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꽃보다/사랑하는 아들아

[아들아...168] 선생님 선생님 우리 선생님

자오나눔 2007. 1. 15. 12:44
       얼마 전에 결혼을   하고 고향을 찾아갔었다. 부모님   산소
  와 어른들께 인사를   한 후 집안에서  일을 보고  있는데 '面民
  체육대회'를 한다고  구경을 가잖다.  읍내에 있는 초등학교로 간
  다. 깔끔한 학교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26년이 지났으니 많이 변해야 함이 당연하겠지만 너무나 변했
  다.  그때는  학생 수가 1,200명이었는데 지금은  120명이란다. 너
  무나  작은 학생 수를 보며  가슴 깊숙한  곳부터 아려  온다. 비
  록 섬에서 태어났지만 내  고향 부모님들의 교육열은 무척  뜨겁
  다. 어업과 농업이  생계  수단인데 경제 사정이 조금  좋은 집은
  아이들을 모두 육지로 유학을 보낸다.  그게 부모들의 자부심이었
  다. 모처럼 찾아오는 아이들을 위해 향토  장학금도 마련해 놓고,
  이웃  사람들에게 자식 자랑이 대단하다.

       그러나...
       작은 섬에 초등학교   3개, 중학교 2개가 있는데   나몰라라
  고 자식들을  육지 학교로 보내는  부모들.  오로지 지식  교육에
  마음이 급해 자연에서 배울 수 있는 고귀한 인성 교육을 놓쳐 버
  리는 우를 범하지  않는가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코흘리개
  아이들과  매스게임을 하고 있는 선생님들. 모두  나이가 30대 이
  상이다.  도시의 선생님들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아이들과 하나
  되어  뛰고 있는  선생님들을 보며 내 형님 같은, 내   누이 같은
  정감이 드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겠는가. 시골 학교는   점점 폐
  교를 해 가고 도심   학교는 증축을 하는  모습들을 뉴스에서 자
  주  본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자꾸 가슴 한쪽을   도려내는
  것 같은 아픔을 느끼는  것으로 끝나는 내 모습도 안타깝기만 하
  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인   것 같다. 누나가 다니는   중학교 선
  생님 두  분이 가정 방문을  오셨었다.  일손이 부족한  시골이라
  가정 방문을   오는 줄 알았지만, 모두가  밭에  나가 일을  하고
  있었다 누나까지  동원되어... 마침 나도 소를   끌고 밭으로 나가
  야 하는데   선생님들이 오신 것이다. 모두  일하러  가고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선생님은 부모님들께 가정 방문 왔었다고 전해 달
  라며 또  다른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다른 집도  마찬가지겠지
  만...  나는 다람쥐처럼 보리 덤불로  몸을 날렸다. 그곳에는 암탉
  이  알을  낳는 곳이기 때문이다. 달걀은 우리들에게 용돈의   역
  할을 하는 귀한 것이었다.  아직도 따뜻한 걸  보니  알을 낳은지
  얼마 안됐나 보다.   달걀을 두 개 들고 선생님들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모퉁이를 돌고 보니 선생님이 세분 계셨다. 나는 갈등을
  하고 있었다.  누구는 드리고 누구는 빼고...  얼굴이 빨개진 채로  
  서 있는 내 손엔 달걀이 한  개씩 들려  있었다.  눈치챈 누나 담
  임  선생님은  달걀을 받아 두분  선생님께 드리고  있었다. 갑자
  기  서운함에 눈물이 찔끔  나오고 있었다.  그때 선생님은  나에
  게 "미동아 선생님은 너의  가장 소중한 마음을 받았단다 고맙다
  "라며 내 작은 손을 꼭 잡아 주고 계셨다.

       2년 후엔 나도   중학생이 되었다. 선생님을 미리   알고 입
  학하니 좋은 점도   많았다. 유달리 작은 키였지만   선생님이 키
  워(?) 주셨다고 할까  기죽지 않고 살아갔다. 어느  날 학교 가는
  길에서 무서운  선배들에게 잡혀 담배를 배우는  수업을 받게 된
  다. 처음엔 맞지  않으려 배웠는데... 우리 반 친구들 모두가 담배
  를 피웠다.  중학교 1학년 때... 그것을  선생님께 들킨 것이다. 아
  마 누군가가 말을 한  것 같다.  엄청 맞았다. 그런데... 얼마를 맞
  던  우리들은 온 몸이 굳어  버림을 느꼈다. 눈물...  선생님은 눈
  물을 흘리시며   우리를 때리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담배를  안
  피운 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오늘은 스승의 날이다.   서울에선 스승의 날에 휴교를   한
  단다. 정년을 앞둔 어느 선생님의 고백이 가슴에 와 닿는다. 불신
  을 받고  있는  스승... 그러나  제자가 스승의  가슴에  카네이션
  한 송이 달아   드릴 정서마저 없애  버리는 어른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언제나 선생님들은 당하는 편이었다. 그러
  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살아   온 것 같다.  스승의  
  날에만 생각하는 못난 사람이지만   언제나 내 가슴에는  선생님
  을 생각하는 마음   한쪽은 열어 놔야겠다. 오늘 아침에는   준열
  이와 함께 선생님께 선물할  스타킹을 포장하고   있다. 스타킹을  
  포장하며 선생님의  소중함을 이야기 해  본다. 녀석이  갑자기 "
  아빠! 나도 선생님 할까?"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으로
  만족을 한다.  껴안은 건 싫어하니까....  그러나 아들아 아빠는 그
  런 너를 사랑한단다.
       99/5/15
       자오나눔에서 나눔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