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꽃보다/사랑하는 아들아

[아들아....101] 차라리 잘 죽었소.

자오나눔 2007. 1. 15. 11:44
"저.. 있잖아요.. 아는 사람이 화상을 심하게 입었는데 몹시
힘들어해요. 방법이 없나요?" 6년전에 내가 3도 화상 75%로 살아
날 수 없는 상황에서 임상 실험으로 살아난 것을 어디서 들었나
보다. 그러나 그게 무슨 해결책이 된단 말인가...
나도 단순한 환자였고 죽어야 할 상황에서 살아난 것뿐인
데... "그래 어쩌다가 그리 됐나요?" 순간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
한다. '이제부턴 살아도 산 것이 아니겠구나...' 화상의 후유증
이 그만큼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하는 생각이었다.
그 사람의 나인 올해 30세, 어느 중소기업의 직원이었다. 건실
한 그는 주위에서 인정을 해 주는 장래가 촉망되는 한 젊은이였
다. 자연스럽게 그에게도 여인이 생겼다. 결혼 말이 오가고 있던
어느 날, 그는 회사의 어려운 사장으로 인해 다른 곳에 직장을
잡아야 할 사정이 생겼다. 그리하여 시작한게 이삿짐 센터였다.
꿈은 컸지만 영세하게 시작한 이삿짐센터라 항상 궁핍하기만 했
다.
어느 정도 돈을 모아서 결혼을 하자며그녀를 달랬지만 그녀는
이미 마음이 떠났었나 보다. 어느 날 소식이 들려 왔다. 새로운
남자랑 호주로 여행을 떠났다는.... 그의 머릿속엔 아무것도 떠오
르지 않았다. 그녀의 집으로 찾아가서 어르신들께 말을 했다. "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내사위 내사위 할 땐 언제고
지금 다른 사내랑 여행을 보내다니요?" "그러면 어쩌나..본인이
그 사내가 더 좋다며 선택을 한다는데... 자식 이기는 부모 봤는
가? 그러니 자네도 다른 여자를 사귀도록 하게나.." 그녀의 집을
나서는 순간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동네 구멍가게에 가서 술
을 몇 병 사 들고 집으로 갔다. 술을 한병, 두병, 세병.... 마시다
가 그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래 죽자.." 그 자리에 일어나 비
틀거리며 가스통을 방안으로 들고 온다. 가스 밸브를 열어 놓고
계속 술을 마시고 있었다. 갑자기 죽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세가 한심하여 담배를 한 대 피운다고 라이터를 켠 순
간... 눈을 떠보니 병원이다. 3도 화상 40%란다. 열이 심장으로
스며든 것 같다는 말들이 들린다. 호흡은 점점 가파오고 통증은
이루 표현을 할 수 없다. 몰핀계의 진통제를 수시로 맞아 보
나 그 순간뿐인가 보다. 들려 오는 소식이 점점 좋지가 않다.
방화로 인정이 되기에 병원비도 일반이라 하루에 100여만 원
씩 들어간단다. 그렇게 들어가면서도 희망이 없다고 하니 가족
들은 탈진 상태로 접어들어 간다.
비록 교회는 나가지 않지만 같은 교회 청년의 오빠라는 것으
로 우리들은 모금을 시작한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료비에
보태라고 모은 돈을 가져가려다 너무 늦어서 다음날 가기로 했
다. 오전 10시쯤 되었나 보다. 전화가 왔다. "집사님... 방금 돌아
가셨어요.." 그래도 그젠 희망이 보였는데...
몸이 낫고 나면 열심히 교회도 다닌다고 했는데.. 주님을 영
접했는데... 몇 명이서 차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빈소엔 위패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시골서 올라오신 어머님은 넋이 나가 있다.
가족들의 얼굴은 무감각한 것 같다. 가난... 가난 때문이었다.
잠시 예배를 드리고 치료비로 마련한 봉투를 조의금으로 놓고
올 수밖에 없었다. 애써 눈물을 감추려는 자매를 보며 고개만 끄
덕여 준다. 빈소를 나오는 우리들의 귀에 들려 오는 흐느낌 속에
"그래.. 차라리 잘 죽었소."라는 소리가 가슴을 치고 있다. 그래..
어쩌면 잘 죽었는지도 모른다. 치료비도 문제지만 살아도 산 것
이 아닌, 남은 고통을 생각하면 그런 생각이 든다. 이런 나를 발
견하곤 흠칫 놀란다. 사랑... 사랑이 뭐기에...
1997.12.3
..........................
아들아...
오늘은 우울한 이야기를 썼구나. 그러나 어쩌누...이게 현실인
걸...
준열아..
우린 말이야. 무엇을 행동으로 옮길 때 3초만 더 생각하며 옮
기도록 하자구나. 그러면 그만큼 후회는 덜 할 것 같구나.
날씨가 추우니깐 자꾸 불이 생각난다. 이 겨울에 불조심하는
걸 잊지 말자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