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 그리고/나눔의 서평

[서평] 당신, 내 말 듣고 있어요?

자오나눔 2007. 12. 1. 11:59
 

- 서론 : 들어가는 말


어느 나라든지 문화의 차이는 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문화라고 할지라도 그 나라에서는 자연스러운 것이 있다. 그 나라에 가서 내가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한다면, 오히려 내가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패션 문화를 보더라도 40년 전에는 미니스커트는 상상도 못할 패션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미니스커트가 국내에 들어온 지 벌써 40년이 흘렀다. 익히 알고 있듯이 미니스커트를 국내 처음 소개한 이는 가수 윤복희씨다. 윤씨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남자 친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 당시 런던에서 유행하던 미니스커트를 입고 김포공항에 도착했는데 그것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회고했다.


1967년 그 당시 그녀의 이러한 행동은 패션의 충격을 넘어 사회적으로도 큰 논란이 됐다. 보수적인 사회통념상 여성이 허벅지를 훤히 드러낸다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고 풍기문란을 이유로 경찰은 이들을 단속하기에 바빴다. 그때 단속 기준은 경범법 처벌에 의해 무릎 위 마지노선 20㎝까지였다.

국내에서 미니스커트가 자리 잡기 시작하자 70년대에는 패션과 실용성을 가미한 '핫팬츠'가 등장, 유행을 리드했다. 핫팬츠는 미니스커트를 능가하는 짧은 길이로 과감함을 더했으며, 보는 이들로 하여금 아찔함을 배가시켰다.

이어 80년대와 90년대에는 다양한 패션 아이템이 선보였다. 미니스커트에 대한 인기가 다소 시들해진 틈을 타 중간 길이의 미디스커트, 맥시스커트가 잠시 주목을 받기도 했지만 여전히 미니스커트의 인기는 계속됐다. 특히 치마를 통한 여성성보다는 남녀 구분이 없는 유니섹스 패션이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이후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여성적인 매력을 한껏 발산할 수 있는 미니스커트 바람이 다시 뜨거워졌다. 달라진 점은 이른바 쫄바지라고 불리는 레깅스가 등장하면서 부담스럽게 맨살을 드러내지 않아도 돼 더욱 과감해졌다는 것이다. 주위의 부담스런 시선을 피하면서도 나름대로 각선미를 드러낼 수 있어 더 대담한 시도가 잇따르고 있다. 패션 관계자들조차 이러다가 엉덩이를 드러내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책에서는 증조할머니부터 증손 주까지 4대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펼쳐지고 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일상이지만, 어쩌면 젊은 세대에게는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들일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는 독자로서는 너무나 개방적인 결혼 관념에 대해서는 내심 당혹해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쉽게 만나 쉽게 결혼하고, 너무나 쉽게 헤어지는 공동체의 삶으로 인하여 새로운 개념의 가족이 탄생하고 있음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것이 단순하게 지어낸 픽션이 아니고, 지금 프랑스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는 사실을 소설 형식으로 지은 것이라면, 머지않아 우리나라도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시대의 흐름은 막을 수 없는 법, 그러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 국회에는 간통죄를 폐지하자는 안건이 상정되어 있다고 한다. 만약 간통죄까지 폐지된다면 외국처럼 프리섹스 시대로 들어 설 텐데, 미풍양속, 도덕적인 사고방식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사람들은 참으로 적응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서서히 책속으로 들어 가 보기로 한다.




- 본론 : 책속으로



* 주인공의 상황


. 돈 : 벌 만큼 번다. - 주인공은 베스트셀러 작가이고 남편은 자리 잡힌 출판사의 사장이다.

. 건강 : 살이 좀 쪄서 그렇지 아직도 건강한 부부생활을 유지한다.

. 남편 : 가끔 미친 척 기분 낼 줄도 아는 키 큰 남자다.

. 자식 : 다 키웠다. -큰 딸은 치과 의사와 살고 있고 일러스트레이터인 막내딸은 독립해 나갔다.

. 시부모 : 모시지 않는다. - 시어머니는 실버타운에 따로 살고 있다.

. 친구들 : 종류별로 다 있다. - 어릴 적의 친구부터 슈퍼우먼에 그냥 친구, 속내 친구까지.



