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 그리고/나눔의 서평

[스크랩] [서평] 지성소기도

자오나눔 2009. 8. 18. 06:02

- 들어가는 말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성막에 대하여 공부를 해 보았거나, 최소한으로 들어는 보았을 것이다.

성막은 BC 1455년, 지금으로부터 3500년 전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주신 것이고, 이 성막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졌는데 즉, 뜰, 성소, 지성소(구름 기둥이 떠 있는 곳)로 나누어진다고 배웠을 것이다. 성막 안에는 성물이 있는데 그 성물의 종류는 문, 번제단, 물두멍, 떡상, 금촛대, 분향단, 법궤가 있다.

사람들은 성경은 읽는 부분이라고 한다. 말씀은 듣는 부분이라고 하고 성막은 보는 부분이라고 한다. 성막은 율법이 아니다. 성막은 그야말로 복음 중의 복음이다. 보는 복음이다.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의 확실한 모형이요. 복음 중의 복음이다. 성막은 볼품이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성경은 말하기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정말로 주님은 흠모할 만한 어떠한 모습도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성막은 겉보기에는 볼품이 없고 멋이 없고 매력이 없지만, 안에 들어가면 들어 갈수록 이것은 바로 황금의 집이다. 주님도 겉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 주님 안에 들어가 보면 치료의 영이 있었고, 성령이 있었고,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해결의 능력이 있다. 우리는 성막에서 기도를 말할 때는 성소 안에 있는 분향단만을 가지고 해석을 해 왔었다.

성막에 들어가 번제단에서 죄를 다 태우고 물두멍에서 성경케 하고, 성소에 들어가 우측에 있는 떡상에서 말씀을 먹고, 좌측의 등대에서 성령을 받고, 분향단에서 하나님께 기도의 불이 꺼지지 않게 하며, 지성소에 있는 법궤 위에서 하나님과 만난다는 내용.

성막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이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성막을 새롭게 해석한 지성소 기도는 읽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감탄사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 책속으로


그런데 ‘지성소기도’에서는 성막 전체를 기도로 풀고 있었다. 뜰 밖의 기도는 이방인의 기도로 성명하고 있었다. 인간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한 기도를 설명하고 있었다. 이제 성막 안으로 들어와서 ‘뜰 기도’를 해석하는데 뜰 기도는 자기를 위한 기도라고 설명을 하면서 아직 신앙이 덜 성숙된 어린이 기도와 같음을 설명하고 있다. 성소 기도와 지성소 기도가 남았는데 성소 기도와 지성소 기도는 하나님도 기뻐하실 기도임을 잘 설명하고 있다. ‘성소기도’는 중보기도로서 나를 벗어난 기도요, 장성한 자의 기도라고 설명을 해 주고 있다. 이제 ‘지성소기도’가 남았는데 지성소 기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기도’라고 설명을 하면서, 하나님과 한 몸 되는 기도요, 완전한 데 이르는 기도라고 확실하게 설명을 해 주고 있다.

그분 아니라 ‘지성소기도’에서는 뜰 기도와 성소기도, 지성소 기도를 마태볶음 8장을 대입시켜서 지성소 기도가 구약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신약의 예수님 시대로 이어져 왔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지성소 기도는 이어져 오고 있음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마태볶음 8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세 가지 치유역사를 통하여 기도로 재해석을 해 놓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뜰 기도는 마 8:1-5절을 가지고 설명을 하고 있는데, 한센병자의 기도로 해석하며, 율법적인 한계에 갇힌 기도이며 자기를 위한 기도라고 설명을 하고 있다. 다음으로 마 8:6-13을 가지고 성소 기도를 설명하면서 백부장이 하인을 위한 중보기도 함을 설명한다. 중보 기도를 할 수 있는 그 자리가 은혜의 자리요, 남을 위한 기도가 복된 기도임을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마 8:14-15절을 가지고 지성소 기도를 설명하고 있는데, 베드로 장모의 열병 치유 역사를 통하여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 그 자체가 기도임을 설명하고 있다. 예수님께 전적으로 의탁된 행동을 설명하면서 모두 맡기는 크리스천의 자세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 나가는 말


성막에서 하나님이 주신 불은 절대로 꺼지면 안 됨을 우리는 알고 있다. 번제단의 불과 분향단의 불이다. 불은 항상 살아 있어야 함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기도의 불이 있다. 그 기도의 불을 절대로 꺼뜨리면 안 된다. 때론 기도의 불이 꺼질 위험에 봉착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기도의 불을 끄면 안 된다. 기도할 시간이 없어서 기도한다는 말이 있듯이, 기도는 언제나 숨 쉬는 순간마다 이어져야 한다. 우리가 호흡을 중단하면 살 수 없듯이 기도도 영적인 호흡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적인 호흡이 끊어지면 우리 영은 죽을 수밖에 없다. 우리 기독교는 죽이는 종교가 아니라 살리는 종교다. 줄어들게 하는 종교가 아니라 더하게 하는 종교다. 예수를 구주로 믿고 예수를 구세주로 고백하고 살아가는 우리들은 기도에 기도를 더해야 한다.

이 책 ‘지성소기도’는 두란노 출판사에서 출판을 하였는데 박인용 목사님이 저자이다. 성막을 통한 놀라우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을 수 있는 참으로 소중한 책이라는 것을 저절로 느낄 수 있었다. 모처럼 가슴 쿵쾅거리는 책을 읽었다. ‘코람데오’


2009. 8. 12.

-양미동(나눔)―

출처 : 자오쉼터
글쓴이 : 나눔(양미동)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