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꽃보다/사랑하는 아들아

[아들아...131] 나도 가끔은 죽음을 생각한다.

자오나눔 2007. 1. 15. 12:07
     힘들어하는 사람들... 아무런  꿈도 희망도 없는 사람들... 절망
  에 빠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우리 주위에  너무나 많다. 세상을
  살면서 웃으며,  격려해 주며 행복해  하며 살아도 다 살지  못할
  세상인데 작은 것에조차  언성을 높이며 삿대질을 하는게 현실인
  것 같다. 비굴한 양보보다는 상쾌한 마음으로 손해도  볼 줄 아는
  우리가 되어야 하는데  결코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연일 매스
  컴을 장식하는 죽음들... 이젠 그런 기사를  보는 사람들의 감정마
  저 무감각해지고 있는  것 같다. 거친 광야 같은 세상을  헤쳐 나
  가려다 보면 남모를 설움, 눈물을 흘릴 때가  한 두번이 아니라는
  건 모두가 다  알고 있으며 또한 피부로 부딪치고 있다.  울고 싶
  다고 목놓아 울었다 간 경범죄로 잡혀간다는데......
     그러나 어느 곳에나  양지와 음지는 있는 법. 화려함  속에 감
  추어진 상처들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상대방은 나보다 더 행복하
  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나는 웃음  뒤에 감추어진 눈물도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가지고 싶다. 항상 삶이 버겁다고 생각해 왔다.
  수시로 자살을 꿈꾸어 왔었다. 그러나 어찌 인간의  삶이 내 멋대
  로 될 수 있겠는가.  사람은 이성이 있기에 힘들어하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 생각할 수 있음에  많은 혜택을 누리면
  서도 또한 많은 갈등에 휩싸이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육신의 고통으로 너무 힘들어  할 때 한 친구가 찾아 왔
  었다. 30대 초반의  나이 때 그 친구는 포텐샤를 몰고  다닐 정도
  로 경제적으로는  부족함이 없었다.  건강한 육체와 남에게  싫은
  소리 안 듣고 살아온  그 친구는 많은 사람들에게 괜찮은 남자로
  통했었다. 그  친구에게 물었었다. "자네는 부러울  게 없으니 참
  행복하겠네..." "이  사람아 그런 소리 말아!  나도 가끔은 죽음을
  생각한다네.." 의아해 하는 나에게 그 친구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
  다. 돈을  버는 재미에 잘  나가던 예배당을 방학을 한지  15년이
  넘었단다. 내 나이가 37이니 그 친구가 22살  때 예배당을 방학했
  단다. 사업이 잘  될 때마다 마음 한구석엔  불안한 감이 있단다.
  그러면서 사업이 안 풀려 종업원 월급을 주지 못할 때는 정말 죽
  고만 싶더란 다.
     아마 나는 예수를 믿지 않았더라면 몇  번을 자살했을 것이다.
  전신마취 수술 20번이 어린 아이 장난인가...  언젠가 어느 글에서
  유서를 써 놓은걸 본적이  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 태어나
  는 것은 순서가 있지만, 가는 것은  순서가 없다고 하지 않는가....
  나도 그 흉내(?)를  내 본답시고 하얀 종이에 펜으로 글을  써 나
  간다. 정말  죽음을 앞에 두고  쓴다고 생각하며, '사랑하는  아들
  아...'를 쓰는데 눈물이 그렇게 많이 나올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
  다. 결국은 눈물로 쓴 편지가 되어 버렸고, 구겨서 마음속에 간직
  해 버렸지만 언젠간  유서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 사랑하
  는 사람들에게 남길 수 있는 유서... 글쎄? 과연 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