* 책 소개


프랑스 사람들이 카페나 식당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 이 사람들 참 수다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잠시도 쉬지 않고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하는 건지.

니콜 드뷔롱의 소설 『당신, 내 말 듣고 있어요?』도 이런 프랑스 사람들처럼 수다스럽다. 자기 이야기는 물론, 가족, 친구들의 소소한 일들을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풀어내고 있다. 작가는 일면 가볍게 느껴지는 이야기 속에 인생에 대한 성찰과 사랑의 본질에 대한 깨달음을 담아 놓았다. 삶에 대한 환희와 유머로 유명한 프랑스 여류 작가 니콜 드뷔롱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

프랑스의 김수현이라고 할 수 있는 드뷔롱은 실제 겪을 수 있는 상황들을 재미있게 그려 독자들의 공감을 얻는 작가이다.

이 책에서 작가는 덜렁거리고 요리 솜씨 없는 주부이지만 용기와 미소를 잃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주인공 ‘당신’의 일상을 재치 있게 그려낸다.

한 남자의 아내로, 자매의 엄마로, 손자 손녀들의 할머니로, 그리고 여자로 겪게 되는 이야기들을 간결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표현하여 글을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한다. 물론 ‘당신’의 이야기가 마냥 재미있기만 한 것은 아니다.

 즐거움 속에 삶의 무거움과 관계의 어려움, 그리고 구덩이 연속의 일상이 담겨 있어 재미있게 글을 읽으면서 조용히 생각을 가다듬게 한다.

사랑에는 달콤한 꿀과 씁쓸한 담즙이 섞여 있다

이 소설에는 많은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일곱 살 꼬마가 담임선생님에게 쏟아 붇는 열정, 사춘기 소녀의 스타에 대한 동경, 열일곱 살 소년의 짧지만 순수한 사랑, 일흔일곱 살 할머니의 격정적이면서도 다정한 사랑, 유통 기간은 짧지만 순도만큼은 높은 막내딸의 러브 어페어, 첫 결혼의 쓰라림 속에서도 새로운 사랑을 찾은 큰딸의 용기, 38년 동안 남편에게 ‘사랑해’라는 말 한 번 듣지 못했지만 여전히 뜨거운 당신의 사랑…….


대부분의 사랑 이야기처럼 사랑의 영원성과 환상을 말하는 대신 사랑의 치졸함과 질투, 스러짐을 말하지만 도리어 사랑의 위대함을 믿게 만드는 것은 아마도 드뷔롱이 사랑의 본질을 꿰뚫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인칭을 사용하여 독자들이 쉽게 주인공의 입장에 설 수 있게 한다. 이 소설은 주인공이 이인칭 대명사인 ‘당신’으로 되어 있어 독자들이 소설을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게끔 한다. ‘당신’은 혼자 있을 때면 사랑하는 고양이 ‘멜시오르’(일명 프티 샤)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당신하고만 말하는 오만하고 자존심 강한 멜시오르는 당신의 아픈 곳을 콕콕 찌르기도 하지만, 당신에게 유용한 정보와 훌륭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 좋은 친구이다.  멜시오르와 당신의 대화를 들으며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당신’이 친구나 엄마처럼 느껴져 당신의 행동에 맞장구를 치게 된다.



* 작품 줄거리


1장 : 변덕스러운 마음 - 사랑에는 再發이란 것이 흔하다.

갑작스런 막내딸 알리제의 출현으로 일상의 평안함에 위협을 받는 당신.

자신의 아파트를 옛 남자 친구 토마에게 넘기고 쓰레기봉투에 비닐 끈으로 묶은 짐을 들고 들어온 알리제는 만난 지 열흘 정도 된 브라질 출신 댄서 조아오와의 사랑 때문에 바로 그날까지 함께 살았던 토마와의 관계를 끝내려 한다.


. 말도 통하지 않는 조아오와 불같은 사랑에 빠진 막내딸은 당신이 토마의 애원과 협박에 지쳐가는 것은 개의치 않는다. 큰딸 쥐스틴의 말처럼 ‘알리제의 문제’에 괴로운 건 당신. 갑작스런 조아오 부모와의 만남을 앞두고 당신은 잠깐 브라질에서의 삶을 꿈꿔 본다. 교양 있고 돈 많은 조아오의 부모는 알리제가 백인이라서 아들과의 결혼을 허락할 수 없다며 조아오를 데리고 떠나 버린다.

