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정수기 필터 갈아주러 갔다가
작년 겨울에 설치해 드린 냉온 정수기 덕분에 참 편하게 지낸다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낮음으로님이 참 감사하다. 자오 가족이 되어 자오에서 부족한 부분들을 모두 채워주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정수기 13대에 필터를 교환해 주려면 원가만 해도 꽤 될 텐데 기쁨으로 감당해 주고 있다. 본인이 직접 정수기 사업을 하기에 가능하다고 하지만 사랑이 없으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다. 올 여름에 필터 교환을 해 주었기에 이번에 교환 해 주면 깨끗한 물을 따끈하게 혹은 차갑게 드실 수 있을 것이다. 어르신들께 인사를 드릴 겸 해서 함께 방문을 한다. 맨 먼저 찾아간 동월 할머님 댁, 눈도 어둡고 몸도 불편하셔서 기어 다니시는 할머님, 내가 찾아왔다고 말씀 드리니 눈물을 글썽이신다. 지난번에 왔다가 들리지 않고 갔다고 서운하셨나 보다. 할머님 조막손을 내 조막손으로 부여잡으며 담소를 나눈다. 반가움에 이런 저런 이야기가 그칠 줄 모르시는 할머님, 부엌에서 정수기 필터를 교환하던 낮음으로님이 낮은 신음을 흘린다. 부엌으로 나가보니 할 말이 없다. 불편한 몸으로 기어 다니며 혼자 살아가시다 보니 청소가 되지 않아 눈뜨고 보기가 쉽지 않다. 눈도 어둡고 몸이 불편하신 할머님은 그냥 그렇게 살아 오셨나 보다. 잠시 다녀오겠다고 말씀 드리고 차를 타고 교회로 달린다. 열심히 트리 준비를 하고 있는 민들레님을 불렀다. 고무장갑 챙기라 하고 슈퍼에 들려 식초도 두병 구입했다. 이동을 하며 설명을 해 주니 믿어지지 않는 표정이다.
할머님께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정수기 필터 교환 하던 낮음으로님도 방으로 들어오신다. 할머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할머니 조막손에 상처가 크게 있는 것을 보고 왜 이렇게 다치셨냐고 묻는다. 가스레인지에 요리를 하다가 넘어졌는데 일어나지 못해 손이 탔다고 하신다. 가슴이 먹먹해 진다. 얼마나 아프셨을까……. 내가 화상을 크게 입고 지금까지 고생을 하고 있기에 그 아픔을 안다. 할머님이 일어서지 못하니 가스레인지는 부엌 땅에 놓고 사용하고 계셨다. 그런데 넘어 지셔서 손을 그렇게 태웠단다. 나는 할머님과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민들레님은 부엌 정리를 한다. 낮음으로님은 방에 걸레질 해 놓고, 냉장고 문에 핏자국을 닦아 주곤 다른 집에 필터를 교환해 드리러 이동을 한다.
부엌에서 청소를 하고 있던 민들레님 훌쩍거린다. 마음이 아파서 우는 것이리라. 이렇게라도 섬길 수 있음이 감사해서 우는 것이리라. 할머님의 감사가 입술이 없어 침이 줄줄 흘러내리는 입술에서 연신 터져 나온다. 저런 몸에서도 감사가 나온다. 저렇게 힘들게 살면서도 감사가 나온다. 감사할 것이 전혀 없는 것 같은데 말끝마다 감사다. 감사에는 조건이 없다는 말이 맞다.
누군가 방문 앞에 섰다. 예쁜 아가씨다. 소록도의 천사라고 하는 간호사다. 할머님께 주사를 놔드리기 위해 방문을 하신 것이다. 주사도 놔 드리고 할머님의 근황도 점검할 겸 그렇게 오신 듯하다. 할머님께 다정하게 이야기하며 주사를 놔 드리는 모습이 아름다워 사진 한 장 찍어도 되느냐 물었더니 그러라고 하신다. 이름을 물어 보니 김윤미라고 대답하신다. 티비에도 나왔다고 하신다. 할머님께 주사 놔 드리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 모습은 우리 자오 쉼터 카페에 올려놨다. 그렇게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섬겨주는 분들이 있기에 소록도 어르신들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참 감사했다.
