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을 해야 하는데 그 일을 준비할 여력이 없을 때는 난감하다. 그럴 때마다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임을 잘 안다. 경제가 어렵고 주변 환경이 어려워서 그런지 나눔의 사역을 해 가면서도 많은 어려움을 겪곤 한다. 특히 교도소 사역은 더 어렵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물론 재소자들을 상대로 하는 교화활동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그 때마다 필요한 물품도 채워주시고, 필요한 인원도 채워주신다는 사실이다. 이번 교화행사도 하나님은 그렇게 함께해 주셨다. 최장로님이 연락을 주셔서 이번 교화행사 때 빵과 과일, 기타 필요한 물품을 협찬하고 싶다는 연락을 주셨고, 기도하던 중이라 감사하게 승낙을 했었다. 덕분에 음료와 과자류와 일회용 접시와 컵만 준비하면 됐다. 시장 보는 수고가 조금 덜어졌다. 감사하다.
교도소 장애인 재소자 사역을 시작한지 만11년이 지났다. 매월 찾아가는 교도소지만 여전히 낯설다. 장애인도 재소자가 있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럴 땐 정말 난감하다. 그들 개개인에 대한 상황도 잘 모르지만 일부러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단지 알고 있는 사실은 일부는 조직사회에 있으면서 생긴 부상이나 장애로 인해 발생한 손괴의 흔적을 가지고 장애인 교화행사에 참석하는 재소자도 있고, 일부는 노점상이나 생계를 위해 열심히 살아가다가 철거반들과 물리적인 충돌로 인하여,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피해자들이 되었다는 재소자도 있고, 강력범이 아닌 절도나 사기 등을 저질러서 재소자가 된 분들도 있다는 것이다. 먹고 살아갈 길이 막막하여 다시 들어 왔다는 어느 할아버지 재소자의 고백은 참으로 마음을 힘들게 하곤 했다. 국태민안 태평성대의 날이 언제나 임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날이 오기 전까지는 생계형 범죄들은 끊임없이 지속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성경 필사용지를 마련해 와 달라는 부탁을 흔쾌히 승낙하고 인쇄해 온 백집사님, 빵과 과일을 싣고 미리 오신 최장로님. 열렬한 기도 동역자이신 샬롬님. 섬기는 일이 숨 쉬는 것처럼 익숙하신 하얀집 전도사님. 박경용 목사님과 함께 오신 이종찬 목사님. 그리고 나까지 일곱 명이 함께 교화행사 장소로 이동을 한다. 그때 교도관이 오시더니 말씀하신다. 준비해간 은박지 일회용 접시는 가져갈 수 없단다. 무슨 말인가 했더니 은박지를 꼬아 선으로 만든 다음에 전기를 연결하여 라면을 끓여 먹기도 한단다. 그래서 은박지로 만들어진 일회용 접시 반입은 안 된단다. 아하~ 맞아~ 그런 방법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도소 내에 있는 접시들을 사용하기로 했다. 평소 하는 대로 절차를 밟아서 행사장으로 이동을 한다. 2층 예배당에서 찬송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악대의 아름답고 힘찬 연주소리도 들린다. 11년 전에 교화행사를 할 때는 재소자들이 미리 찬양을 부르고 있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만들어 주셨다. 거친 욕 소리와 아귀다툼이 난무하던 그곳에서 찬양이 흘러나오게 만들어 주셨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감기 몸살로 찬양 인도를 하기 힘든 백집사님. 이번에는 재소자 악대에게 찬양 인도를 일임하신다. 덕분에 돌발 상황이 자주 발생했다. 참석자들에게 무언가 한가지씩이라도 하게 하려는 나의 생각은 여러 가지 변수를 일으키곤 한다. 덕분에 당황스러우면서도 긴장감이 적당히 흐르고 재미가 있다. 이 목사님의 기도와 참석자 전원 특송, 박목사님 설교와 이 목사님 축도로 1부 예배가 끝났다. 2부는 여전히 활기차다. 여전히 성경 필사를 하라는 나의 잔소리가 이어진다. 악대의 우렁찬 연주와 재소자들의 숨겨진 달란트들이 빛을 발하는 시간이다. 성경 필사를 신구약 모두 끝내고 내게로 가져온 재소자 형제를 마음껏 축복하며 칭찬을 해 준다. 영치금도 상으로 입금해 주기로 결정을 했다. 이제 그 필사본은 법전처럼 멋지게 합본이 되어 재소자에게 전해질 것이다. 성경필사 용지를 변함없이 후원해 주고 있는 백집사님의 재소자에게 바라는 마음을 듣는 시간도 갖는다. 몸살로 말도 잘 안 나오는 사람에게 별걸 다 시킨다는 눈빛을 받는다. ^_^*
최장로님 감사기도와 함께 다과가 시작된다. 언제나 먹을거리가 있는 시간은 넉넉하다. 그런데 이상하다. 넉넉하게 준비를 해 가도 항상 부족하다. 왜 그런가? 확인해 보니 교화 행사에 참석하지 못한 동료들을 위해 따로 챙기는 재소자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칭찬을 해야 할지 만류를 해야 할지 정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역시 사람이 하는 일들이라 정답이 없다. 출소를 앞둔 재소자들에게 당부의 메시지를 전한다. 세상에 쉬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만, 세상이 교도소에서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눈에 익은 할아버지 재소자가 보인다. 분명 출소를 하셨는데 또 보인다. 먹고 살기 위해 생계형 범죄를 저지르고 다시 들어오신 듯하다. 그런 분을 보면 마음이 참 아프다. 교도소에서 의식주를 편하게 제공받을 수 있다지만 그래도 그것은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것도 저 할아버지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려니 생각했다. 설마 차라리 죽을 때까지 교도소에서 살기를 바라지는 않겠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았다. 오죽하면 그랬겠냐만 그래도 그것은 아닌데. 그런 분들 문제를 해결해 줄 방법이 없지 않는가. 평상시 내가 주장하는 대로 교도소 근처에 두부 공장을 만들고 납품은 군부대와 교도소에 하고, 그들이 살아가는데 부족함 없도록 사회복지 시스템까지 확실하게 만들어 놓고, 출소자 중에 원하는 사람을 취직시켜 생활하게 한다면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텐데 하는 아쉬움만 남는다. 아무튼 여러 가지 복잡한 마음이다.
성경 필사를 권면하며 ‘똑바로 보고 싶어요.’라는 찬양을 불렀다. 여전히 뽕짝 스타일로 부르는 나의 찬양이다. 그래도 잘 부른다며 은혜 받았다니 내가 헛갈린다. 성경 필사를 강조하는 몇 번의 잔소리를 하고나서 박목사님께 마이크를 넘긴다. 출소자를 위한 축복 기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목사님의 기도대로 출소자들이 다시는 재소자의 신분으로는 교도소에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이 교도소에서 만난 하나님 절대로 놓지 말고 세상에서도 열심히 살았으면 정말 좋겠다. 어느새 오후 3시가 넘었다. 또 다른 일정을 위해 서둘러 교도소를 빠져 나온다. 어느 이름 모를 재소자가 두 손으로 꼭 잡아 주었던 내 조막손에는 여전히 그의 온기가 남아 있는 듯하다. 모두 사랑의 대상이다.
2009. 2. 9.
-양미동(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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