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은 이별을 위해 존재한다는 말이 떠올랐던 하루였다. 사람과의 만남도 영원히 지속되지 않고 삶과 죽음을 통해서라도 서로 이별을 하게 되는데, 오늘은 나에게는 새로운 이별이 있었던 날이었다. 그 녀석들이 우리 자오쉼터에서 와서 살게 된지는 15개월 전이다. 그때 그 녀석들은 2개월된 귀여운 강아지들이었다. 나는 먹는 것은 좋아해도 키우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아내의 열정이 그 녀석들을 데려와 키우게 되었다. 족보가 있는 녀석들이었다. 썰매를 힘있게 끌고 다닌다는 시베리안 허스키, 녀석은 수컷이었다. 영화 101마리 개에서 나왔다는 달마시안, 하얀 몸에 검은 점이 있는 녀석은 암컷이었다. 녀석들에게 이름을 지어주라는 아내의 말에 시베리안에게는 '킹'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달마시안에게는 '공주'라는 이름을 지어줬었다.
2개월 된 녀석들을 대구에서 차에 태워 가져올 때 차에서 멀미를 하여 토한 것을 말 없이 치우는 아내를 보면서 '참 별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녀석들이 자라면서 대견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공주가 아내를 보면서 씨익 웃는 모습은 압권이었다. 킹에게 밥을 주려고 가면 좋아서 껑충 껑충 뛰는 모습을 보며 힘이 장사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엔 주인을 제대로 만났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애완견이 애완견으로 자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굵은 쇠사슬에 묶여서 키워지는 모습이 안되었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가끔 줄을 풀고 돌아다니는 녀석들을 큰 소리로 불러보면 반갑게 뛰어 온다. 품에 안길 때는 목발을 지탱하지 못하고 내가 쓰러지기도 했었다. 그런데도 주인을 제대로 만났더라면 실내에서 자랐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며칠 전에 동네 어르신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내가 받았는데 말을 들어 보니, 우리 킹이 울면 동네 개들이 모두 운다는 것이다. 집에 개가 울면 그 집이 망한다는 이야기가 있다면서 우리 개들을 울지 못하게 하라는 항의 전화였었다.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이 "우리 킹이 동네 개들의 대장인갑다. 이름을 참 잘 지었네... 아니 자기들 개가 우는 것이 왜 우리 개 탓을 할까?" 그렇게 말을 했지만 마음이 무거웠다. 처음에 장애인 시설을 건축할 때 마을에서 반대를 하여 애를 먹었었는데, 고집을 부렸다가 마을 사람들과 불화가 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와 상의를 하여 좋은 주인을 새롭게 만나게 하자고...
그렇게 하여 내가 가입한 카페에 글을 올렸고, 여기 저기서 데려가겠다는 연락이 왔지만 내 스타일대로 먼저 연락을 해온 여주의 무심님께 드리기로 결정을 했다. 사례를 하겠다는 무심님께 그런 걱정 마시라고 했다.
오늘은 킹과 공주를 데리러 오는 날이었다. 아니 그 녀석들이 우리와 이별하는 날이었다. 아침밥도 더 많이 주라고 했다. 15개월 동안 매 끼니를 끓여서 줬었다. 그 사랑을 아는지 녀석들도 잘 자라줬고, 공주는 곧 발정을 하여 첫 새끼를 가질 때가 되었고, 킹은 훌륭한 사내구실을 할 때가 되었는데 녀석들과 이별을 한다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몇 번을 녀석들에게 갔는지 모르겠다. 점심때가 되어 무심님이 오셨다. 녀석들의 머리를 한번씩 쓰다듬어 본다. '잘 가라... 좋은 분을 새 주인으로 섬기며 건강하게 잘 살렴...' 내일 봉사 갈 물품을 사러 시장에 나간 아내가 돌아오기 전에 킹과 공주를 보냈다. 녀석들도 아는지 차에 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친다. 반대편 차창을 열고 내가 녀석의 끈을 잡고 태웠다. 목줄까지 풀고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는 킹, 차에서 내리려고 발버둥치는 공주, 그래도 보내야 했다. 차를 타고 훌쩍 떠나는 녀석들을 배웅하고 돌아서는데 목발이 휘청거린다.
