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꽃보다/사랑하는 아들아

[아들아.......94] 고엽(枯葉)

자오나눔 2007. 1. 15. 11:40
길가에 수북히 쌓인 채 바람에 날리고 있는 노란 은행잎이
묘한 아름다움을 자아내기에 이것이 가을의 특색이거니 생각을
하다가, 오늘 문득 아파트의 가로수에 몇 장 남지 않는 단풍을
보다가, 채 뜻을 펼쳐 보기도 전에 시들어 말라 간 잎사귀를 만
난다.
그가 서울이라는 도시로 올라 온지는 벌써 50년이 넘었다.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난 그는 시골에서 지게만 지고 꼴을 베어
야 하는 그런 자신이싫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시골로 소를
사러
온 소장수를 따라 무작정 상경을 해 버린 것이다. 일가친척
없는 서울에서 그의 생활은 양아치가 따로 없었다. 6.25전쟁 때도
서울을 떠나지 않았던 그는 전쟁이 끝나자 인분을 치우는 일을
하게 된다. 남들이 더럽다고 꺼려하는 일이지만 시골서 자란 그
에게는 별로 더러움을 느낄 수가 없었다. 오히려 묘한 매력을
느꼈나 보다. 흔히 돈을 벌려면 남이 하기 싫어한 일을 하면
돈을 번다고 한다. 그에게도 서서히 재산이 모이기 시작한다. 그
런 생활 속에서도 꽃 같은 색시를 얻어 살림을 차렸다. 사람이
착하기만 하는 경상도 여자란다.
그들의 행복도 오래 가질 못했다. 남편은 인분을 치우는 사
람인데 색시가 너무 예쁘다. 어느 놈팽이가 그 색시를 꼬셔서
재산을 다 가로채 버린 것이다. 제비에게 걸린 것이다. 나중에야
그걸 알게 된 그녀는 딸아이 셋을 남겨 둔 채 약을 먹어 버렸
다. 일순간에 가정이 깨져 버린 그는 낙이 없었다.자식마저 원수
로 보였는지 자식을 간수해 주질 못했다. 결국은 일가 친척들이
그 자식들을 데려다 키우게 된다.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고 아빠께 편지를 써서 보내기 시작
하자, 그의 마음은 다시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젠
인분을 치우는 일도 차량이 해 버리니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
다. 배운게 그 일 뿐인데 마땅히 할 일이 없다. 그러나 살아 보
려고 하는 사람에겐 길이 열리기 마련인가 보다. 어느 아는 사
람이 청소부 일을 해 보라고 권유를 한다. 연탄재를 리어카에
실어다 나르고, 집에서 나오는 쓰레기들을 치우다 보니 월말이
면 집주인들이 담배 값 하라며, 약주나 사 먹으며 하라고 푼돈
을 집어 주곤 했다.
악착같이 살아가는 그에게 같은 동료가 중매를 선다. 그리
하여 새로 꾸린 가정.... 원래 새 가정을 꾸리게 되면 전에 못해
주었던 기억이 있기에 더욱 잘해 준다고 한다.
가정에서 웃음꽃이 피어나며 아들도 생긴다. 집안의 경제 사
정도 제법풀려 나간다. 이젠 딸들도 자라서 시집을 간답시고
남자들을 데려오니 그에겐 딸들이 마냥 고마울 뿐이었다. 그의
직책도 사람을 지휘하는 직책으로 높아졌다. 어느 누구나 힘든
일을 하다 보면 약주를 하게 된다. 몇 십년을 즐겨 마시던 약
주라 그에겐 혈압이 높아지는 건 당연했다.
어느 날 들려 온 소식, 그가 혈압으로 쓰러졌다고 한다. 겨우
화장실 출입만 하고, 말도 어눌한 사람으로 변해 버렸단다. 긴 병
에 효자가 없다고 한다. 미우나 고우나 수발을 들어주는 사람
은 아내 일진데, 어느 날부터인가 핍박을 받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 온다. 재산을 자기가 낳은 자식들 앞으로 이전을 해 달라
고 압박을 가하며, 하나 둘씩 챙기기 시작하더란다.
그러기를 벌써 5년..... 언제부터인가 아직 시집을 가지 않은
막내딸에게 간병을 시키곤 직장을 다니기 시작한다. 그런데 오
늘 그분이 화장실에 다녀오다가 넘어져서 영영 일어나질 못하고
눈을 감으셨단다. 들리는 말은 "차라리 잘죽었다"고 한다. 그의
삶이 그만큼 처참했기에 그런 말이 들리리라.
시들어 말라 버린 잎사귀를 그려본다. 차라리 시들지만 않았
더라면, 예쁘게 화장이라도 하여 마음 착한 어린 소녀가 즐겨
있던 "마지막 잎새"라는 책갈피에 끼워지는 일이라도 생겼으련만,
시들어 말라 떨어진 잎사귀가 무에 책갈피에 끼여 있을 수가 있
겠는가.
어느 집이나 환자가 있으면 그 집안에는 수심이 있기 마련
이다.
그 수심을 얼마만큼 노력하여 지우려고 하느냐에 따라서 웃
음꽃이 피어나기도 한다. 내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건강
한 사람도 많고, 병들어 있는 사람도 많고, 혼자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장애인 친구들도 많다. 거의가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밝고 맑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친구들을
볼 때면 말없는 갈채와 미소를 보낸다.
어차피 한 번은 떨어져야 할 낙엽이라면, 시들어 말라 버린
枯葉이 아니라, 곱게 화장한 단풍이 되는 게 훨씬 좋지 않을까.
세상 부귀 명예보다 더 중요한 것이 건강이요, 건강보다 더 중
요한 것이 절망 속에서도 붙들고 일어 설 수 있는 믿음의 버팀
목이 더 중요하는건 당연하다.
나는 내가 아는 분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혼자만의 행복을
느낀다. 그 사람이 내가 자기를 위해 기도하는지 안하는지 아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사람을 위해 기도 해주고 있
음에 행복하다. 혼자만이 누리고 싶은 행복! 그 행복을 지켜나가
고 싶다.
1997.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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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오늘은 조금 우울한 말만 했구나. 그러나 이게 현실인걸
우야누....
그분이 하늘나라에 갔으면 좋겠다 그치?
오늘의 감사 제목은 뭐가 좋겠누?
"기도의 행복을 느끼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어때?
최고라고? 이궁 내 새끼~ 이루와바바 와라락!!!
^_^* 빙그레~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지요?
자오 나눔(GO SG867)에서 나누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