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꽃보다/사랑하는 아들아

[아들아...192] 쌍깡통 돌리기

자오나눔 2007. 1. 15. 13:00
아마 내 아들 나이 때였나 보다. 그땐 정말 궁금했었다. 평상
시에는 야외에서 불을 피워 고구마를 구워먹어도 불난다고 혼을
내시던 아버님이, 그날만큼은 일부러 불을 피우게하셨다. 논두렁
밭두렁을 찾아가서 골고루 잘 태우게 하셨다. 이상했다. 불피우는
날이 따로 있는가 보다...라고만 생각하고 어른이 되어버렸다.

그때 불을 피우는 도구는 통조림 깡통에 구멍을 몇개 만들
고, 그 안에 송진이 잔뜩 배어있는 솔가지를 넣고 불을 피웠다.
철사로 끈을 만들고 불이 잘 피어나라고 허공에다 빙빙 돌리면
참 재미가 있었다. 형들은 미군부대에서 나온 씨레이션 깡통으로
불단지를 만들어 붕붕 돌리고, 그럴땐
그 형들이 존경스럽기조차 했던 그날.... 행여 쥐구멍이라도 발
견하면 연기를 가득피워 불어 넣고, 뜨거운 불씨를 그 속에 집어
넣기도 했다. 그럴땐 운수좋으면 쥐를 잡기도 했다. 그땐... 쥐 꼬
리 한개 가져가면 돈으로 바꿔주던 시절이다.

단짝이던 친구와 함께 쌍깡통을(깡통 두개를 엇갈려 돌리면
정말 신났다.) 만들어 친구네 밭두렁을 태우러 갔다. 친구네 밭에
는 친구 할아버지 할머님이 잠들어 계신다. 친구와 신나게 쥐불
놀이를 하는데... 친구 할아버지 무덤에 쥐구멍이 보이는 것이 아
닌가. 우리 둘의 눈은 반짝 빛나고, 이것 저것 생각하지 않고 쥐
구멍에 연기를 피우기 시작한다. 순간... 깡통에 있던 불씨는 아주
자연스럽게 친구 할아버지 할머님 무덤을 태우기 시작한다. 소나
무 가지로 친구랑 죽어라 불을 껐지만 결국 무덤 두개를 다 태워
먹었다. 쌍깡통을 만들때 부터 알아 봤다.

어린 마음에 얼마나 놀랐던지 친구랑 산으로 도망을 쳤다.
산에 가서 서로 쳐다보니 눈썹과 머리가 홀라당 다 탔다. 숱검뎅
이가 얼굴엔 분장을 하고 있었고, 이상한 모습의 얼굴엔 반짝이
는 눈과 하얀 치아만 더욱 빛나고 있었다. 결국 어른들께 잡혀
서 얼마나 얻어 맞았는지.... 친구랑 난 추운 겨울에 발가 벗겨진
상태로 친구네 마당에서 벌을 서야 했다.

며칠 후 무덤에서 나간 혼을 다시 불러온다며 성대하게 굿을
했는데, 그 굿 경비 마련하느라 아버지와 친구 아버님은 고생을
하셨다고 한다. 친구 집에서 혼을 난 후 집에 들어 오니 어머님
은 감기 안걸리려면 밤을 깨물어 먹어야 한다며 밤을 부럼으로
주셨다. 어머님 품안에서 잠들었던 그날이 참 행복했었던 기억이
난다.

어제는 정월 대보름 전날이다. 시골에서는 어제부터 부럼도
먹고 쥐불놀이도 했었다. 준열이가 오늘은 1학년 종업식을 했다.
어린 마음에도 신이 났는가 보다. 밖으로 나돌더니 저녁 무렵엔
기침을 심하게 한다. 녀석에게 땅콩이나 까 줘야겠다. 잠시 마음
의 고향을 찾는 시간을 위하여...

아들아....
비록 감기에 걸렸지만 부지런히 뛰어 놀고 밥도 맛있게 먹
고 그래야 오늘처럼 감기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단
다. 아빠 시절에는 밤을 깨물어 먹으면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는
게 통했지만 지금은 그런 시절이 아니잖니... 개구장이라도 좋
다! 건강하고 바르게만 자라다오~ 사랑한다 아들아 화이팅!!!
^_^* 빙그레~
2000/2/19
부천에서 나눔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