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들이 책을 읽으며 대나무 이파리가 바람에 스치는 소리를 들으며 시심을 일으키곤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대나무 밭에 정자를 만들어 놓고 책을 읽어도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더랍니다. 섬에서 자란 저는 대나무 낚시를 자주하며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뒤 곁 담장 아래로 4-5미터 정도 자란 대나무들은 근사한 낚싯대가 되곤 했습니다. 튼실한 대나무 톱으로 밑동을 잘라내고, 가지는 낫으로 툭툭 쳐내면 늘씬한 낚싯대로 변합니다. 끝에 낚싯줄을 묶어서 낚시 바늘을 달고 봉돌을 달아서 미끼를 끼우고 바다에 던지면 볼락이나 노래미가 어김없이 낚여 올라오곤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대나무를 생각하면 정감이 있습니다.
어른 팔뚝만큼 굵은 대나무는 매력이 없습니다. 죽순을 따 먹을 정도의 굵은 대나무는 매력이 없습니다. 굵어봐야 기껏 지름이 2cm 정도 되면 딱입니다. 그런 대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는 대밭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대나무를 심을 장소를 물색했습니다. 집 주위로 충분한 공간이 있었지만 대나무가 자라면 어울릴만한 장소는 마땅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안방 창문 너머로 아름드리 소나무가 자리를 잡고 있는데, 그 아래에는 옹벽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아 흙이 흘러내리는 곳이 있었습니다. 그곳에 대나무를 심으면 흙도 무너져 내리지 않고, 창문을 열면 대나무 이파리 스치는 소리가 근사하게 들릴 것 같아서 다섯 그루를 사다가 심었습니다. 다음카페 띠방 친구들이 봉사를 와서 잘 심어주었습니다.
겨울을 보내며 이파리가 모두 죽어 버렸기에 경기도에는 대나무가 자랄 기후조건이 되지 않는가 보다고 생각을 했었지요. 그런데 봄이 되니 말라버린 줄 알았던 대나무에 물이 오르고 댓잎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기분이 참 좋더군요.
어제, 창문을 열어 놓고 밖을 쳐다보던 아내가 신기하다는 듯 중얼거립니다. “저게 뭐지? 저게 뭐지? 여보 저게 죽순이야?” 아내의 질문에 밖을 보니 늘씬한 크기의 죽순이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주변을 돌아보니 죽순이 열 댓 개가 땅을 뚫고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와~ 기분이 새로웠습니다. 아! 저게?
우후죽순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 비가 제법 내렸었습니다. 메마른 땅에 앙상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던 대나무 다섯 그루. 그러나 그들은 땅속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땅속에서는 희망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을 해버리는 경우가 참 많은데, 보이는 것만 다 진실은 아닌가 봅니다. 존재한 것을 내가 다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볼 수 있는 것이 존재한다는 말이 이해가 될 듯합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인양, 보이는 것에 울고 웃으며 살아가는 나의 삶은 아니었는지…….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볼 수 있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그렇게 살아간다면 훨씬 여유롭게, 훨씬 너그럽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시간에도 보이지 않는 것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소중한 분들을 생각합니다. 그들을 생각하며 작은 것에도 감사하며 살아가야겠습니다. 죽순 몇 그루에 갑자기 철이 든 것 같습니다. 5월이 다 지나갔습니다. 이제 새로운 시작의 문을 엽니다. 시작은 언제나 희망입니다.
2008. 5. 31.
-양미동(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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