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 그리고/나눔의 서평

[서평] 낯선 여행길에서 우연히 만난다면

자오나눔 2007. 12. 22. 01:31
 

- 들어가는 말


그 아이는 바닷가로 소풍을 가기 전에는 그렇게 큰 배를 구경한 적이 없었다. 그 큰 배를 보기 전까지는 자기가 섬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다 드넓은 바다를 보았고, 그 바다위에 하얗게 꽃피는 파도를 보았다. 그 파도를 거슬러 올라가며 육지로 나가는 교두보가 큰 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 아이는 섬을 떠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섬에서 중학교까지 마친 후에야 진학을 위하여 육지로 나올 수 있었다. 그 아이에게 육지는 낯선 곳이었으며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는 미지의 세계이기도 했다. 섬을 떠나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난 것과 마찬가지 상황이었지만 더 멀리 떠나는 것은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말았다. 어른이 되어 가정을 꾸리고 더 넓은 세상이 있음을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우리는 일탈을 꿈꾼다. 지금 삶이 힘들거나 무료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일탈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도전이고,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는 것과 같다. 일탈은 자유였다. 그러면서도 일탈을 직접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며 주저하고 있는 것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생각하면 낯선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사람은 용기 있는 사람이다.



- 책 속으로


작가는 여는 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아직 콩깍지 속에 있는 콩들에게는 저 넓은 세상을 얘기해주고 싶고, 세상을 많이 굴러다닌 콩들에게는 이제 땅에 뿌리를 깊이 내리자는 얘기를 하고 싶으며, 여행과 현실 사이에서 늘 세상 밖을 그리는 콩들에게는 희망찬 꿈을 소박하게 키워가자는 얘기를 하고 싶다.”


그러면서 작가는 여행을 숨은 그림 찾기로 표현을 하고 있다.

숨은 그림을 잘 찾는 방법.

첫째, 찾으려는 욕심을 버린다.

둘째, 뒤로 물러나 전체를 본다.

셋째, 그래도 안보이면 딴청을 하다가 본다.

여행은 그렇게 삶속의 숨은 그림을 찾는 과정이 아닐까? (95쪽)


작가는 수많은 여행을 하면서 각 나라마다 있는 종교에 대하여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 

- 종교는 아름답지만 무섭기도 하다. 관용과 포옹을 자랑하는 힌두교조차도 접경지대에서는 광기를 띠고, 같은 이슬람교도라는 시아파와 수니파는 원수 대하듯이 서로를 죽인다. 기독교 역시 가톨릭과 개신교가 한때 처절한 전쟁을 벌였고 타 종교를 핍박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종교는 아름다운 꽃과 가시를 함께 갖고 있다. 그 꽃이 아름다워서 매혹되다가도 가끔은 가시가 두려워진다. - (147쪽)


미용사 중의 한 명은 이런 얘기를 했다.

“제 친척 중 어떤 분은 정말 성실하게 살았어요. 은행 빚을 내서 좋은 집도 샀지요. 그 빚을 갚느라고 나이 쉰 살이 될 때까지 놀지도 못하고 알뜰하게 살았는데 그만 빚을 갚는 순간, 암에 걸렸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그 치료비를 대기 위해 그 집을 팔았대요. 그런 얘길 들으니 참 허무하기도 하고, 아등바등 살아서 무엇하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때부터 전 틈틈이 시간을 내어 여행을 즐기고 있어요.” (169쪽)


여행과 사랑에 빠지면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성공과 명예의 수단이 아니듯이, 이제 자기 인생의 수단이 되기에는 여행이 너무도 애틋해진다. 사랑하는 연인과 보내는 시간이 너무도 좋기에 불안해도 그 길을 가는 것이다. 물론 상처 입고 가다가 깨지고 자기의 삶이 망가질 위험도 있다. 그러나 삶은 원래 그런 모험으로 가득 찬 길이다. 용기 있는 자만이 모험을 즐길 수 있으며 운명을 사랑하게 된다. (204쪽)


살아가는 곳에선 갈증을 쉽게 채울 수 없어 멀고 먼 여행을 떠나 있는 곳, 시간과 공간이 분리되지 않은 모태처럼 충만한 곳, 즉 우주의 중심으로 가고 싶어 한다. 그러나 세상이라는 이 변방의 해변에 도착하는 순간, 시간과 공간과 관계는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어 날카로운 칼로 우리를 생채기 낸다. 그때 느끼는 정신의 아픔, 그 아픔 속에서 비늘처럼 빛나는 찬란한 순간들.

