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중독 행복전염/봉사 댕겨 왔슈~

[춘천] 행복한 희생...

자오나눔 2007. 1. 17. 13:15
     봉사를 가는 날이면 새벽부터 바쁩니다. 먼길을 가야하기에 일찍 출발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입만 살아서 아내만 귀찮게 하는 나, 이것저것 지시하는 대로 봉사 갈 준비를 해주는 아내, 이렇게 고생은 아내가 하는데 칭찬은 내가 받는 것 같아서 항상 아내에게 미안합니다. 그리고 아내가 참 고맙습니다. 고마운 사람이 또 있습니다. 이제는 섬기는 것이 몸에 익숙해진 미룡님입니다. 아이들을 챙겨서 학교에 보내고 하루를 시작하는 주부의 위치이지만, 봉사의 길에는 작은 희생도 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아이를 깨워서 밥을 먹여놓고 시간 되면 학교에 가라고 당부하고 함께 봉사를 떠납니다. 이동하며 중간중간 전화를 걸어 아이를 챙겨 학교에 가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 미안함과 함께 감사가 나옵니다. 이번에도 저와 아내, 미룡, 꼬마아가씨 혜진, 이렇게 네명이서 아침 일찍 춘천 나눔의 동산으로 봉사를 떠납니다. 장애인 공동체 건축이 마무리되지 않아 연일 바쁜 와중이지만 해야 할 것은 해야 하기에 기쁨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어른들은 그런 말을 했습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밥 한 그릇이라도 나누는 것이 하늘에다 덕을 쌓는 일이다."라고요. 배고픔을 피부로 느끼며 살아왔던 할머님들에게는 오락이나 예배를 드리러 오는 사람보다 식사봉사를 오는 사람이 더 반가운가 봅니다. 우리들의 손을 잡아주며 감사해하는 것을 보면 느낄 수 있습니다. 날씨 좋은 봄날에 땅에서는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나고 있습니다. 화단에는 난초 꽃 새싹이 한 무더기 돋아나고 있었습니다. 느끼지 않으려 해도 봄의 찬양을 느낄 수 있습니다. 봄은 이렇게 우리들의 마음에도 정이라는 싹을 돋아나게 하고 있습니다. 면사무소에서 나오셔서 무너진 제방들을 새로 쌓고 있습니다. 봄이 되니 붕괴지역들을 점검하며 보수공사를 해 주는가 봅니다. 대민 봉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을 보며 한 모금 정을 마시게 됩니다.

     예배당 겸 식당의 한쪽 벽에 여러 장의 그림이 붙여져 있었습니다. 아마 함께 살아가는 장애인들이 그린 그림인가 봅니다. 전에 붙여져 있던 그림들은 어둡고 날카로웠는데, 지금의 그림은 화단과 꽃과 나무와 사람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도 봄이 찾아왔는가 봅니다. 어떤 그림에 눈이 고정되고 있었습니다. 점토를 이용해 만든 풍성한 식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무슨 내용인지 몰랐는데, 자기가 만든 것이라며 자랑하는 장애인의 설명을 듣고야 아하! 감탄을 하게 됩니다. 접시 위에는 사과와 바나나, 그리고 빵이 담겨져 있었고, 각종 꽃들도 식탁에 차려져 있었습니다. 엉성하지만 자연 속에 풍성한 식탁을 만들어 종이에 붙여 놓은 것이었습니다. 점점 좋아지는 그들, 정신지체 장애인들이라도 배우면 한 부분에서는 발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림으로 그려진 마음들, 그림에 나타난 평화와 행복이 언제나 그들에게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어느새 풍성한 식탁이 차려졌습니다. 제육볶음, 생선가스, 콩비지, 김치, 홍합 미역국, 밥... 보기만 하여도 먹음직스럽습니다. 주방에서 열심히 수고한 아내와 미룡님의 솜씨입니다. 배고파하는 그들에겐 식사기도를 빨리 해 주는 게 기쁨입니다. 맛있는 식사를 앞에 두고도 마음대로 먹지 못하는 장애인들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밥을 떠서 먹여주는 다른 장애인, 여기서도 작은 나눔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배고픈 건 모두 같을 텐데 자기 앞에 음식을 놓고도, 혼자 먹지 못하는 동료를 챙겨주는 모습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발견합니다. 나눔은 자기 희생이었습니다. 행복한 희생이었습니다. 두남님이 복지관 직원과 함께 도착했습니다. 만나자 마자 할 이야기가 참 많았습니다. 사회복지사인 두남님께 물어 볼 것도 많았고요. 시간이 아쉽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가 끝나자 다음 일정을 위해 돌아가야 합니다. 잠시 스치는 바람처럼 들려서 봉사하고 돌아가는 모습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는 기쁨이 되리라 믿습니다.

     이제는 우리도 오갈 곳 없는 할머님들과 여성장애인, 그리고 고아들과 살아야 하기에 봉사 오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아시는지, 내 조막손을 꼭 잡으시며 "이제는 여기 오시지 말고 그쪽에서 열심히 사시라"고 당부해 주시는 어느 할머님의 눈가에는 이슬이 맺혀져 있었습니다. 사랑입니다. 정입니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지나는 길이 있으면 꼭 들리겠다고 인사를 할 수밖에... 원장님과 간사들의 배웅을 받으며 돌아가고 있는데 휴대전화기로 연락이 왔습니다. "어? 인사도 못했는데 그냥 가시면 어떻게 해요?" "돌아가면 홈페이지에서 만날텐데 뭐... 열심히 삽시다."라는 인사가 전부입니다. 싱겁지만 그게 좋습니다. 차안에선 멋대가리 없이 전화한다고 한마디씩 합니다. 그래도 하늘은 참 맑습니다.

     2003. 3.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