할머님 엉덩이로 기어서 부엌으로 이동을 하신다. 청소 상태 보시고 백점에 만점! 이라더니 냉장고에서 무언가 꺼내신다. 토종 감이다. 가꾸지 않아 제 멋대로 익은 감이다. 그 감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부엌으로 가신 것이다. 감을 깎아서 기도하고 먹는다. 달콤하다. 할머님께 드려도 우리에게 먹으라며 잡수질 않는다.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기 위해 낮음으로님도 오셨다. 함께 감을 깎아 먹으며 할머님의 이야기를 듣는다. 할머님 신나셨다. 누군가에게 당신의 가슴을 열고 이야기 할 수 있음이 좋아서인가 보다. 다른 집에 또 가서 일해야 할 게 있으니 이동을 해야 한다. 기도 노트에 기도 제목도 적어 드리고 함께 기도를 나누고 할머님 댁을 나온다.
6. 갑오징어
요즘 소록도에는 갑오징어가 낚시로 자주 잡힌다. 그래서 심심풀이로 낚시를 자주하는 젊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조금 전까지 열심히 일하시던 이장님이 잠시 어디 좀 다녀오겠다고 말씀하시곤 잠잠 하시다. 1시간쯤 지났나? 아이스박스에서 뭔가를 꺼낸다. 그사이에 우리에게 갑오징어 회를 먹게 하겠다며 낚시를 다녀오셨단다. 물때가 갑오징어가 낚시로 잡힐 시간이었단다. 오랜만에 싱싱한 갑오징어 회를 먹어봤다. 참석한 모두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신 이장님께 감사를 드린다.
저녁 참으로 갑오징어 회를 먹고 새벽기도 시간까지 잠을 자기로 한다. 30여 평 되는 교육관 바닥이 따끈따끈하다. 보일러를 일찍 켜 놓은 덕분이다. 막 잠이 들었는데 어디선가 천둥치는 소리가 들린다. 깜짝 놀라 일어나니 곁에서 주무시던 집사님의 코고는 소리다. 다른 쪽서 주무시던 집사님들도 일어나 조용히 밖으로 나가신다. 한참이 지나도 다시 오지 않기에 나가 보았더니 예배당에서 기도를 하고 계신다. 졸지에 철야를 하게 된 일행이다. 덕분에 소록도의 밤하늘에 우리 일행의 기도 소리가 울려 퍼졌다.
7. 밀감을 따는 손길들
새벽 예배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아침을 먹는다. 아침을 먹고 잠시 커피 한잔씩 하고 있는데 이장님의 안내 방송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다. 교회 앞에 있는 밀감 밭에 밀감을 따야하니 거동이 자유로운 분은 모두 나오셔서 공동 작업을 해 달란다. 잠시 후 마을 어르신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오십여 그루의 밀감 나무에는 밀감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해풍을 맞으며 향이 진하게 잘 자라있다. 전문적으로 밀감 농사를 한 곳보다는 밀감이 못생겼다. 그래도 한입 까 먹어보니 입안에 향기가 가득하다.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도 참석하셔서 밀감 따는 공동 작업에 동참하신다. 우리 일행도 밀감 따는 아낙네들로 변신을 한다. 밀감이 더 잘생겼나 내 얼굴이 더 잘생겼나 서로 비교하며 웃음꽃이 피어난다.
다른 사람들은 밀감을 따고 있는 사이에 맥가이버 집사님은 교회 지붕에 올라가신다. 십자가와 나무들을 연결하는 전구를 설치하기 위함이다. 아직 서리가 녹기 전이라 지붕이 미끄러울 텐데 열심히 작업을 하신다. 아래에서는 이용화 집사님이 보조를 해 주고 계신다. 지붕에 올라가 작업을 마친 후엔 나무마다 미니 전구를 연결해 주고 계신다.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섬기는 것이 몸에 익숙해진 집사님이다. 십자가와 나무들에 성탄트리가 모두 설치되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참으로 1박2일 동안 열심히 해주신 보람이 있다. 이젠 다시 소록도를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남장로님께 축복 기도해 달라고 부탁드린다. 장로님의 기도를 받고 소록도 어르신들이 챙겨주신 밀감도 차에 싣고 차에 시동을 켠다. 이젠 각자의 처소로 돌아가 다시 열심히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소록도 구북리에 2009년 성탄 트리를 설치해 드리고 올수 있었음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한다.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2009. 11. 15.
-양미동(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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