조아오의 배신에 상심한 알리제는 사흘 동안 앓아눕는다. 그때 당신의 전화로 걸려온 질이라는 새로운 남자. 알리제는 신이 나서 재잘거린다. 이제 토마를 처리하는 건 당신 몫. 녀석이 집을 비운 사이 ‘급 출장, 열쇠 고침’을 불러 자물쇠를 바꿔 버린다. 사건 종료……. 다음 사건까지.

“그렇지만 말이야, 프티 샤, 여자 애들은 곧잘 생각을 바꾼단다. 어떨 땐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바꾸지. 멋진 남자가 지나가면 더 그래.” (본문 26쪽)

“내게 영원한 사랑을 약속했다고요! 그걸 써 주기까지 했는걸요. 자기 피로요!!!”

저런 저런, 정신 연령이 열 살이구먼, 둘 다!

“이건 알아야 되네. 사랑이란 깨지기 쉬운 거라네.”

거들먹거리며 충고하는 당신. (본문 31쪽)



2장 : 릴리벨의 가출 - 나이 든 사랑과 타다 남은 재는 아무 계절에고 다시 타오른다.


시어머니 릴리벨이 사라졌다. 주름살 제거 수술, 우아한 차림, 부풀린 머리로 65세로 보이는 75세의 릴리벨은 시설 좋은 실버타운에서 세월을 되돌리며 살고 있었다. 그 릴리벨이 사라진 것이다. 새벽 3시, 서재의 팩스가 들어오고 있다.

-얘들아, 내가 오늘 16시 45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퇴역 해군 소장 쥘 데 브륄리 씨와 결혼했단다. 우린 너무도 행복하다. 글피에 돌아가마. 애정을 담아서, 릴리벨.-


쥘 소장님 자식들과 한차례 전쟁을 치르고 난 후, 당신은 알리제와 함께 릴리벨의 환영식을 준비한다. 쥐스틴은 사위 제2호와 세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온다.

드디어 신혼부부 도착. 분위기 좋은 환영식은 쥘 소장 아들들의 출현으로 잠시 혼란을 겪으나 곧 사태가 수습되고 신혼부부는 행복해한다.

“나이가 들었다고 사랑도 못하는 거는 아니죠! 진정해요. 저는 오히려 쥘 소장님에게 연인들의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수여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본문 54쪽)



3장 : 젊음은 지나가야 하느니 - 젊은이들의 사랑이란 마르지 않는 장작이 타는 것처럼 열기보다는 연기를 더 많이 내 뿜는다.


아침 7시 5분. 전화가 요란하게 울린다. 기분 나쁜 상상을 하면서 전화를 받는 주인공. 그러나 전화의 내용은 나쁜 것이 아니었다. 맏손자 마시아스가 지금까지 보던 잡지를 다른 것으로 바꾸고 싶은데, 그것이 ‘십자가’라는 가톨릭 신문이었다. 결혼 문제로 가톨릭 쪽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고 있던 주인공은 깜짝 놀란다. 그러면서도 손자가 나쁜 잡지가 아닌 가톨릭 신문을 보겠다고 하니 마음이 놓인다.

그러던 어느 날 맏손자가 여자 친구를 초대하겠다고 하면서 금욕주의파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신체장애자로 알고 다시 물을 때, 모여서 기도하고 명상하고 선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대답을 해 준다. 그러면서 비밀리에 하느님 앞에서 약혼을 했음을 알려준다. 그러면서 결혼 때까지는 순결을 지키겠다고 한다. 그러나 어찌 사람 일이 그렇게 쉽게 되는가? 임신을 한 여자친구, 결혼을 시켜야함을 인식한 가족들의 상황 대처,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성인용품들의 소개, 깜짝 놀란 주인공은 전혀 몰랐던 그 성인 용품을 구입하여 사용해 보기로 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남자보다 여자가 더 용감하다. 딸도 새로운 남자를 만나고 있다. 엄마와 딸이 티격태격하는 가운데 이번 사랑도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질 날만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4장 : 에밀리와 포티롱 - 사랑해 주고 싶지 않은 소녀란 없다.


