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꽃보다/사랑하는 아들아

[아들아...158] 세배

자오나눔 2007. 1. 15. 12:36
     가슴이 뛰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는데  무척 가슴이 뛰었
  다. 설날 아침에 준열이에게 세배를 받았다. 그러고 보니 내 생에
  처음으로 받아 보는 귀한 세배였다. 내 피를  받은 아들에게서 이
  렇게 세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니 무척 가슴이  뛰었다. 이런 마
  음 때문에 설날이 되기 전에 은행에 가서 새 돈으로 세뱃돈을 준
  비하나 보다.
     아들 녀석과 조카가 세배를 한다. 벌써  이렇게 자라서 세배를
  하는구나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져 눈만 끔벅거리고  있었다.
  주머니에 준비해 두었던  세뱃돈을 꺼내 두 녀석에게 나눠주면서
  덕담이라는 것도 해  본다. 덕담을 하다가 괜히  멋쩍어 말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올해는 더욱 건강하고 착하게 자라도록 해라. 학
  교에도 들어가니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는
  준열이가 되었으면 참 좋겠어. 그리고... 음... 아무튼 빨리 커라."
     싱겁게 끝난 덕담이었다.  이어서 무어라고 덕담을 더  하려다
  어른들은 아이들 앞에서  싱거운 행동들을 잘도 하면서도 아이들
  에게는 그런 것을 못하게  하는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려 입을 다
  물어 버렸었다. 섣달  그믐밤은 잠을 자면 안된다며  시간을 보내
  는 소일거리로  윷놀이를 했었는데... 그냥 단순한  윷놀이면 오죽
  좋으련만 재미가 없다고 가족끼리 편을 가르고 돈을 걸고 윷놀이
  를 했으니... 결국 윷말을  쓰면서 언성이 높아 가고... 쩝... 마치...
  '나는 마담풍 해도 너희는  바람풍 해라'고 했다는 어느 이야기처
  럼...
     아들 녀석의 세배를  받고 나니 마음 한쪽이 쓰라려  온다. 내
  부모님이 살아 계신다면... 살아서 이 모습을  보고 계신다면 얼마
  나 기뻐하실까... 살아  생전에 전화 한 통 드리는  것보다 소주잔
  을 들이키는 것에 더 신경 쓰고 살아 왔던 지난날이 날카로운 비
  수가 되어 가슴을  아리게 한다. 지금이라도 지하에서  나의 세배
  를 받을 수만 있다면 비록 불편한 몸이지만 백배, 천배, 만배라도
  드릴 수 있으련만 내  부모님은 말없는 교훈을 내게 남겨만 주고
  계신다.
     "사랑하는 아들아... 네가 살아 있는  동안 네 아들에게 부모가
  무엇인지를 바르게  가르치도록 하려무나"라고... 나는  오늘 이렇
  게 깊은 상념에  빠져 있다. 나는 과연 내 아들에게  무엇을 가르
  쳐 줄 수 있을까...  내가 가르쳐 줄 수 있는 건  이것 한가지뿐일
  것 같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삶' 이것을 가르
  쳐 주기 위해 오늘도 나는 희망을 향해 달려가리라. 희망을 향해!
     99/2/18
     음력 초 사흗날에 나눔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