그래서 우리는 다시 탈출을 꿈꾼다. 몸은 먼 곳을 향하지만, 정신은 중심을 향한다. 그러나 수많은 오고 감 속에서, 육신의 제약 속에서 고통과 이별과 외로움이야말로 삶의 힘인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카르마(Karma)야말로 내 삶의 근원인 것도, 이런 것들은 우주의 중심으로 향하는 여행의 소중한 연료다. 오늘도 나는 연료를 모은다, (236쪽)


아름다움은 언제 보이나? 그것은 섬광처럼 번뜩이는 순간에 모습을 드러내고 마음을 비울 때 나타난다. 그러므로 여행 경험이 쌓일수록, 나이가 들어 갈수록 내 지식과 경험을 자꾸 비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만해진다. 어디를 여행했고, 몇 년을 여행했고, 몇 번을 갔고, 세계 일주를 했고 대륙을 횡단했고, 내가 몇 살인데, 내가 왕년에 뭘 했는데……. 하는 말들에서 오는 무게를 털어 버려야 진정한 아름다움이 보인다.

그리고 그건 여행의 태도이기 이전에 일상에서도 중요한 태도이다. 결국 여행과 일상은 동전의 앞뒤처럼 둘이 아닌 하나. 안에서 그런 작은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밖에 나가서도 그런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아름다운 여행이 아닐까? (255쪽)


우리 주변에서도 크게 되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릴 적에 고생을 많이 한다. 독야청청 홀로 잘난 체하며 살지 않고 세상과 조화를 이루며 자신을 성장시킨다. 그라고 세상이라는 토양을 양분 삼아 무럭무럭 자라난다. 뿌리를 든든히 내리고 싹을 틔우는 과정에서 온갖 고난과 고통을 이겨낸다. 따가운 햇살과 차가운 바람과 비를 맞으며 온갖 해충을 이겨내고 자란 나무들은 튼실한 열매를 맺고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258쪽)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성공하고 싶은가? 꿈을 실현하고 싶은가? 그러면 천천히 가라. 인생의 한 부분을 뚝 떼어 바쳐라. 자신을 너무 고집하지 말고 깨지고 상처받으며 한 걸음씩 걸어가라. 어떤 일이든 그렇게 10년만 해봐라. 남을 부러워하지 말며 자신의 꽃을 피워라.”

그러면 그 길을 가다가 어느 날 문득, 성공은 남들의 시선에서 확인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슴속에서 남모르게 열리는 작은 열매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것이 진짜 성공이 아닐까? (261쪽)



- 나가는 말


여행과 현실 사이, 늘 세상 밖을 그리는 당신에게 오래된 여행자가 마음으로 건네는 이야기. 여행은 중독성이 강하다. 한번 여행의 맛을 본 사람들은 돌아온 일상에 쉽게 마음 붙이지 못한 채 자꾸만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힌다. 그것은 지금 우리의 현실이 팍팍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여행이 또 그만큼 강렬한 매력을 가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그는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했고, 가끔 떠남을 고민하는 이들에게는 이메일로 답장도 주었다. 그런데 무조건 ‘떠나라’는 말을 할 순 없었다고 한다. 여행은 한 시절이지만 삶은 길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조건 세상에 딱 달라붙어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일까? 그것은 결코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낯선 여행길……』은 오래된 여행자 이지상의 첫 번째 산문집으로, 지난 20년간 전 세계를 다니며 온몸으로 체험하고 얻어낸 것들에 대한 작은 기록이자, 여행의 매혹에 빠져 늘 세상 밖을 그리는 사람들에게 마음으로 건네고 싶은 이야기이다.


책 속의 모든 글은 저자의 삶과 많은 사람들의 경험담, 그 현장에서 끌어올린 것이기에 진정성이 있으며,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 책은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뿐 아니라, 여행에 대한 열병으로 가슴앓이 하는 사람들, 요즘 들어 부쩍 많아진 장기 여행자들을 향한 어느 오래된 여행자의 애정과 위로와 격려가 담긴, 온기가 느껴지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도 일탈을 꿈꾸며 무언가 준비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표를 정해 놓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준비하며 누리는 행복, 그 행복을 간직하는 것도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낯선 여행길에서 우연히 만나는 그 무엇이 나를 더욱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면서…….


2007. 12. 22

-양미동(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