아내한테 전화가 왔다. "킹하고 공주 데려 갔느냐."고... 아내는 차마 녀석들을 배웅할 수 없어 시장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단다. 아내에게 "처음 본 분이지만 선하게 생기셨던데 잘 키울 꺼야..."라고 말한 내 말속에는 강한 신뢰가 들어 있었다. 가끔은 이별 연습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 나는 소중한 이별 연습을 했다. 정이 뭔지...
2005. 6. 15
-나눔-
2개월 된 녀석들을 대구에서 차에 태워 가져올 때 차에서 멀미를 하여 토한 것을 말 없이 치우는 아내를 보면서 '참 별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녀석들이 자라면서 대견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공주가 아내를 보면서 씨익 웃는 모습은 압권이었다. 킹에게 밥을 주려고 가면 좋아서 껑충 껑충 뛰는 모습을 보며 힘이 장사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엔 주인을 제대로 만났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애완견이 애완견으로 자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굵은 쇠사슬에 묶여서 키워지는 모습이 안되었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가끔 줄을 풀고 돌아다니는 녀석들을 큰 소리로 불러보면 반갑게 뛰어 온다. 품에 안길 때는 목발을 지탱하지 못하고 내가 쓰러지기도 했었다. 그런데도 주인을 제대로 만났더라면 실내에서 자랐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며칠 전에 동네 어르신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내가 받았는데 말을 들어 보니, 우리 킹이 울면 동네 개들이 모두 운다는 것이다. 집에 개가 울면 그 집이 망한다는 이야기가 있다면서 우리 개들을 울지 못하게 하라는 항의 전화였었다.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이 "우리 킹이 동네 개들의 대장인갑다. 이름을 참 잘 지었네... 아니 자기들 개가 우는 것이 왜 우리 개 탓을 할까?" 그렇게 말을 했지만 마음이 무거웠다. 처음에 장애인 시설을 건축할 때 마을에서 반대를 하여 애를 먹었었는데, 고집을 부렸다가 마을 사람들과 불화가 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와 상의를 하여 좋은 주인을 새롭게 만나게 하자고...
그렇게 하여 내가 가입한 카페에 글을 올렸고, 여기 저기서 데려가겠다는 연락이 왔지만 내 스타일대로 먼저 연락을 해온 여주의 무심님께 드리기로 결정을 했다. 사례를 하겠다는 무심님께 그런 걱정 마시라고 했다.
오늘은 킹과 공주를 데리러 오는 날이었다. 아니 그 녀석들이 우리와 이별하는 날이었다. 아침밥도 더 많이 주라고 했다. 15개월 동안 매 끼니를 끓여서 줬었다. 그 사랑을 아는지 녀석들도 잘 자라줬고, 공주는 곧 발정을 하여 첫 새끼를 가질 때가 되었고, 킹은 훌륭한 사내구실을 할 때가 되었는데 녀석들과 이별을 한다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몇 번을 녀석들에게 갔는지 모르겠다. 점심때가 되어 무심님이 오셨다. 녀석들의 머리를 한번씩 쓰다듬어 본다. '잘 가라... 좋은 분을 새 주인으로 섬기며 건강하게 잘 살렴...' 내일 봉사 갈 물품을 사러 시장에 나간 아내가 돌아오기 전에 킹과 공주를 보냈다. 녀석들도 아는지 차에 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친다. 반대편 차창을 열고 내가 녀석의 끈을 잡고 태웠다. 목줄까지 풀고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는 킹, 차에서 내리려고 발버둥치는 공주, 그래도 보내야 했다. 차를 타고 훌쩍 떠나는 녀석들을 배웅하고 돌아서는데 목발이 휘청거린다.
아내한테 전화가 왔다. "킹하고 공주 데려 갔느냐."고... 아내는 차마 녀석들을 배웅할 수 없어 시장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단다. 아내에게 "처음 본 분이지만 선하게 생기셨던데 잘 키울 꺼야..."라고 말한 내 말속에는 강한 신뢰가 들어 있었다. 가끔은 이별 연습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 나는 소중한 이별 연습을 했다. 정이 뭔지...
2005. 6. 15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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