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꽃보다/사랑하는 아들아

[아들아....99] 못생겨도 향은 좋아.

자오나눔 2007. 1. 15. 11:43
며칠 전에 시골에 계시는 작은댁에서 유자를 보내 왔다.
논에다 심었는데 올해 첫 수확을 거두었단다. 듬직한 남정
네의 어깨 같은 산자락을 타고 흐르는 소나무 숲 아래 기운 센
선조들이 일궈 놓았던 2마지기 논이 있었다. 비록 계단식으로
만들어 놓은 논이었지만 그 논은 옥토로 소문이 났었다.
농부들이 논에 물대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뭄이
들기라도 하면 물고 싸움으로 시끌벅적한 게 시골 풍경이다.더
심할 때는 동네간에 다툼이 일어 날 때도 있다. 그나마 논에 둠
벙(우물)이라도 있을 때는 그런 대로 괜찮았다.
물론 학생들이 고생을 했다. 소는 산에다 풀어놓고 논에 가
서 팬티만 입은 채, 때론 빨개 벗은 채 열심히 바가지로 물을
퍼 올려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가뭄이 들어도 물 걱정을 하지
않는 논이 있는 가정은 다른 가정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그
런 논이 있던 집 아이들은 괜스레 어깨가 으쓱해지곤 했다. 그
러나 그 논들도 추수철이 되면 지게로 볏단이며 보릿단들을 져
날라야 했기에 결코 반갑지만은 않았었다. 어른들은 비록 힘은
들더라도 물 걱정 안하고 결실을 많이 거둘 수 있는 논을 선호
하였던 것은, 아마도 우리네가 너무나 가난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기계 문명이 발달해 지면서 젊은이들은 힘든 농사보다 기계를
다루며 목돈을 벌 수 있는 도심으로, 도심으로 보따리를 싸기 시
작했었다. 그리곤 이렇게 향수에 젖어 보기도 하는 것 같다. 그
렇게 좋은 논이 있었지만 농사지을 사람이 없어서 논을 목초지로
만들다가 그것도 여의치 않다고 유자나무를 심었더란다. 농약도
치지 않고 퇴비만 주었기 때문에 순수한 무공해라며 자랑스러워
하시는 작은 아버님의 목소리엔 힘이 들어 있었다. 주인이 객지
로 떠나고 없는 논에 유자나무를 심고, 거기서 첫 수확을 거뒀다
고 두 상자를 보내 왔을 땐 못생긴 유자 한 개를 뺨에다 비벼
보며 고향의 냄새를 맡아보았다.
누님은 그 유자를 곱게 씻고 물기를 뺀 다음 가늘게 채를 썰
어서 설탕으로 재워 두었다. 지금 소록도 방문을 하러 가기 전에
따끈한 유자차 한잔을 마시며 고향의 향기를 맡아 본다. 못생겨
도 맛은 좋아 가 아니라 못생겨도 향은 정말 좋은 유자에서,
또 다시 고향을 발견해 본다. 언젠간 고향으로 돌아가리라는 생
각은 해 보지만, 그게 마음 먹은 대로 될 것 같지는 않다. 현실
에 충실하면서 아주 작은 것에서라도 고향을 발견하며 살아야겠
다.
1997.11.28.
,.........................................
아들아....
아빠의 마음속에 있는 고향은 천국이었더란다. 또 다시 이 세
상에선 그런 천국을 만날 순 없겠지?
아빠의 마음속에 있는 고향, 아빠가 어릴 때 나누던 고향의
정을 너에게도 그대로 전해 주고 싶음에 이렇게 글을 써 본단다.
이 세상이 아빠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처럼 인정 많고 물 맑고
공기 맑은 곳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단다.
내년엔 아빠랑 할아버지 산소에 한 번 다녀올까?
조금은 힘들겠지? 그러나 갈 수 있을 거야~ 그지?
오늘의 감사 제목은 뭐누?
"내게도 아빠의 고향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어때?"
좋다고? ^_^* 빙그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