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꽃보다/사랑하는 아들아

[아들아...197] 아빠! 소리가 들려요!

자오나눔 2007. 1. 15. 13:03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쯤이었던 것 같다. 내가 사고로 힘겹게 투병
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던 것 같다. 사고로 장애인이 되자 가정이 깨지
고 녀석은 고모를 엄마라 부르며 자라야 했다. 어린이 집에 다닐 때
말귀를 잘 알아먹지 못하고 발음이 정확하지 않았었다. 그래도 녀석에
게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아빠가 장애인이라는 훈장을 달고도
생사를 오가는 투병 생활을 하고 있으니 신경을 쓰지 못했던 것이다.
나눔의 사역을 하면서도 발음만 부정확하고 나머지는 이상 없이 건강
하게 자라는 아이를 보며 감사만 했었다.

소리가 잘 들리지 않으니 혼자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던 준열
이는 언제나 조용했다. 동네 의원에서 아이가 자폐 증상이 있다는 말
을 듣고 얼마나 절규를 했던지.... 아내를 새로 맞이하고 가정이 안정되
었을 때, 아내가 제일 먼저 한 것은 녀석을 병원에 데리고 다니며 중
이염 치료를 하는 것이었다. 동네 이비인후과를 다니며 치료를 하다
보니 어느새 중이염은 완치가 됐다. 그런데도 아이는 잘 듣지를 못한
다. 언제나 집에서는 큰소리가 났다. 아이의 모든 문제를 아내에게 일
임하는 게 좋다는 생각에 관여를 하지 않았는데, 아이에게 큰소리만치
는 아내와 다투는 시간이 많아졌다. 옹졸한 마음이 아내의 마음을 아
프게 한 것이다. 아이가 큰 소리 아니면 듣지 못하는데 그걸 생각 못
한 것이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아이가 그런 말을 했을까. "엄마! 나도 안 들려
서 답답해요 으앙~" 어느 날 아내에게 혼나던 아이가 하는 말이 억장
을 무너지게 만들었다. 큰 병원으로 가보기로 했다. 종합 병원 두군데
를 갔는데 모두가 더 큰 병원으로 가란다. 결국 신촌 세브란스 병원까
지 가게 된다. 최종 진단은 아이의 청각이 없다는 것이다. 영악한 녀석
은 상대의 입 모양을 보고 말을 알아먹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마음
이 아픈지... 녀석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왼쪽 귀는 아예 들리지 않고
오른쪽 귀만 약하게 들리는데, 장애5급의 진단을 받고 초고속 주파수
를 받을 수 있는 보청기를 끼어야만 정확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단다.
아빠가 "바람풍"하면 아이의 귀에는 "바담풍"으로 들리는 현상이다. 보
청기 값이 나의 생활로는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그런 돈이 있으면
더 어려운 사람 돕겠다고 했다가 아내에게 호되게 질책만 받는 철부지
남편이었다.

그런데 오늘 아이가 소리를 듣게 되었다. 본인을 밝히기를 거부하
는 지인의 도움으로 오늘 준열이가 보청기를 끼었다. 두시간 정도의
주파수 조정을 마친 후 아빠의 말을 정확히 따라 하는 아이의 얼굴이
그렇게 밝을 수가 없었다. "아빠! 소리가 들려요! 아빠 소리가 들려요!"
아이를 안고 울었다. 아내도 고개를 돌린다. 내 아버지도 내가 다쳤을
때 이렇게 가슴이 아팠으리라. 그러나 아들이 이렇게 재기하고 살고
있는 모습을 보지도 못하고 하늘나라에 가셨으니... 돌아가신 부모님이
엄청 보고 싶었다.

녀석을 밖으로 데리고 와 이 소리 저 소리를 물어 본다. 지나가는
전철 소리, 자동차 소리, 웃는 소리... 모두 들을 수 있단다. 모두 들린
단다. 너무나 감사했다. 하나님께 감사했고, 지인에게 감사했고,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고 염려해 준 모든 분들께 감사했다. 다시 진료실로 들
어가 마무리 작업을 하고 보청기 값을 지불하고 집으로 돌아오며 아내
와 나는 작은 목소리로 아들을 불렀다. 대답을 한다. 평상시 같으면 듣
지 못하고 자기 일만 하던 녀석이 대답을 한다. 너무나 좋았다. 조금
가다 또 준열이를 불러 본다. 아들의 대답이 우렁차다. "아빠! 잘 들려
요~!"

아들아...
아빠는 널 듣지 못하는 아이로 만들었지만 하나님과 어느 고마운
분은 너를 들을 수 있게 해 주었단다. 항상 감사하며 살아가자구나. 언
젠가는 그분을 만날 수 있으리라 아빠는 믿는단다. 준열아, 네가 듣지
못하고 살았을 때의 답답함을 알고 있을거야.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듣
지 못하는 사람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으리라 믿는단다. 아
빠의 바램은 상대방의 마음에서 나오는 소리도 들을 수 있는 맑은 영
혼의 준열이가 되기를 기도한단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준열이도 수
화를 배웠으면 해... 아빠는 초급반만 마쳤는데 다 까먹었다. 다시 시작
해야겠어... 그게 사랑이란 걸 깨달았어. 사랑한다 아들아....
2001.2.21
부천에서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