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꽃보다/사랑하는 아들아

[아들아...120] 배를 까뒤집고

자오나눔 2007. 1. 15. 11:57
간밤의 잠자리가 편하지 못했는지 몸이 찌뿌듯하다. 방문을
닫고 나오려다 문득 침대 위를 돌아본다. 간밤에 포근하게 나를
덮어 주던 연분홍 이불이 허연 배를 까뒤집고 애처로이 나를 보
고 있다. 마치 배신을 당한 듯한 모습이다. 주위를 돌아본다. 이
곳 저곳에 널려진 실내화는 제 멋대로 뒤집어 있다. 나를 향한
무언의 항의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모두 쓸어서 버리고 싶은 충
동을 가까스로 참는다. 도대체 왜 이러나.... 흐트러진 머리엔 까
치가 몇 채 집을 지어 놨다. 조금 자란 발톱을 깎았더니 그게 잘
못 됐나 보다. 발가락이 퉁퉁 부었다. 양말을 신기도 어렵다. 도
대체 왜 이러나....
사람은 마음에 따라서 보이는 사물의 모습도 달라 보이나 보
다. 평상시 같으면 배를 까뒤집고 있는 이불은 날 유혹하는 새
색시의 모습 같아 다시 그 속에 안기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고 할
텐데 보기가 흉하다. 어지간한 것에는 끄덕도 않던 내가 작은 가
시들의 아우성에도 마음이 심란해 옴을 느낀다. 봄이 오고 있는
가? 아니 봄은 이미 왔는가? 어느 순간에 그걸 느끼지 못하고 있
다. 봄의 예찬을 할 수가 없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데.... 내
마음에는 정녕 봄은 오지 않으련가...
잃어버린 식욕은 좀체 돌아오지 않는다. 사람을 미워하지 않
는 내 주관이 무너져 버렸다. 우리를 버리고 떠났을 때도 미워하
지 않았다. 5년만에 만나 도장을 찍어 줄 때도 미워하지 않고 오
히려 그의 잘됨을 빌어 주었었다. 그런데... 미움이 생겨 버렸다.
도장 찍은지 9개월만에 전화를 해와 준열이를 달라고 한다. 모르
게 데려 가 버리겠다고 한다. 곁에 있다면 폭발해 버리고 싶다.
왜 이러나... 미움도 사랑이라 하던데 미움마저도 초월할 수 있다
면 좋겠다. 무의미한 존재로 인정을 해 버리고 싶은데 준열이를
걸고 나오는데는 나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오른다. 한때는 구박
하는 모습조차 어여삐 보일 때가 있었을 텐데....
아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준열인 연신 개구쟁이다. 비
록 잠은 같이 자지 않지만 낮 시간이면 사무실에 들려 투정도 부
리고 재롱도 부린다. 준열이의 얼굴에 비치는 영상을 지우려고
애쓴다. 지울 수 있는 지우개만 있다면 그 지우개가 다 닳도록
지우고 싶은데...
준열인 나의 희망이다. 비록 내가 바라는 인물이 되지 못하더
라도 두 발로 건강하게 뛰어 다니는 그 모습만으로도 내겐 희망
이다. 걷지 못하는 아비의 보상 심리라고 해도 변명을 못하겠다.
그러나 준열인 내겐 희망이고 꿈이다. 그가 무엇이 될 진 모르겠
지만 같이 이루어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도움이 될 진
모른다. 그러나 내겐 준열이를 위해 해줄 것이 있다. 그의 건강과
잘됨을 위해 기도의 제단을 쌓을 수 있는 여력이 아직은 남아 있
기에 오늘도 잡을 수 없는 두 손을 부여잡고 두 눈을 감아 본다.
"주님... 아시지요..."
....................................................
아들아....
모처럼 네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구나. 그러나 아빤 씩씩하단
다. 모든게 하나의 과정일 뿐이야. 너무 걱정하지 말자. 잉? 넌
걱정도 하지 않는다고? 그럼 나만하고 있는 거야?
그래 우리에겐 과실나무의 가지가 번성함 같이 풍요로움과,
우리의 적이 침범하지 못하는 강건함과, 위로는 하늘의 복이, 아
래론 샘솟는 원천의 복이 임할 거야~ 그치? 우리 열심히 살아가
자 구나. 우리 두손 잡고 파이팅 한 번 할까? 좋다고? 자! 파이
팅!!!
그래 우리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하고, 작은 것에서라
도 감사하며 행복을 만들어 가자구나. ^_^* 빙그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