유명 연예인에게 사인을 받고 가벼운 스킨십을 받고 싶은 13살짜리 아이들 2명이 그 연예인에게 접근했다가 경호원에게 낭패를 당하고 있을 때, 경찰서로 찾아가 그 경호원을 멋지게 쫓아내는 주인공. 우리 세상의 삶에도 잘못이 없는데도 약자라는 이유로 잘못한 사람으로 변해 있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특히 교도소에 가 보면 수많은 재소자들 가운데 돈이 없어서 죄인이 되어 감옥에 와 있는 경우도 허다함을 본다. 지금 세상이 그렇지 않는가? 유전무죄 무전유죄.

자식들이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들의 뜻대로 행동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내 아이만은 얌전한 모범생인줄 알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알고 보니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리고 있음을 보았을 때, 어느 날 편지 한 장 써 놓고 가출해 버린 아이, 그 아이를 봤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보지만 찾지 못했을 때 비통함이란…….

그래서 자식은 품안에 있을 때 자식이지 품 떠나면 남이라는 말이 있는 가 보다.


5장 : 아틸라의 열정 - 사랑에는 나이가 상관없는 법

어느 날인가부터 일곱 살짜리 막내 손자 아틸라가 심부름만 시키면 돈을 달라고 한다. 담임선생님 플뢰르 양과 결혼하기 위해서.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당신에게 아틸라의 운명 플뢰르 양이 전화를 건다. 아틸라가 약혼 선물로 준 루비 반지를 돌려주려고, 당신을 만난 플뢰르 양은 아틸라가 남자 친구의 오토바이 바퀴를 펑크 낸 적이 있다며 하소연한다.

머리가 아픈 당신. 결국 당신은 끙끙 앓아누운 아틸라에게 사랑은 맞서 싸워야 하는 거라며 11년 후에 결혼할 거라고 선언하라는 조언을 한다.

 당신의 조언대로 아틸라는 플뢰르 양의 약혼자 라샤르와 남자 대 남자로 이야기를 나누고 친구가 된다. 들뜬 아틸라의 열정도 점점 사라지고 평소대로 조용해진다.



6장 : 질투심 -질투심은 지옥처럼 가혹하며 그 격렬함은 세차게 타오르는 불꽃과 같다


온 집안이 질투라는 열병에 빠져 버렸다. 시작은 쥘 소장님. 릴리벨을 만나기 전 클라라라는 애인이 있었던 쥘 소장님은 여전히 주변에서 맴도는 클라라 때문에 릴리벨이 괴로워한다며 상담을 요청한다. 나이 드신 분들의 격렬하면서도 다정한 사랑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당신이다.

다음은 쥐스틴. 이혼한 지 8년이 지난 사위 1호 라울의 두 번째 아내 오딜이 임신을 했다는 말에 불같이 화를 낸다. 쥐스틴과 오딜의 갈등에 마음이 쓰인 당신은 알리제에게 질투심에 대해 이야기한다.

순간, 질의 인기에 노심초사하던 알리제는 눈물을 흘리며 질투의 괴로움을 하소연하고. 당신은 지난날 자신이 질투심에 빠졌던 사건들을 떠올린다.

질투 때문에 끝나 버린 첫사랑, 남자의 지난 연인에 대한 질투, 결혼한 지 38년이 되었지만 남자 곁에서 알짱거리는 여인에 대한 질투……. 질투의 열병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는다.

오! 핼쑥하고 창백한 얼굴의 우울한 질투심이여!(볼테르)

“다른 여자가 있대?”

“미쳤어? 그럼 내가 목을 비틀어 버린 다음에 변명하게 놔둘 거란 걸 그이도 잘 알고 있다고.”

“그럼 뭐 하러 걱정하는데?”

“그러게 엄마는 질투란 게 뭔지 모르는 거야.” (본문 144쪽)



7장 : 비밀 - 돈의 가치를 알고 싶으면 빌려 보라


부부 사이의 가장 큰 비밀은 바로 금전 문제이다. 쥐스틴과 알리제는 결코 당신에게 금전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쥐스틴은 사위 2호와 각자 명의의 계좌가 있고 공동 명의의 계좌가 있다는 정도밖에, 알리제는 그런 사소한 문제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며 남은 돈이 있는 쪽에서 지불한다는 정도밖에 이야기하지 않는다.

