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에게 소록도에 봉사 간다고 했더니 나환자들이 뭐가 좋다고 1년에 몇 번씩 13년 동안 다니느냐고 한다. 그래서 내가 한 대답은 “보고 싶어서…….”였다. 안보면 미칠 것 같다는 말의 의미는 연애를 해 본 사람은 아마 알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서 소록도는 그런 상태다. 그래서 간다. 보고 싶어서, 비록 양손이 몽당손이고 두 다리가 무릎 아래론 없지만, 눈은 감겨지지 않고 입술은 닫히지 않아 침이 줄줄 흘러나오지만, 그래도 그 모습이 보고 싶고, 안보면 안타까워 간다. 내 마음이 편하고 싶어서 간다. 그래서 이해를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그 길이 틀린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런 길도 누군가 가고 있어야 길이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걷는 이 길을 누군가 동행해 준다면 덜 외로울 것이고, 새로운 힘이 날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하나님이 동행해 주시고, 보이는 곳에서는 지인들이 함께 해 주신다. 그래서 참 고맙고 감사하다.
9명이 출발을 한다. 최종 집결지는 소록도가 보이는 녹동항이다. 그곳에서 배를 타고 가야하기에 약속 시간을 정해 놓고 부지런히 달려간다. 내 차에는 경기도 화성에서, 충청도 태안에서, 전북 김제에서, 전북 전주에서, 대전에서 사시는 분들이 탔다. 그렇게 5명, 경북 김천에서 출발한 차에는 4명이 탔다. 소록도를 향해 내려가는 길이 아주 좋다. 어제까지만 해도 비가 왔었는데, 오늘은 비도 그치고 간간이 햇살이 보이지만 구름기둥으로 뜨거운 태양을 가려주는 아주 좋은 날이다.
전국에서 소고기 재협상을 놓고 촛불 집회가 벌어지고 있다. 오늘은 현충일이다. 과거에는 폭력이 난무하는 시위를 했었던 국민들이 지금은 비폭력 시위를 스스로 할 수 있을 정도로 국민의 수준이 높아졌다. 과거의 희생이 있었기에 이 나라가 존재하고 있고, 이렇게 현충일을 정해놓고 그들을 기릴 수 있지 않는가. 이렇게 의미 있는 날에 소록도에 계시는 한센병자들을 찾아갈 수 있는 우리들은 분명 하나님의 복 있는 사람들이다. 평소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풍경도 차창을 통해 볼 수 있으니 참으로 근사하다.
소록도를 15분 간격으로 왕복 운행하는 바지선에 차를 싣는다. 일행도 모두 탔다. 바다 가운데 우뚝 서있는 소록대교는 아직 개통을 하지 않고 있다. 소록대교를 볼 때마다 마음이 눅눅해진다. 저 다리가 개통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깨끗한 소록도가 많이 오염될 것 같다는 생각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소록도에 도착하니 선착장에 이집사님이 마중을 나와 계신다. 입도신청은 이집사님이 미리 해 놓으셨기 때문에 바로 차를 타고 구북리로 이동을 할 수 있었다. 교회에 손님들이 와 계시다기에 남장로님 댁으로 먼저 가기로 했다. 남장로님이 교회에서 금방 오셨다. 권사님은 병원에 입원해 계신단다. 방문자들과 주민 몇 명이 모여서 함께 예배를 드렸다. 마 16:13-20 본문으로 말씀을 전했다.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하신 다는 것과, 천국은 돈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간다는 것을 전했다. 예배를 마친 후에 마련해간 구제금이 담긴 봉투를 전해 드렸다.
이제 점심을 먹어야 한다. 평소엔 녹동항에서 점심을 사 먹고 들어오는데 이제부턴 라면을 먹더라도 소록도에 들어와 소록도 주민들과 함께 먹기로 했다. 김종헌 전도사님께 라면 5박스 싣고 오라고 했었다. 몇 봉지 꺼내어 끓여 먹고 나머지는 세 가정에 나눠드린다.
여자분들이 라면을 끓이는 동안에 남장로님과 이집사님과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이집사님은 베트남 아가씨와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다. 아내의 영주권 마련을 위해 고생하는데 우리 자오에서 도울 일이 없을까 공지를 내렸었는데, 하얀집 전도사님의 마당발이 변호사까지 연결시켜 작업이 진행 중이다. 잘되리라 믿는다. 기름 값이 많이 올라 스타랙스 12인승 차량의 운행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며 고충을 호소하신다. 북성교회에서 매월 20만원씩 유지비로 지원해 준다면 되겠다는 절충안을 내 놓고 의견을 나눠 보도록 하자고~ 여름에 있을 봉사 이야기까지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기름 값의 폭등과 치솟는 물가로 인해 많은 회원들이 이동을 하여 봉사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클 것 같다는 이야기까지 나눈다.
라면이 차려 졌다. 김치 한 가지에 오이 썰어 놓은 것, 그래도 진수성찬이다. 배고프면 생라면도 진수성찬이 된다는 걸 나는 경험해 보아서 알고 있다. 라면을 좋아하지 않는 분들이 끓인 솜씨였지만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김동월 할머님 댁으로 심방을 간다. 다리가 없어서 걷지도 못하고, 손목 이하로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 손으로 기어 다니시는 할머님의 몸 상태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그래도 감사가 수시로 터져 나오는 멋진 하나님의 딸이다. 지난 4월 19일에 왔을 때 심방을 했었는데 또 들리니 너무나 반가워하시고 기뻐하신다. 사 1:18 본문으로 간단하게 말씀을 전했다.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하는 것은 보혈의 능력임을 전했다. 마련해 간 구제금 봉투를 전해 주며 약값에 보태라고 했다. 할머님이 냉장고로 기어가시더니 손수 박카스 한 박스를 꺼내 주시며 마시라고 하신다. 참석자 모두 가슴 뭉클함으로 박카스를 마신다. 궁금한 것들을 질문하라고 했더니 다양한 질문이 나온다. 29에 홀로 소록도에 들어오셨다는 할머님은 올해 81세다. 52년을 소록도에서 살고 계신다. 그 모습 그대로……. 그렇게 살면서도 하루 10시간 이상을 기도하며 사시는 분이시다. 우리들의 기도제목을 모두 알고 계셨다. 새로 방문한 일행은 기도제목을 읽기 좋게 큰 글씨로 적어서 전해 준다. 기도로 보답해 주신다는 할머님의 말씀이 참 감사하다. 모두 무릎을 꿇고 통성 기도로 소록도 구북리 하늘을 울렸다. 대표 기도해 주신 김종헌 전도사님, 강귀자 전도사님, 김정애 전도사님, 이근실 집사님, 강계선 성도님, 김성열, 김광열 학생, 김천 부항중앙교회 사모님. 모두 열정이 가득한 분들이다. 이제 교회로 이동을 하기 전에 할머님과 남장로님, 이집사님 부부 방문자 모두 한자리에 모여 사진도 찍었다.
손님들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북성교회에 들려 기도를 하고, 교회의 역사 흔적들을 돌아본다. 이제 돌아가는 시간이 가깝다. 소록도 견학을 했다. 13년의 노하우를 발휘하여 일행들에게 가이드를 해 드렸다. 시간은 어느새 저녁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집으로 가야할 시간이다. 타고 왔던 배를 다시 탄다. 소록도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애환의 섬, 기도의 섬, 감사의 섬이 우리들 마음속에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게 감사를 드린다.
2008. 6. 6.
-양미동(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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