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 그리고/나눔의 문학

[스크랩] [수필] 거두지 않는 것도 죄다.

자오나눔 2008. 7. 6.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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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텃밭에 나갔지요. 어제 장대같이 쏟아지던 비의 흔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침 햇살이 알알이 쏟아져 내려오고 살랑대는 바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볼을 만져주듯 감미롭습니다.

아내는 무공해로 농사를 지어 보겠다고 800여 평의 밭에 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여러 가지 심어 놨습니다. 농약도 하지 않고, 제초제도 뿌려주지 않고, 비료도 주지 않고, 오직 퇴비로만 모든 걸 해결하려고 합니다. 무슨 발효액을 스스로 만들어 퇴비에 섞어서 뿌려 줬던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행동인 것 같습니다. 잡초는 없다고 하던데 제 눈에는 잡초로 보이는 풀들이 옥수수 대만큼 키가 자랐습니다. 어느 게 수박 밭이고, 어느 것이 풀밭인지, 어느 것이 가지 밭이고 어느 것이 풀밭인지, 어느 것이 고추밭이고 어느 것이 풀밭인지, 어느 것이 오이 밭이고 어느 것이 풀밭인지…. 아무튼 땅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다행이 어제 친구들이 봉사 와서 예초기로 고랑의 풀을 걷어 내 주었기에 구분이 됩니다.

그래도 살랑대는 바람에 옥수수가 익어가고, 따가운 햇살에 수박과 참외가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며칠 후면 수박을 따 먹어도 될 만큼 크게 자란 녀석들도 있던데요? 오로지 퇴비만 먹고 자란 덕분인지 튼실하게 잘 잘랐습니다. 가지와 오이는 뒤엉켜서 엉망이지만 자기들끼리 질서를 잡고 열매를 맺겠지요?


밭을 돌아보곤 서재로 내려왔습니다. 서재 창문을 열어 놓았는데 바람에 살랑대는 옥수수 이파리들의 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참 한가롭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화…, 평화로운 풍경이라고 해야 하나요? 아무튼 그런 풍경이었습니다.

수건으로 땀을 닦곤 다시 밭으로 나갔지요. 밭에 호박이며 오이며 가지며 더 있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풀을 뽑아주지 못해 무성하게 우거진 밭, 봉사자들이 뱀이 나올까봐 무서워 들어가지 못한 곳도 있거든요. 목발을 집고 푹푹 빠지며 보물찾기를 했습니다.

와~~ 외호박이며 노각이며 가지며 엄청 많은 거 있죠? 넘어지면 넘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차분하게 앉아서 열매들을 따서 고랑으로 던져놨습니다.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거두지 못한 호박이며, 오이들이 땅에 떨어져 썩고 있는 것들도 보입니다. 그래도 싱싱한 것들이 참 많습니다. 아들을 불러 올려서 챙기라고 할 요량입니다. 아들을 불렀습니다. 늦잠 잔 아들은 잠이 덜 깬 상태로 텃밭에 올라와 아빠가 따 놓은 열매들을 거둬들입니다. 땀을 비 오듯 흘리며 딴 열매들이 외발수레에 가득합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인데 설교를 작성해 놓은 것을 일부 빼고 아침에 밭에서 있었던 수확의 기쁨을 전해 주려고 합니다.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내용이라 성도들이 좋아하겠지요. 수확의 기쁨은 씨앗을 뿌린 사람이 거두어야 더 크겠지요. 씨앗을 뿌린 사람은 결실까지 생각하며 뿌리니까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땅에서 기름진 영양분을 빨아먹고, 하늘에서 내려준 햇살과 비와 바람과 공기와 수많은 것들을 받아서 알차게 열매를 만들어 놨는데, 거두지 않고 땅에서 썩혀 버리는 것도 죄라는 생각 말입니다.

태신자를 열심히 가슴에 품고 기도하고 키워놨는데, 거둬야할 때에 거두지 못해 그 영혼을 건지지 못했다면 그것도 책망 받을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씨뿌리고 잘 가꾸는 것도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가장 튼실하게 열매가 맺혔을 때 거두는 것도 참으로 소중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골에서 살다보니 이런 은혜도 받습니다. 참 감사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시 126 : 5-6


2008. 7. 6.

-양미동(나눔)―


출처 : 자오쉼터
글쓴이 : 나눔(양미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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