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꽃보다/사랑하는 아들아

[아들아...15] 나 이러다 걸어 버릴지 몰라....

자오나눔 2007. 1. 11. 14:50
     추워서 추석이고 서러워서 설이라고 하는데.....
     설날 아침에 어떤 분이 도움을 청해  왔다. 동사무소와 차
   량 등록소에 가서 서류 처리를 해  달라는 것이었다. 자기는
   장애인이라 움직일 수가 없어서 도움을 청한다는 것이다.
     혼자 생각을 해 봤다. '세상에는 나 같은 장애인에게도 도
   움을 청하는 사람이 있구나....  오죽 했으면 나 같은 사람에
   게 도움을  청할꼬.'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해  보겠다고
   대답을 한 후,  난 이리 저리 연락을  했다. 차량 봉사를 해
   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그러나 평일에 차량 봉사자 구하
   기가 힘드는 건 사실이다.

     마침 어느 분이 해 주겠다고 한다.  언젠가 쇼핑이라는 수
   필에 나온 주인공 박민선씨(미용실 원장)다. 전화를 해 주겠
   다더니 소식이 없다.  기다리다 내가 찾아가기로 했다. 휠체
   어를 타려다 목발을 짚고 가보고 싶었다.  평상시 난 20미터
   이상을 목발을  짚고 걸으려면 피부가  터져 피가 낭자하기
   때문에 오래 걷지를  못한다. 우리 집서 미용실까지의  거리
   는 약 500미터.....  평상시 20미터 이상을 걸어  보지 못하던
   나에겐 엄청난 거리요,  불가능한 거리였다. 그런데 왜 그런
   마음이 들었을까?

     심호흡을 한 번 하고 하늘 한번  쳐다보고 걷기 시작한다.
   왼쪽에만 목발을  짚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한 걸음씩을
   내 딛을 때마다 몸이 기우뚱거린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추운 날씨와는 상관없이 이마엔 땀이 맺혀  있고, 이미 속옷
   은 흠뻑 젖어  버렸다. 한참을 걷다가 하도 힘이  들어 다시
   되돌아가려고 뒤를 돌아본다.  아고~~ 걸어 온 거리가  남은
   거리보다 멀다. 주저 앉을 수도  없고.... 내가 미쳤나 보다....
   그냥 휠체어  타고 왔으면 편할  텐데 뭐하려고 무리하게....
   이젠 서 있기조차 힘겨웁다. 그냥 울고 싶다.

     우리 준열이도 처음 걸음마  배울 때 이렇게 힘이 들었나
   보다... 그러기에  잘 걷다가 힘들다고  투정을 부렸나 보다.
   울려고 해도 누가 보아줄 사람이 있어야  울지... 다시 한 걸
   음... 또 한 걸음... 저기 저  만치에 박민선 미용실이 보인다.
   아고~ 다와 가니  더 기운이 빠지네.... 미용실에 도착하자마
   자 털썩 쇼파에 주저앉았다. 숨이 차다. 다치기 전에 20킬로
   마라톤 한 것 마냥 힘이 들다.
     가만!
     그러고 보니 한 번도 쉬지 않고 500미터를 걸어  왔네! 이
   거 뭔 일이래? 이러다 미동이 진짜로 목발마저 던져 버리고
   걷게 되는 거 아냐?
     1997.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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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아...
     세상에는 쉬운게 하나도 없구나.  그러나 포기하지 않으면
   뭔가 이룰 수 있다는 것도 아빠는  깨달았단다. 우리 포기하
   지 말고 살아가자구나. 사랑한다 아들아.... ^_^* 빙그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