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꽃보다/사랑하는 아들아

[아들아...209] 2005년 2월 18일.

자오나눔 2007. 1. 15. 13:12
사람들에게는 여러 가지 기념일이 있다. 생일, 백일, 결혼기념일 등,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기념일이 될 것이다. 나에게도 여러 가지 기념할만한 날이 있다. 그 중에 자식에 관한 기념일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아이가 태어나던 날, 옹알이하던 날, 첫발을 떼던 날, 유치원에 가던 날, 초등학교 들어가고 처음으로 학부형이 되던 날 등, 많은 날이 있다.

2005년 2월 18일.
이날은 내게 잔잔한 감동이 있었던 날이다. 아들 준열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한 날이다. 단순한 졸업의 의미보다 그 졸업식에 참석했던 아내와 딸, 그리고 나, 이렇게 네 명이 작은 행복을 느꼈던 날이기에 더 기억에 남을 것이다. 이번 설에는 고향에 내려가지 않고 집에서 보냈었다. 그때 부천에서 살고 있는 딸도 집에 와서 설을 지냈고, 설날 아침엔 아들 준열이와 함께 딸 두리도 우리 부부에게 세배를 했었다. 우리부부가 재혼한지 7년, 그 동안 자주 찾아오지 못했던 딸은 이번 설에 딸 노릇을 톡톡하게 해 주었다. 아내를 도와 설음식도 장만하고 잠시 틈을 내어 양로원에 봉사도 따라갔다 왔다. 설날 아침에 식사를 하기 전에 아이들로부터 세배를 받았다. 아내는 25년 만에 처음으로 딸에게 세배를 받아 보았다며 감격하기도 했었다. 그때 준열이 졸업 이야기가 나왔고 가족이 모두 참석하여 축하를 해 주기로 했었다.

아침에 준열이를 먼저 학교에 태워주고 온 아내는 집안일을 해 놓고 차에 오른다. 나와 딸도 함께 탔다. 학교 앞에 꽃을 파는 상인이 없어서 학교 앞에 나를 먼저 내려놓고 아내와 딸은 꽃을 사기 위해 남양으로 차를 달린다. 나는 학교에 들러서 교문부터 운동장 교실 등을 카메라에 담는다. 내게는 소중하지 않을지라도 아들에게는 소중한 추억이 될 학교이기 때문이다. 교문에 걸려있는 현수막에는 마도 초등학교 67회 졸업을 축하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67회라니……. 사람나이로 환갑이 지났다. 대단한 전통이다. 씨랜드의 참사가 있었던 학교라 방송에도 오르내렸던 학교이지만 녀석에게는 소중한 학교라는 것을 안다. 사진을 찍다가 식장으로 이동을 했다.

졸업식이 순서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순서지를 보니 낯익은 이름이 보인다. '양준열'이라는 이름이 수상자 명단에 있다. '봉사상'을 받는다고 써 있다. 맨 아래에는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 명단도 나왔다. 거기에도 아들의 이름이 보인다. 그래서 녀석이 상을 두 개 받는다고 나에게 미리 귀띔을 해 주었던가 보다. 아빠 엄마가 하는 일이 나눔의 사역이라 자연스럽게 녀석도 봉사의 삶이 접목되었다. 녀석은 다섯 살 때부터 소록도 봉사를 따라다녔다. 그러다 보니 장애인이나 노약자를 만나도 거부감을 나타내지 않는다. 감사하다. 장학생으로 선발 된 것은 공부를 잘해서 된 것은 아니리라. 아이에게 용기를 주려는 선생님들의 배려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감사하다.

녀석이 태어나 지금까지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2.7Kg의 작은 아이로 태어났고, 100일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빠가 화재로 심한 화상을 입고 투병생활을 하게 되고, 14개월 되었을 때 친 엄마는 녀석을 놀이방에 맡겨놓고 가출을 해 버렸던 아픔이 있다. 아빠의 투병생활로 녀석에겐 신경을 덜 쓰다보니 중이염으로 양쪽 청각을 상실해 버린 아이. 녀석에게 아빠 입 모양을 보고 말을 배우게 했던 순간들, 한글을 제대로 배워야 한다며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매일 일기를 쓰게 했고, 빼먹은 날은 종아리를 맞아야 했던 녀석. 아빠가 장애인이라고 친구들이 놀린다며 함께 걷기를 꺼려하던 녀석. 아빠가 재혼을 한 덕분에 새로 생긴 누나에게 "나는 엄마께 엄마라고 하는데 누나는 왜 아빠께 아저씨라고 해?"라며 질문을 하던 녀석. 녀석을 위해 참 많은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었고 앞으로도 평생을 녀석을 위해 눈물의 기도를 드려야 할 의무가 부모에게 있다는 것을 잘 안다.

돌이켜 보면 지나온 순간순간들이 감사의 조건이었다. '자식은 부모의 눈물을 먹고 자라고, 부모는 내 눈물 먹고 자라는 아이를 보며 행복해 한다.'는 말이 있다. 아내도 딸을 위해 남모를 눈물을 많이 흘렸다는 것을 안다. 이젠 혼자 흘려야 할 눈물이 아니다. 우리 부부가 하나님께 함께 흘려야 할 감사의 눈물이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남모르게 흘렸던 아픔의 눈물, 서러움의 눈물이 이제는 감사의 눈물, 기쁨의 눈물로 변할 것이며, 더욱 행복한 가정이 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멀지 않은 날에 딸아이도 시집가 가정을 이룰 것이고, 준열이도 어른이 되어 가정을 이룰 것이다. 하나님의 귀한 선물 손자 손녀도 태어날 것이다. 그때 명절엔 집안이 제법 떠들썩하겠다. 우리 부부는 그때도 봉사하는 삶을 살고 있을 것이며, 꿈을 꾸며 살고 있을 것이다. 가족은……, 가정은 꿈을 꾸며 그 꿈을 이루게 하는 소중한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2005. 2. 21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