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꽃보다/이것이 인생이다

[간증] 주님, 아픈만큼 은혜받게 해 주세요...15

자오나눔 2007. 1. 15. 21:23
     1994. 5. 7.

     1인 실로 옮긴지도 벌써 몇 달이 지나  해가 바뀌었다. 생
   각을 해 보니  누워서 대 소변을 받아  낸 지는 1년이 넘었
   다. 목련이 피었고, 라일락이 피었고,  어느새 장미까지 피었
   다는 소식들이 들린다.  문병 오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가볍
   게 변한지도 벌써  오래다. 밖으로 나가서 자연의  냄새라도
   맡아보고 싶고, 다른 병실로 마실도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
   하다. 그 마음을 이기지 못해 간병인  아줌마께 휠체어를 타
   고 병실을 벗어나 보고 싶다고 했더니 팔짝 뛴다.

     그 모습을 보며 간병인 아줌마께 이렇게 말했다. "아줌마!
   탄광에서 탄을 캐던 광부가 갱도가 무너져 갇힌지 벌써 5일
   이 됐습니다. 수통에  물이 떨어져 자기 소변을  받아먹으며
   구조를 기다리다 지쳐서,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는 상
   태에서 가장 갈망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가족을 보고  싶은
   것도 아니오, 회사가 걱정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 무
   너진 갱도에서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밖으로  나오
   면 물도 마실 수 있고 가족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저의 처지가  그 광부와 같습니다.  걸어다니고 사회생활 하
   는 것은 차후의 문제입니다. 우선 휠체어라도  타고 밖을 한
   번 구경하고 오는  것이 지금 제가 가장  바라는 것입니다."
   말하는 내 목소리가 잠겨 온다.

     간병인 아줌마는 조용히 나가더니 빈 휠체어를 끌고 오면
   서 다른 병실에  있는 보호자 한 분을 불러온다.  그리고 환
   자복을 입혀 준다. 정말 오랜만에 입어 보는 환자복이다. 다
   리에 매달려 있는 추를 떼어 내고 두 사람이 조심스레 들어
   서 휠체어에 앉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렇게 타고 싶었던
   휠체어였지만 기쁨보다 고통이 먼저  찾아온다. 일그러진 두
   뺨 위로  고통의 눈물이 흐르고  있었고, 채 병실을  벗어나
   보지도 못하고 침대에 뉘어져야 했다.

     휠체어를 타면 밖을 구경할 수 있기에,  이 만신창이가 되
   어 버린 상태에서도 볼  수 있는 눈이라도 멀쩡하기에 감사
   했었다. 그런데 감사는 저 태평양 너머로  가 버리고 절망과
   슬픔만 가득 안고
     천장만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위로를 해주는  간병인
   아줌마의 말은 귀에도  안 들어온다. 아직도 휠체어는  나에
   게 무지개에 불과했다. 말은커녕  쳐다보는 것조차 징그러워
   병실에 들어오지 않는 환자들. 휠체어를 탈  수 있으면 내가
   찾아가 이야기라도 하고  싶었는데.... 그것은 나의 마음뿐이
   었다. 아직도  얼마를 더 누워  있어야 될는지....... 휠체어는
   언제 탈 수 있는 날이 올는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