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꽃보다/사랑하는 아들아

[아들아...167] 아버님 보고 싶습니다.

자오나눔 2007. 1. 15. 12:43
       아버님...
       무척 오랜만에   불러 봅니다.  세상살이 버겁다고   투정할
  때만 아버님을 불렀나 봅니다. 내 삶이   아버님의 뼈와 어머님의
  살로서 이루어진   것인데, 가끔은 그것을 망각해  버리고  내 앞
  에  닥친 현실만 바라봅니다. 내가 아비가   되면 철이 들겠지 했
  는데 아직도   아버님께는 앞뒤를 분별할  줄 모르는 철부지입니
  다.

       아버님
       아버님이 우리 곁을   떠난 지 올해 9주년이   됩니다. 아버
  님 기일  때마다 우리 형제들이  모이지만 그때마다 후회의 연속
  입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부모님 살아 생전에   조금이나마 더
  잘  해 드리지 못함이  저희들  가슴에 이렇게 못이 되었나 봅니
  다. 작년에  아버님과  어머님, 그리고 고모님 묘를 이장할 때 저
  희들의 마음이 그렇게도 아렸습니다.

       살아 생전엔 부드러운   솜털 이불을 받기만 했습니다.   부
  모님의 사랑이 가득  담긴 이불을 덮으면서도 저희들은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아팠는지   모르겠습니
  다.

       솜털처럼 부드러운 금잔디를  깔았습니다.  행여 쑥  뿌리라
  도 들어 갈까   봐 조심스럽게 금잔디를 깔았습니다.   그런데 들
  리는 소문은 쑥이  부모님의 묘지를  덮고 있다고  하네요... 마음
  이 아픕니다.

       아버님...
       올해도 어버이날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일년  사시사철
  을 살아가면서도 부모님을 생각하는 날은  며칠이 되지 않습니다.
  항상  내 삶만을 살아   왔나 봅니다. 그런데  아버님... 오늘따라
  왜 이리도 아버님이 보고 싶은  지요.  어머님이 하늘나라에 가신
  지도 15년이 되었고 아버님도  8년이나 되었는데 오늘따라 왜 이
  리도 보고 싶은지요 아버님...

       언제나 아버님은 허름한  점퍼  차림으로 살아  오셨습니다.
  양복이라도 한 벌 사 입으실 여유는 됐는데도 우리 5남매를 생각
  하며 언제나  점퍼를  즐겨 입으셨습니다.  183cm의 키에 지게를
  지시고 휘청휘청  밭으로 걸어가시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
  다. 때로는  약주를 잡수시고 벌콰한 얼굴로   들어오셔서 저에게  
  하셨던 말씀 "이놈아... 호랑이도  자기 새끼는 안 잡아먹어!"  아
  버님을 유난히 무서워했던 우리   5남매를 대표해 자주 반항하는  
  제가 마음에 아픔이 되셨나 봅니다. 그럴 때마다  거구의 몸이 가
  늘게  떨리는걸 보아 왔습니다 아버님.... 그 모습은  인간의 고뇌
  를 그대로  담고 있던 모습이었습니다.  친구들과 술 한잔   먹고
  비틀거리는 아들의 모습이  그리도 안타까웠나  봅니다.  그때 지
  게 작대기로  맞아 부러진   팔의 흔적은 아직도  그대로 남았는
  데 아버님은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습니다. 보고   싶어요 아버
  님.... 거친 파도를 타고  바다로  나가서 미역을 채취하시면서 너
  희들이 있기에  기쁘게 일한다던 그  말씀이  아직도  생생한데...
  다시 한 번 지게 작대기로 얻어 맞고 싶습니다 아버님....

       아버님..
       작년에 편지를 띄울 때  올해는 며느리를 데리고 가지 못해
  도 언젠가는 아버님  어머님 산소에 며느리를 데리고 가겠노라고
  다짐을 했지요? 아버님 기뻐해  주세요.  올해는 며느리를 데리고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일(5/1)이면 결혼을  합니다. 장남이  
  사고가 나니 모든  것을  뒤로 미루고  올라 오셨다가 끝내 병상
  에 누우셨던 아버님...  오늘따라 왜 이리도 보고 싶은지요.  그렇
  게도 아들과 며느리가 함께  큰절을 올리는걸 바라셨는데.... 이제  
  결혼을 하고도  아버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가 없네요.  아버님
  어머님 산소를  찾아 뵙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합니다.

       아버님...
       이렇게 눈물이 흐르는   건 서러워서가 아닙니다. 어느   누
  가 나에게  손가락질하고 미워해도 이겨  낼  수 있어요.  그것은
  아버님이 제게 물려주신  유산이기  때문입니다. 결혼식장에서 빈
  자리로 있을  부모님  석을 볼 수가 없을  것 같네요.  그걸 보다
  간  울어 버릴  것  같아요. 그래서 부모님  좌석은  마련하지 않
  으렵니다. 용서하세요 아버님...

       이제 결혼식을   하고 당신의  며느리와 함께   찾아뵐께요.
  그리고... 씩씩하게 살아갈께요.  항상 어버이날 전에 편지를 띄웠
  는데 올해는 며칠   빠르지요? 덕분에 어버이  날 전에는 부모님
  산소에 찾아 뵐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버님.... 그 나라가  그리
  도 빨리 가고  싶더이까? 저희들과 조금이라도  더 계시지...   못
  난 아들과 며느리의  큰절도 한 번 받으시지.... 그리도 빨리 가셨
  습니까... 열심히 살께요.  행복하게 살께요. 당신의 손자  잘 키우
  며  행복하게  살아 갈 거예요. 앞으로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려야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희들 서로  위로하며 웃으
  며 살아갈께요. 지켜봐 주세요.
       아버님, 올해도 넋두리만  하고 말았습니다. 며칠 후에 찾아
  뵐 것을 약속드리며  이만 줄입니다. 아버님... 보고 싶어요...

       99/4/30
       세상에서 아들 미동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