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 창문을 열면 커다란 아름드리 소나무가 세 그루 서 있다. 지붕에 솔잎이 떨어져 배수구를 막게 된다고 나무를 자르자는 의견이 많았었다. 그래도 저 나무 한 그루를 키우려면 몇 십 년 걸릴텐데 어떻게 베냐며 그냥 남겨 두도록 했었다. 그 덕분에 창문을 열면 시원한 솔바람이 들어온다. 베어 내지 않은 대신에 소나무는 시원한 그늘과 솔바람을 선물해 주고 있다. 소나무 아래로는 칡넝쿨이 싸리나무 가지를 휘감아 올라가고 있다. 바로 곁에 있는 아카시아 나무에는 칡넝쿨이 올라가지 않는 걸 보면, 칡넝쿨도 가시에 찔리면 아픔을 느끼는가 보다.
아미(애완견)가 창문 쪽을 바라보며 으르렁댄다. 일하다 창 밖을 보니 요즘은 반갑지 않다는 까치 한 마리가 푸드득거리며 땅에서 싸리나무가지로 올라갔다가, 다시 땅으로 내려와 종종걸음을 걷는 모습이 보인다. 까치가 싸리 꽃을 따먹느라고 분주하다. 까치는 과일을 먹어도 제일 맛난 과일만 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꽃을 따먹는 걸 보니 녀석은 멋을 아는 것 같다. 종종 걸음으로 어디론가 금방 다녀와 다시 싸리나무에 오르는 걸 보면, 어쩌면 꽃을 따다가 자기 짝에게 물어다 주는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도 남을 챙겨주는 사람이 된 사람인데, 까치도 된 까치인가 보다.
아침엔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더니 지금은 약간 흐린 날씨에 바람이 솔솔 불어 주고 있다. 어디선가 더덕냄새가 풍겨 온다. 아들래미 학교서 돌아오면 한바퀴 돌아 봐야겠다. 요즘은 수풀이 무성지게 자라서 목발을 짚고 가다가 걸려 넘어지기 일수다. 아들래미 어깨를 빌려야겠다. 이제 중학교 1학년이면서 체구도 작은 편이지만 벌써부터 녀석이 든든하다. 어젯밤엔 컴퓨터 시험을 내 주면서 풀어 보라고 했더니 잘 한다. 그런데 학교에서 본 시험은 왜 점수가 안나올까? 그것도 불가사의다. 알고 보니 선생님이 불러 주시고 학생들은 답을 적는단다.
원인을 알았다. 녀석은 청각장애인이다. 보청기를 착용하고도 말을 정확하게 들을 수 없기에 큰 소리로 불러 줘야하는데 보통 목소리로 불러줘서 컴퓨터 시험이 엉망이었단다. 그러면 다른 과목은 왜 점수가 안 나올까? 내 아들 탓이고, 내 탓이다. 내가 바쁘다는 이유로 공부를 봐 주지 않아서이다. 더 관심을 가져줘야지...
주변엔 아카시아 나무도 많다. 올 봄에 아카시아 꽃도 참 많이 피었었는데 아카시아 향을 맡아보지 못한 것 같다. 그렇게 바쁘게 올 봄을 보낸 것 같다. 내가 일 저지르기를 주저하지 않은 결과인 것 같다. 팔팔한 20대도 아니면서, 40대 중반의 나이에 20대처럼 새롭게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은 결과로 무척 바쁘게 지낸 올 봄인 것 같다.
'일단 한번 시작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하여 글을 읽었었다. 내용 중에 "그래도 한 번 시작해보는 것이다. 꼭 완성이나 완벽할 필요는 없다. 자기가 갈 수 있는 데까지 가 보는 것이다. 과정에서 몰입을 해보는 것이다. 사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는가."는 말이 나를 사로잡았다.