당신 친구들의 금전적 평온함은 남편이 너그러운가 아니면 인색한가에 달려 있다. 당신과 남자 사이에도 이상한 금전 관계가 얽혀 있다. 당신은 늙어서 돈이 없을까 봐 평생 전전긍긍해 왔으며, 가족이나 친구에게는 돈을 주면 주었지 빌려 주지는 않는다


. 남자는 돈에 대해 통이 크면서도 쩨쩨하다. 진짜 모피 코트를 사 준 날 밤, 당신이 벽난로에 나무를 많이 넣었다고 호통을 친다. 38년 동안 똑같은 생활비를 건네주며 올려달라는 말에 콧방귀만 뀐다. 그러면서도 가끔 엉뚱하면서도 휘황찬란한 선물을 한다. 금전 문제는 어느 커플에게나 비밀스럽고 어려운 문제일지니…….

“당신, 38년 동안 파 한 단 값이 세 배는 뛴 것 몰라요?”

“……상관없어. 난 파가 싫어.”

“당신이 주는 돈으로는 생활할 수가 없어요.”

“어쩔 수 없지. 도저히 더 줄 수가 없어. 뻔 한 내 월급에서는 무리야.” (본문 183쪽)



8장 : 경축일 - 낟알이 비둘기를 살찌우는 것처럼 잔치와 선물은 사랑을 살찌운다.


생일, 자기와 같은 이름의 성자의 축일, 크리스마스, 어머니의 날, 아버지의 날, 할머니의 날, 연인의 날 등 경축일을 챙기는 일은 즐거움인 동시에 괴로움이다. 이래저래 열일곱 번의 축일을 치러 내야 하는 당신은 매번 죽을 맛이다. 이번 크리스마스 때에도 가족들 선물을 고르느라 지친 당신.

돈 쓰는 게 문제가 아니라 각자에게 기쁜 선물을 고르는 것이 문제이다. 여기저기서 고른 열두 개나 되는 선물 봉투를 들고 퉁퉁 부은 발에서 신발을 벗겨 낸 당신은 아틸라의 선물을 잊어버린 걸 알고 울음을 터뜨린다.

 결국 남자를 협박해 아틸라의 손목시계를 사오게 한 당신은 이번도 무사히 경축일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사랑을 표시해야 한다. 축하 잔치와 선물들로. (본문 190쪽)



9장 : 남자 친구, 여자 친구 - 그녀들이므로, 당신이니까…… 그들이므로, 그이니까……


당신이 첫눈에 반해 남자의 인생에 들어섰을 때, 남자 친구들은 위선적인 웃음을 지으며 당신을 귀찮은 침입자로 낙인찍으려 했다. 위선에는 위선으로. 당신 역시 남자의 친구들을 위해 근사한 포커 파티를 차려 준다. 쥐스틴이 태어나고 얼마 후, 포커 파티는 다른 친구의 집으로 옮겨진다. 남자의 친구들이 하나 둘 여자와 살게 되면서 서서히 변하기 시작한다. 마음에 안 드는 여자와 결혼한 친구와 서서히 멀어지는 것을 시작으로 말이다. 남자 역시 당신 친구들을 좋아하지만은 않는다.

당신은 당신의 친구들-어릴 적 친구, 슈퍼우먼, 그냥 친구, 속내 친구-과 여전히 교유하지만 모두와 같은 정도는 아니다. 각자의 환경과 처지에 따라 만남의 정도와 질이 다르다.

문제는 당신의 친구와 남자의 친구가 커플이 되는 경우. 그 불똥이 당신에게까지 미친다. 부부의 평화를 유지하는 데 친구 부부의 싸움만큼 위험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가 커플로 자리를 잡으면 각자 자기의 친구들을 함께 짐 속에 꾸려 오게 마련이다. 그 짐 속의 내용물을 섞는 것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다. (본문 216쪽)



10장 : 당신의 화를 돋우는 남자의 단점들 - 결점이 없는 말을 타려는 사람은 걸어서 가야 한다.


