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꽃보다/사랑하는 아들아

[아들아... 208] 설, 그리고 유년의 추억

자오나눔 2007. 1. 15. 13:12
본격적으로 설 연휴가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에는 큰 명절이 추석하고 설이 있는데 추석은 풍요로움이 있기에 넉넉해서 좋고, 설은 희망이 있어서 좋다. 특히 설에는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희망이 있다. 아이들은 설빔을 입고 세뱃돈을 받는다는 희망이 있어서 좋고, 어른들은 새해에는 더 좋으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어서 좋다. 우리들의 삶에서 희망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들의 삶을 지탱해 주는 것은 희망이라는 서투른 결론을 내려본다.

화목보일러에 나무를 넣고 온 아들녀석의 얼굴이 시커멓게 변해 있다. 아궁이를 열고 나무를 넣던 손으로 얼굴을 만졌는가 보다. 올해 중학생이 되는데 여전히 어리기만 하다. 녀석의 얼굴을 보며 유년의 추억 속으로 들어가 본다. 평소 목욕을 잘 안 하던 아이들이지만 설이 가까워 오면 어김없이 목욕을 했었다. 깨끗하게 한 다음에 새해를 맞이해야 한다는 어르신들의 가르침도 한몫을 했다. 아궁이에 나무를 때서 음식을 익히던 시설이라 목욕물도 당연히 장작을 태워서 데워야했었다. 소여물을 삶아주던 가마솥을 깨끗하게 청소한 다음에 마을 큰 샘에 가서 물을 길러 온다. 열심히 나무를 아궁이에 집어넣고 물이 팔팔 끓으면 커다란 통에 더운물을 붓고, 거기에 찬물을 섞어서 사용했던 기억이 새롭다. 등을 닦아주던 어머님의 손길이 한없이 좋기만 했던 유년의 추억이 있다.

아들에게 목욕을 하라고 했더니 아빠랑 함께 하자고 한다. 오전에 했다고 하니 그래도 하자고 한다. 녀석은 아빠랑 목욕하는 게 좋단다. 아빠가 거품이 가득한 타월로 온 몸을 구석구석 씻어 줄 때가 좋단다. 아빠의 추억처럼 녀석도 추억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욕조에 물을 받아 놓고 내가 먼저 들어갔다. 따끈하게 찜질을 하고 싶어 물을 뜨겁게 만들어 놓고 온몸을 담근다. 파김치처럼 기운 없던 몸이 기운을 차리고 있다. 녀석에게 빨리 들어오라고 했더니 안뜨겁냐고 묻는다. 아빠는 좋다고 했다. 그랬더니 발을 조심스럽게 넣다가 얼른 뺀다. 그러면서 하는 말, “아빠 맞아요?”한다.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녀석아 너도 나이 먹어봐라 뜨거운 물 속에 몸을 담그고 있을 때의 기분을 알게 될 거다. 좁은 욕조 안에 함께 들어가 장난을 친다. 아빠에게 거품 가득한 타월을 건네주는 녀석, 머리부터 발끝까지 골고루 씻어주니 기분이 좋은가 보다.

목욕을 마치고 녀석과 설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다. 아들이 생각하는 설과 아빠가 생각하는 설은 조금 달랐다. 아들에게는 세뱃돈이 먼저 떠올랐고, 아빠는 돌아가신 부모님과 가족들이 먼저 떠올랐다.

아들 손을 잡고 이야기를 해 준다. 추워서 추석이고, 서러워서 설이란다. 진짜로 추석이 춥겠는가만 외로움이 넘쳐서 추위로 변해 버렸고, 외로움이 넘쳐서 서러움으로 변해 버렸단다. 모두가 넉넉하다면 오죽 좋겠는가...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돌아 봐야할 이웃은 우리 주위에 참 많다는 것을 아들에게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아빠를 바라보는 아들의 표정이 묘하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은가 보다. 그러나 머지않아 아빠의 마음을 이해하고 열심히 나누며 살아갈 아들의 모습을 그려보며 손바닥을 마주쳐 본다. 파이팅!!!

2005. 2. 6

‘봉사는 중독되고 행복은 전염되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