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정취에 빠져들 무렵, 갑자기 무더위가 찾아왔다. 심지어 폭염 주의보가 내리고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며칠을 보냈는데 기온이 뚝 떨어져 가을의 한복판에 들어서 있었다. 며칠 전 기온과 10도 이상 차이가 나니 갑자기 겨울이 찾아온 듯 하다.
안양 교도소에서 연락이 왔다. 이번 교화행사에 오실 때 포도와 복숭아, 그리고 자두는 가져오지 말라고 한다. 포도는 술을 만들어 마시기 때문에 반입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안양교도소 사역 13년째 해 오면서 어느 해 추석 무렵에 교화행사를 갔을 때 포도를 몇 박스 가져갔었다. 재소자들이 화장실에서 포도를 씻다가 포도 몇 송이를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화장실 쓰레기통에 던져 놓는 것을 보았다. 왜 그러느냐 물었더니 그냥 모른 체하라고 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포도주를 만들어 먹기 위해 포도를 배 놓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복숭아와 자두는 왜 반입이 안 된다는 것일까? 복숭아나 자두로 인해 무슨 일이 생겼었던 일이 있었나 보다는 생각만 할뿐이었다. 교도소 사역에 동참하실 분들의 이름과 주민등록 번호를 교도관께 미리 보냈다. 어째든 세상에선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는 것도 교도소에선 규제를 받는 것이 많다. 아무리 원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다.
토요일 오후에 방앗간에 떡쌀을 맡겼다. 교도소에 가져갈 떡을 만들기 위함이다. 월요일 아침 8시에 찾으러 오겠다고 했다. 주일 오후엔 장을 보러갔다. 눈에 보이는 과일들이 먹음직스럽게 보인다. 그런데 먹음직스러운 과일은 반입이 안 되는 종류다. 바나나와 토마토를 구입했다. 비스켓류를 종류별로 넉넉하게 고른다. 일회용 커피와 둥굴레차도 구입하고, 종이컵과 종이접시도 구입한다. 재소자들에게 나눠줄 나눔지도 묶어서 차에 실어 놓는다. 월요일 아침나절에 방앗간에 가서 떡을 찾아 싣고 교도소로 가면 될 수 있도록 준비를 해 놓는다. 재정이 부족해 걱정했는데 지인의 사랑이 보탬이 되었다. 선교사역일수록 물질이 없으면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나눔의 사역에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동참해 주시는 천사께 감사드린다.
어제부터 기온이 뚝 떨어져서 아침 기온은 쌀쌀하다. 내가 출타중일 때 장애인 삼촌들을 잘 모시고 있으라고 아주머니께 말씀드리니 걱정 말고 잘 다녀오시라 한다. 원장님이 요즘 먹질 못해 얼굴이 반쪽이라며 걱정하시는 아주머니, 걱정해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드린 후 차에 오른다. 성당에 다니시는 방앗간 주인아저씨는 언제나 부지런하시다. 새벽부터 나와서 떡을 해 놓고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떡을 찾아 싣고 안양교도소를 향해 달려간다. 신작로까지는 전형적인 시골길을 운전하고 나간다. 과꽃이 보라색으로 싱그럽게 피어 있다. 친구가 줄기에 목메고 싶다던 코스모스는 가느다란 허리를 흔들며 방긋 웃어주고 있다. 소국을 닮고 구절초를 닮은 쑥부쟁이도 길가에 고개를 내밀고 있다. 모두가 사랑스런 모습들이다.
교도소에 도착하여 입구 안내소에 말하여 차에 짐을 내려달라고 하려는데 누가 인사를 한다. 담당 교도관이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차에서 짐을 내려 주신다. 많이 준비해 오셨다며 고마워하신다. 잠시 교정위원실에 앉아 있다가 밖으로 나가니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다. 박목사님껜 기도를, 시각장애인이면서 찬양사역자인 고목사님껜 찬양인도를, 강목사님껜 설교를 부탁드렸다. 검색대를 통과하여 안으로 들어서니 준비해 온 물품들이 놓여있다. 어느 교도관이 떡까지 검사를 하고 계셨다. 몇 년 전만 해도 저러진 않았는데…. 누군가 반입 물품에 가져오면 안 될 것들을 가져 왔었기 때문에 저렇게 세세히 검사를 하고 있겠지. 몇 개의 철문을 지나 행사장에 가까이 오니 찬양소리가 들린다. 재소자들이 미리 모여서 찬양을 부르고 있다. 오후에 행사를 할 때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는데, 오전으로 행사가 바뀌니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
찬양사역자이신 고목사님의 인도로 힘찬 찬양이 이어졌다. 박목사님 기도가 끝나고 특송을 한다. 방문자 모두 나와서 한목소리로 찬양을 한다. 이어진 강목사님의 설교, 사랑에 대하여, 섬김에 대하여, 예수그리스도에 대하여 은혜로운 설교를 하신다. 소와 사자가 사랑하여 서로가 좋아하는 것을 가져다주는데, 내 입장에선 제일 좋은 것이지만 상대방 입장에선 먹을 수 없는 것이라는 것, 그러면 소는 사자에게 무엇을 줘야 하느냐고 묻기에 무심결에 소고기라고 대답했더니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설교가 끝나자 바로 음식을 나누도록 했다. 어수선한 상태서 메시지를 전해봐야 효과도 없을 터라 부담 없는 내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김없이 성경필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현제 필사를 하고 있는 재소자를 파악했다. 열 명이 지금 성경쓰기를 하고 있단다. 참 감사했다. 지금까지 성결필사를 마친 형제들은 한 사람 빼곤 모두 사회에 잘 정착하고 있다. 그런 효과가 있기에 성경 필사를 권면하는 것이다. 필사 용지 공급해 주고, 필사 마치면 영치금 넣어 주고, 필사본은 법전처럼 합본하여 세상에 단 한권밖에 없는 성경책으로 만들어 준다. 그 사이에 성령님은 멋지게 역사하신다.
10월까지 출소를 앞둔 재소자를 파악했다. 그중에는 악기 다루는데 탁월한 달란트가 있는 형제도출소를 한단다. 덕분에 행사가 훨씬 좋았는데 하는 아쉬움이 생겼다. 축하를 해 줘야 하는데 말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성경필사를 두 번이나 마친 형제도 출소를 한단다. 성경 필사를 마친 형제들은 출소를 하여 나를 찾아오면 만나주고 식사도 대접하곤 했다. 성결필사를 하지 않은 형제들에겐 출소를 해도 냉정하게 거절을 했었다. 출소하면 한번 찾아뵙겠다는 인사를 하는 형제에게 그렇게 하라고 했다. 시간이 훌쩍 지났다. 박목사님께 마무리 기도를 하시도록 한다.
출입증 반납하고 신분증 받아 나오는데 바람이 휙 하고 지나간다. 뒤이어 후드득 떨어지는 낙엽들, 가을이 피부로 와 닿는다.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2011. 9. 19.
-양미동(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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