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꽃보다/사랑하는 아들아

[아들아....194] 어떤 사랑

자오나눔 2007. 1. 15. 13:01
난 내 아들 준열이에게 미안할 때가 참 많습니다. 무엇이 그
리 바쁜지 밖으로 돌아다니기 일쑤고, 모처럼 집에 있는 날엔 피
곤하다며 누워 버리는 아빠, 그나마 시간이 생기면 컴퓨터 앞에
앉아 버리는 나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하고 어울리는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아직도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아들은 혼자만의 시간에
적응이 되어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장난감을 친구 삼아 놀게 됩
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아릿해 오지만 어울려 놀
아 줄 시간이 부족합니다. 어느새 핑계를 대는 아빠로 변해 버렸
습니다. 스스로 그걸 알고 있기에 일부러 시간을 만들어 보려고
노력하지만 쉽지는 않습니다.

유난히 장난감 조립하기를 좋아하는 녀석입니다. 녀석의 방은
오늘도 폭탄 맞은 참호처럼 변해 있습니다. 서서히 스스로 정리
하는 습관을 가르쳐 보지만 아직도 녀석은 적응하기 힘든가 봅니
다. 장난감은 언제나 자기 방에 어지럽게 널려 있었습니다. 블록
을 가지고 자기 나름대로 여러 가지를 만들어 진열해 놓았습니
다. 결국 아내는 장난감을 상자에 담아 자질구레한 잡기들과 함
께 창고로 쓰고 있는 곳에 내어놓았습니다. 한 개씩만 꺼내어 놀
게 하려는 마음이었습니다. 난 차라리 장난감을 어려운 아이들에
게 전해 주자고 했는데 아이가 좋아하니 조금 더 있다가 주기로
했습니다.

어느 날 아내가 장난감이 없어졌다고 합니다. 나가 보니 뚜껑
이 열려 있고 조금 쓸만한 장난감이 모두 없어졌습니다. 누가 집
에 들어와 훔쳐 간 것입니다. 아들 녀석이 상처를 받은 것 같습
니다. 그러나 녀석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덩달아 우리
도 아무말을 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하루는 집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아이들 몇 명이 부엌 문 앞에서 서성입니다. 밖으로 나가
보니 아이들이 장난감 상자를 열고 남아 있던 장난감들을 집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불러 앉혀 놓고도 뭐라고 할말이 없었
습니다. 어쩌면 이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훔쳐 가도록 원인을 제
공한 사람이 우리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내 아이도 어디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데... 결국 아이들에게 남의 것을 훔치는
건 나쁘다는 것만 이야기 해 주곤 돌려보냈습니다.

아이에게 해 줄게 없었습니다. 이 핑계 저 핑계 무슨 핑계가
그리 많은지 아들과 어울리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봉사 다닐 때 데리고 다닙니다. 비록 받아쓰기 10점에서 30점을
받아 오지만, 일상에서 사람 살아가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가르쳐
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아빠가 다니는 곳이래야 장애인 공동체나
소록도같이 외모가 많이 일그러진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곳을
다니지만 녀석은 다행이 적응을 잘합니다. 아마 아빠의 모습도
그들과 비슷하기 때문인가 봅니다.

오늘은 아들을 데리고 소록도 한센병자들을 찾아갑니다. 녀석
은 벌써 신이 났습니다. 소록도 가서 할머니하고 꽃게 잡으러 갈
거라며 신이 났습니다. 왕복 2천4백리 길이지만 아이에겐 먼 길
이 아닌가 봅니다. 소록도 간다고 친구들에게 자랑하는 녀석의
말에는 힘이 들어가 있습니다. 내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은
이런 사랑뿐인가 봅니다. 슈퍼에 가서 아이스크림 사 오라며 한
전도사님이 돈을 주자 신나게 달려갑니다. 그 모습이 정답습니다.
2000/6/5
부천에서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