아간다. 그러다 제사 때나 반가운 손님이 오시면 영락없이 그 좋은 생선 보관해 놓았던 것이 요리되어 상위에 오르곤 한다. 가장 좋은 것은 나눠먹을 수 있는 마음이 가득한 분들이 섬사람들이다.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경제가 어렵다고 하지만 그 인심은 장독에 가득한 묵은 된장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다가 다시 사랑으로 변화되어 나온다. 그것이 섬 인심이고 내 고향 청산도의 인심이다.

농사지을 땅이 너무나 부족하여 산을 개간하여 논을 만들고 밭을 만들어 한 뙤기 땅이라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논을 만들고 밭을 만들 때 돌이 너무 많이 나와서 돌들이 수북하게 쌓였고, 그 돌을 어떻게 사용할까 고민하다가 돌담을 쌓았던 지혜로운 사람들. 그로인해 바람이 많은 섬이지만 큰 피해 입지 않으며 바람과 친해진 사람들. 이제는 돌담이 소중한 문화유산이 되어 있다. 섬을 찾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돌담길을 걸을 수 있고, 구경을 하고 있는 모습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이 내 고향이다.

앞마당에는 한두 마리의 닭이 한가롭게 모이를 쪼고 있고, 텃밭에는 그물로 울타리가 쳐져 있다. 닭들이 텃밭에 들어가면 채소가 하나도 남지 않는다. 닭들이 모두 쪼아 먹어버리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지만 닭을 가둬놓지 않고 키우는 마음에는 섬을 벗어나지 못했던 간절함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자유롭게 풀어놓고 닭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행복해 하는 작은 소망을 표현하는 사람들. 반가운 손님이라도 오는 날이면 통통하게 살찐 닭 한 마리 뚝딱 잡아서 푸짐하게 상을 차리는 속 깊은 정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소록도 봉사를 마치고 가족들을 태우고 고향으로 들어갔다. 단 하루라도 마음 넉넉하고 편하게 휴식을 취하고 싶어서이다. 짐을 풀고 선풍기 바람을 친구삼아 늘어지게 낮잠도 자 보았다. 가족들을 데리고 해수욕장에 나가서 시원한 해수욕을 즐기기도 했다. 칠순이 넘은 작은아버님이 여유롭게 수영하는 모습을 보며 감탄을 하는 우리들. 아들 녀석 할아버지와 금방 친해져서 수영을 배운다고 난리다. 정신지체인 혜진 이와 정자도 마냥 신났다. 잠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다시 작은댁으로 돌아왔다.

저녁을 먹자는 소리가 들리고 상이 차려지는 것 같다. 이윽고 아이들이 나에게 식사하시라고 연락을 한다. 커다란 상을 두개 붙여 놓고 여러 가지 반찬이 놓인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한 대접씩 토종 닭죽이 놓여 있다. 작은어머님이 깊은 산속에 들어가 산 더덕을 캐다가 보관해 놓은 것으로 닭죽을 쑤었다며 먹자고 한다. 텃밭에 채소를 쪼아 먹으며 자유롭게 살았던 닭 중의 한 마리가 식탁에 올라와 있다. 맛있는 닭죽으로 변해서……. 땀을 뻘뻘 흘리며 커다란 대접에 담긴 죽을 한 그릇 다 먹었다.
당신들이 먹고 싶은 것 참고 있다가 반가운 손님이 오시면 대접할 줄 아는 사람들. 그분들이 섬사람들이고, 내 고향 사람들이고, 내 부모형제들이다. 그런 환경에서 자랐던 내가 나눔의 사역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 달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농작물이 다 타들어 간다며 걱정을 하면서도, 다시 고향을 떠나야 하는 우리들을 보내기 싫어하는 간절함이 들어 있다. 밤늦도록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잠이 들었는데 잠결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밖에 나가보니 몇 시간 후면 고향을 떠나 삶의 터전으로 돌아갈 조카를 위해 뭔가를 주섬주섬 챙겨 놓고 있는 소리였다. 작은 어머님께서는 이시간이 가장 행복할지도 모른다. 당신이 농사지어 놓은 것들을 조금씩 덜어서 챙기는 사랑의 시간이 말이다. 그 행복을 깨기 싫어 조용히 자리에 눕는다. 사랑이다.

2004년 8월 초순에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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