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꽃보다/사랑하는 아들아

[아들아...196] 세수

자오나눔 2007. 1. 15. 13:02
우리 집에서 제일 일찍 현관을 열고 나가는 사람은 준열입니
다. 저녁에 책가방까지 챙겨 놓지만 언제나 아침이면 분주합니다.
뭔가를 빠뜨린 모양입니다. 집에서 문구점으로, 문구점에서 집으
로 몇 번 뛰어 다니면 시간은 벌써 저만치 달려가 버립니다. 어
김없이 뛰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아침에 준열이와 아내의 대화를 듣고 있노라니 어릴 적 추억
이 떠오릅니다. 곤히 자고 있는 준열이를 깨우러 간 아내와 준열
이의 대화입니다. "엄마.." "왜~ 부르지만 말고 말을 해라" "엄마
나 열나는데 세수 안하고 가면 안돼요?" "안돼! 남자가 그것 아
프다고 세수를 안하면 되니?" "네..." 씻으러 간 녀석이 조용합니
다. 손가락으로 물을 찍어 세수를 하고 있나 봅니다. 아내의 고함
이 준열이와 함께 아침을 깨우고 있습니다.
준열이를 품에 안고 기도를 해 줍니다. 머리에 열이 있습니다.
아빠의 기도를 받고 집을 나서며 "다녀오겠습니다."라고 학교로
뛰어 가는 녀석의 뒷모습에서 든든함이 보이는 건, 녀석이 잘되
기를 바라는 아빠의 마음인가 봅니다.

그때...
보일러도 없이 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해 밥을 하고 국도 끓이
던 시절. 밥을 하고 나면 아궁이에 남은 불씨를 이용해 세수할
물을 데우던 시절. 그 시절을 겪은 우리들의 삶입니다. 가마솥에
서 나온 누룽지 냄새가 구수한 숭늉 한 그릇에 행복했던 시절이
우리들에겐 있었습니다.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리던 날이면 학교에
가기 싫어 고민 끝에 핑계를 대면 어김없이 어머님께 엉덩이를
맞으며 학교로 가야 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분명 그날은 세수하는 것도 까먹고 학교로 가는 날입니다. 논
둑길을 신나게 달리다가 논 언덕에 굵은 고드름이 달려 있으면
한 개 꺾어 입에 넣어 우지끈 씹어 봅니다. 그때야 세수하지 않
았던 게 생각나 얼음물로 고양이 세수를 합니다. 그땐 이미 학교
수업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십리 길을 걸어 다녔던 그 시절이
있습니다. 이동원의 향수를 들을 때면 영락없는 내 고향이 떠오
릅니다. 어릴 적을 생각하며 고양이 세수를 해 보고 싶음은 아
마... 고향이 그립기 때문일 겝니다.

아들아...
개구쟁이라도 좋다. 건강하게만 자라 다오. 아빠의 마음이란
다. 사랑한다 아들아...
2001.2.16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