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꽃보다/사랑하는 아들아

[아들아...157] 썩어 가는가 썩어 버렸는가 아니면?

자오나눔 2007. 1. 15. 12:36
     요즘 동장군의  기세가 엄청나다.  수은주가 영하로  떨어지고
  두자리 수를 기록한 것이 오히려 익숙해진 것  같다. 잠시 외출을
  할 기회가  있었다. 오가는  길손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몸집은
  두툼해짐이 금방 눈에 들어 온다. 길손들의 그  모습이 더욱 춥게
  느껴진다.
     단골로 애용하는  과일집 앞을 지나  가다가 상자에서 과일을
  추려 버리고 있는 모습을  본다. 아직은 괜찮은 것 같은데... 그런
  대로 먹을 만한 과일인데도  추려서 버리는 걸 보고 이상하여 물
  어 보았다. 아직 괜찮은  것 같은데 왜 버리느냐고... 그런데 주인
  은 조금도 아깝지  않는 듯 말해 준다. "이 과일  중에는 썩어 버
  린 과일, 썩어  가는 과일, 싱싱한 과일이 있습니다.  썩은 과일과
  썩어 가는 과일은  싱싱한 과일을 썩게 만듭니다.  조금이라도 덜
  썩게 만들려면  조금 썩은 것도  추려 내야 합니다. 조금  가져다
  드실래요?" 약간 상했지만 내용물은 전혀 이상이 없는 밀감을 한
  봉지 담아 주려고 한다. 바쁘다는 핑계로 그 자리를 떠나온다.
     썩어 가는 과일...  그 과일이 내모습 같다는  생각이 시베리아
  북풍처럼 나를 휘몰아치고  있었다. 어쩌면 이미 썩어  버린 과일
  과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싱싱한  과일을 썩어
  가게 만들고 있는....
     수많은 만남과 이별이  있다. 희망으로 만났다가 아픔으로  이
  별하는 경우도 있지만, 힘들게 만났다가  새로운 미래를 기약하며
  이별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날마다 만남과 이별을  하고 있지
  는 않을까? 모양이 비슷비슷한  과일들 중에 주인의 손길에 따라
  만남과 이별을 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썩었거나  썩어 가는 과
  일은 싱싱한 과일을 위하여 주인이 배려를 해 주기 때문이다.
     토기장이이신 그분은 지금도  선별 작업을 하고 계실  것이다.
  수많은 당신의 작품 중에서 금이 갔거나, 깨진  것, 썩어 가는 것,
  썩어 버린 것들을 선별하고 계실 것이다. 어쩌면  지금 나는 그분
  의 손에 들려서 검사를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썩어 버린 것들과
  함께 쓰레기장에 버려질 것인가, 아니면  싱싱한 모습으로 진열장
  에서 마음껏 폼을 잡으며  그분을 기쁘게 하고 있을 것인가를 생
  각하노라니 느슨해졌던 모든  것이 팽팽하게 긴장됨을 느끼고 있
  다. 팽팽하게 긴장할 수 있다는 것은 아직은  희망이 있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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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아...
     만약에 우리가 과일처럼  누군가에 선별되고 있다면 우리들은
  과연 어떻게 살아 갈까를  생각해 보았단다. 아빠는 두렵단다. 넌
  어떠니?
     99.1.8
     자오 나눔에서 나눔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