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어릴 적 추억이 떠오르곤 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25년전, 그때도 아마 날씨는 이렇게 더웠었나
보다. 시골 사람들은 날씨가 더우면 자연스럽게 아름드리 고목이
수많은 사연을 조용히 들려주고 있는 공원으로 모이곤 했다. 어
른 아이 할 것 없이 자연스럽게 모이는 그곳, 아름드리 고목 아
래에는 우물가의 여인들의 소식보다 더 방대한 소식들이 전해지
는 곳이다.
그곳에서 열살 짜리 소년은 생애 처음으로 진실이 거짓으로 둔
갑하는 상황을 경험하곤 엄청난 충격을 받아야 했다. 그때 받은
충격은 어른이 되어서도 좀처럼 잊혀지지 않고 가슴의 응어리로
남아 있었다. 옆에서는 어르신들이 장기를 두고 있었고, 또 다른
쪽에서는 올 농사에 대해서 걱정하고 있는 농군들의 넋두리가 들
려 오고 있을 때, 저쪽에서 웃음소리가 들려 오고 있었다. 밝음이
있는 곳에는 사람들이 모이기 마련인가보다.
그곳에는 동네 청년 하나가 사람들과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귀를 기울이고 있던 나에게 그 청년은 물었다. "야! 너
말이야, 지금 너는 지서 앞에 서 있는데 거기서 오백원을 주었다
면 어떻게 할래?" 자연스럽게 나는 "지서로 가서 순경한테 주어
야지요" 하고 어깨를 폈다. 그런데 그 청년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나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고 있었다. "거짓말하지 말아!" 나는 멍
해질 수밖에 없었다. 무슨 뜻인 줄을 몰라 그 청년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 청년의 말은 이것이었다. "오백원을 주었으면 주머니에 넣
고 얼른 가게로 가지, 왜? 지서로 가느냐?"는 것이었다. 지서로
가져가지 않고 가게로 가거나 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오는 것이
맞다는 것이었다. 나는 지서로 갈 것이라고 우겼지만, 모두가 나
를 병신 취급을 하고 있었다. 혼자 잘난 척 한다고 나를 궁지로
몰아 세우고 있었다. 참 많이 울었었다. 울다가 얻어맞았다. 그러
면서 또 한 소리를 들었다. "너는 거짓말쟁이야!" "......" 나의 눈
에는 눈물이 가득 차 있었고, 그 눈으로 그 청년을 원망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 일이 25년이 지난 지금에도 나의 뇌리를 떠
나지 않고 있다.
지금 생각을 해 본다. 어른과 아이의 마음은 다르다는 것을 느
낄 수가 있다. 어른들에게는 아이들의 진실이 제대로 받아들여지
지 않는다. 어른들의 고정관념에 맞춰서 생각을 해 버리기 때문
에 아이들의 순수함은 왜곡되어 버린 것이다. 그때 그 청년도 아
마 그런 시각에서 보았지 않을까 생각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
린 나는 바보와 거짓말쟁이가 되어야 했지만......
나는 지금 나에게 물어 본다. "지금 네가 길을 가다가 5만원을
주었다면 어떻게 할래?" 어른이 되어 있는 나는 무어라고 대답을
할까? 25년전의 나로 돌아가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주인
을 찾아 주겠다고...... "당신이 길을 가다가 5만원을 주었다면 어
떻게 하시겠습니까?"
1996.5.24
--------------------------------------------------
아들아...
세상은 가끔 진실이 거짓으로 변하고, 거짓이 진실로 변하는
경우도 있단다. 아무리 세상의 풍조가 나날이 갈리어도 아들의
진실만은 지킬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랑한다 아들아....
'사람이 꽃보다 > 사랑하는 아들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들아....7] 엄마를 울린 준열이 (0) | 2007.01.11 |
---|---|
[아들아...6] 사랑하는 아들아 (0) | 2007.01.11 |
[아들아...4] 허무한 내마음 (0) | 2007.01.11 |
[아들아...3] 아빠 추워요... (0) | 2007.01.11 |
[아들아...2] 내 아들 준열이2 (0) | 2007.0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