남자는 잠에서 깨어나며 엄청난 하품 소리를 내지른다. 당신이 침대로 아침식사를 가져다주어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비발디의 트럼펫 독주곡을 최대한 크게 틀어 놓는다. 자기 물건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출근하던 남자는 집을 나서려는 순간 당신의 존재가 떠올라 저녁때 보자는 말을 던지고 쾅 문을 닫고 나가 버린다. 이 사랑스러운 남자에게도 가벼운 결점이 있다.

자존심이 세다, 거짓말쟁이다, 무뚝뚝하다, 화를 잘 낸다. 부부 싸움을 하면 당신이 옳을 때마저도 용서를 빌어야 하는 것은 당신이다. 시간이 흘러 당신은 양보하는 법을 배운다. 절대로 남자에게 하지 않는 말들이 생긴다. 그렇게 서로에게 익숙해진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 : 남자가 ‘부끄럽지도 않아! 이런 바보 같은 걸 텔레비전에서 쳐다보고 있다니!’라며 테니스 경기로 채널을 돌릴 때도 아무 말 하지 않는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 : 당신이 구두약 사는 것을 깜박했다는 핑계로 비싼 화장 크림으로 자기 구두를 반짝반짝 닦을 때도 그냥 꾹 참는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 : 당신의 장바구니를 뒤지며 ‘속옷 가게 차릴 거야?’라고 비아냥거려도 대꾸하지 않는다. (본문 279쪽)



11장 : 쥐스틴의 결혼식 - 재혼이란 경험에 대한 희망의 승리이다


말이 없는 사위 2호는 쥐스틴과 결혼식을 올리고 싶어 한다. 그러나 첫 남편과의 결혼 생활에 질려 버린 쥐스틴은 절대 반대이다.

어느 가족 식사 때 사위 2호가 결혼식 이야기를 꺼낸다. 결혼 준비만 자신이 안 한다면 하겠다는 쥐스틴의 말에 모든 일은 당신이 떠맡게 된다. 결혼식 장소 선정부터 말다툼이 일어난다.

결혼식 음식, 음악, 초대 손님 명단, 웨딩드레스, 결혼 행진곡, 결혼식 복장, 청첩장, 비디오 제작, 사진 촬영, 자리 배치, 결혼반지, 증인, 결혼 선물, 케이크…….


드디어 결혼식 날. 사돈어른이 늦은 참석으로 시청에서의 결혼식을 아슬아슬 마치고 파리 근처의 한 성에서 성대한 파티를 갖는다. 물론 수많은 사건들이 일어나 당신의 마음을 졸이게 한 것은 당연한 일이고. 결혼식 다음 날, 마침내 일은 터진다. 누구도 신혼여행을 준비하지 않은 거다.

사돈어른의 호기로 쥐스틴과 사위 2호뿐만 아니라 아이들까지 모두 서프라이즈 신혼여행을 떠난다. 이로써 당신도 임무 완수.

출국 수속을 하러 들어가며 큰딸이 당신에게 부케를 던지며 소리친다.

“엄마, 아빠,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모두가 합창한다.

남자와 팔짱을 끼고 비행기가 이륙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속삭인다.

“너무 행복해서 눈물조차 안 나올 지경이에요.”

“나는 눈물이 나와, 파산이야!” (본문 321쪽)




- 결론 : 나가는 말


저자는 니콜 드뷔롱(Nicole de Buron), 옮긴이는 박경혜이다.

멀지 않은 우리들의 미래를 보는 듯하다. 아니 어쩌면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은 건지, 아니면 지금부터라도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 건지,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물 흐르는 대로 맡기는 것이 좋을까? 이 책을 단순한 소설로 읽는다면 황당한 사건 전개로 인하여 스트레스를 풀 수 있을 것이다.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중산층 주부의 일상이 실제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처럼 생동감 있게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지루하고 단조로운 일상에 웃음과 생기를 주는 소설이다.

그러나 현실로 다가온다면 심히 당혹스러운 일들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언젠간 이야기속의 일들이 현실로 다가올 것이고 어쩌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 본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읽으면 웃음과 생기를 주지만, 깊이 생각하고 읽는다면 많은 고민을 해야 할 책이다. 그러나 유익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