봄이 언제 내 곁을 떠나갔는지 모르지만 아직도 봄의 여운은 내 마음에 남아 있다. 봄에게 내 곁에 있어 달라고 한들 봄이 기다려 주지 않겠지만, 봄을 보내며 마음을 정리해 본다. 무척 분주하게 보낸 올 봄이었는데 흔적이 없다. 그렇다고 추억이 남아 있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인생은 추억 만들기라는 말도 있는데 아쉽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봄을 보내야 한다. 아니 봄은 내가 보내기 전에 이미 떠나가고 없었다. 봄의 실종이다.
2005. 6. 15
-나눔-
아미(애완견)가 창문 쪽을 바라보며 으르렁댄다. 일하다 창 밖을 보니 요즘은 반갑지 않다는 까치 한 마리가 푸드득거리며 땅에서 싸리나무가지로 올라갔다가, 다시 땅으로 내려와 종종걸음을 걷는 모습이 보인다. 까치가 싸리 꽃을 따먹느라고 분주하다. 까치는 과일을 먹어도 제일 맛난 과일만 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꽃을 따먹는 걸 보니 녀석은 멋을 아는 것 같다. 종종 걸음으로 어디론가 금방 다녀와 다시 싸리나무에 오르는 걸 보면, 어쩌면 꽃을 따다가 자기 짝에게 물어다 주는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도 남을 챙겨주는 사람이 된 사람인데, 까치도 된 까치인가 보다.
아침엔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더니 지금은 약간 흐린 날씨에 바람이 솔솔 불어 주고 있다. 어디선가 더덕냄새가 풍겨 온다. 아들래미 학교서 돌아오면 한바퀴 돌아 봐야겠다. 요즘은 수풀이 무성지게 자라서 목발을 짚고 가다가 걸려 넘어지기 일수다. 아들래미 어깨를 빌려야겠다. 이제 중학교 1학년이면서 체구도 작은 편이지만 벌써부터 녀석이 든든하다. 어젯밤엔 컴퓨터 시험을 내 주면서 풀어 보라고 했더니 잘 한다. 그런데 학교에서 본 시험은 왜 점수가 안나올까? 그것도 불가사의다. 알고 보니 선생님이 불러 주시고 학생들은 답을 적는단다.
원인을 알았다. 녀석은 청각장애인이다. 보청기를 착용하고도 말을 정확하게 들을 수 없기에 큰 소리로 불러 줘야하는데 보통 목소리로 불러줘서 컴퓨터 시험이 엉망이었단다. 그러면 다른 과목은 왜 점수가 안 나올까? 내 아들 탓이고, 내 탓이다. 내가 바쁘다는 이유로 공부를 봐 주지 않아서이다. 더 관심을 가져줘야지...
주변엔 아카시아 나무도 많다. 올 봄에 아카시아 꽃도 참 많이 피었었는데 아카시아 향을 맡아보지 못한 것 같다. 그렇게 바쁘게 올 봄을 보낸 것 같다. 내가 일 저지르기를 주저하지 않은 결과인 것 같다. 팔팔한 20대도 아니면서, 40대 중반의 나이에 20대처럼 새롭게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은 결과로 무척 바쁘게 지낸 올 봄인 것 같다.
'일단 한번 시작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하여 글을 읽었었다. 내용 중에 "그래도 한 번 시작해보는 것이다. 꼭 완성이나 완벽할 필요는 없다. 자기가 갈 수 있는 데까지 가 보는 것이다. 과정에서 몰입을 해보는 것이다. 사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는가."는 말이 나를 사로잡았다.
봄이 언제 내 곁을 떠나갔는지 모르지만 아직도 봄의 여운은 내 마음에 남아 있다. 봄에게 내 곁에 있어 달라고 한들 봄이 기다려 주지 않겠지만, 봄을 보내며 마음을 정리해 본다. 무척 분주하게 보낸 올 봄이었는데 흔적이 없다. 그렇다고 추억이 남아 있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인생은 추억 만들기라는 말도 있는데 아쉽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봄을 보내야 한다. 아니 봄은 내가 보내기 전에 이미 떠나가고 없었다. 봄의 실종이다.
2005. 6. 15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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