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꽃보다/사랑하는 아들아

[아들아… 210] 뭐~ 공부는 대~충~ 해서…….

자오나눔 2007. 1. 15. 13:13
정말 힘들었던 며칠이었다. 학교에서 시험을 본다기에 아들에게 공부를 더 하라며 안달을 하는 아내. 자정까지 암기해 오라고 하니 이 녀석이 자정 무렵에 옷을 입고 집을 나가 버렸다. 워낙 공부는 취미가 없는 녀석이라 힘이야 들었겠지…….

녀석이 태어날 때 워낙 약하게 태어났기에 건강하게 자라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살았는데, 친엄마가 병원에서 투병생활하고 있는 나는 병실에, 녀석은 놀이방에 맡겨 놓고 가출을 해 버렸고, 그 것이 친엄마의 마지막이었었다.
그 후로 내가 투병생활을 마치고 비록 지체1급 장애인이라는 훈장은 달았지만, 예수를 만나고 선교회를 조직하여 소록도 봉사를 다니며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되었고, 녀석은 엄마로 알고 잘 지냈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어느 날 내게 조용히 묻는데 친엄마는 왜 우리를 버리고 갔느냐고 하는 것이다. 어떻게 알았느냐고 했더니, 아빠가 TV에서 ‘이것이 인생이다’에 나온 것을 동영상으로 만들어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것을 봤단다. 사실대로 말해 줘야했다. 아들이 귀가 안 들려 청각장애인이 된 것도 아빠의 투병생활 때문에 신경을 써주지 못해서 그렇게 되었다는 것도…….

그래도 녀석은 씩씩하게 잘 자랐다. 공부하는 것을 강요하지 않았던 아빠 탓이 크겠지. 녀석은 공부에는 담을 쌓았다. 아내는 이제 중학교에 들어갔으니 공부를 해야 한다며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공부를 시켜 보려고 했었다. 학원에서조차 녀석이 잘 듣지 못해 수업진도가 나가지 않아 더 이상 가르칠 수 없다고 통보가 왔을 때는 속도 많이 상해했었다. 그러다 직접 녀석을 가르치게 되었고, 보람이 있어서 중학교 들어가 처음 본 수학시험에서 60점을 받아왔었다. 칭찬과 격려를 하며 열심히 가르치는데 녀석이 집을 나가버린 것이다. 시골 산속에 있는 집에서 나갔는데 갈 곳도 마땅치 않았다.

집 나간 것을 뒤 늦게 알고 온 동네를 찾아 다녀도 찾지를 못하고, 나는 집으로 돌아오고 아내는 차로 한 바퀴 더 돌아보고 오겠다며 나가더니, 새벽 1시를 넘겨서야 다른 집 언덕에 웅크리며 앉아서 자고 있는 녀석을 발견하여 차에 태우고 왔다.
집으로 데려와 보니 겁이 잔뜩 들어 있기에 마음약한 애비는 몇 마디로 주의를 시키고 “반성문 써다가 엄마께 드리라”고 하고…….
이럴 때 아빠가 제대로 혼을 내 줘야 엄마가 아들 대하기가 훨씬 수월한데 그렇게 못하는 남편에게 바가지. 바가지의 도가 지나치기에 나도 모르게 인상이 일그러진다. 그러다 무심코 “당신이 그러니까 애가 더 그러지…, 혼내는 것만 최곤줄 알아?” 마음상한 말을 던져버린 나눔.

그 후로 집안은 찬바람이 거세게 몰아치고, ‘이게 사람 사는 것인가…….’ 하는 회의도 들며 참 힘들었다. 내가 힘들 때 아내와 아들은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에, 아내에게 사과를 해도 아내의 화는 풀릴 기미가 안 보인다. 그래도 일은 해야 하기에 일에 열심히 매달린 덕분에 시간은 잘 지나갔고, 준열이도 잘 협조를 해 줘서 살얼음 같은 분위기는 점점 좋아지고, 아내를 달래고 달래서 냉전은 벗어났다.

다른 일로는 다툴 일이 없는데, 자식 교육 문제로는 의견 대립이 자주 일어난다.
나는 “공부가 전부는 아니다.”
아내는 “그래도 어느 정도는 해야 한다. 당신이 배우지 않았다면 이런 일을 해 나갈 수 있겠느냐. 공부는 해야 한다.”
그럴 때마다 속 좁은 남편이 되어 집안 분위기만 엉망으로 만드는 남편이고 아빠다. 녀석이 스스로 공부를 하여 엄마 마음을 편하게 해 주면 좋겠구먼……. 요즘은 녀석과 대화를 자주한다. 해봐야 잔소리를 하는 정도지만 그래도 해야겠지?

공부…….
아들아~ 공부를 뭐~ 대~충~ 하더라도 검정고시 합격점수는 받아야지!
아무튼 파이팅이다.

2005. 4. 14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