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않을래요.
뭔가가 가슴에 감동을 줄 것만 같은 분위기가 무르익어 간다.
초반전은 우리들의 마음을 열어 놓기 위한 뜻이었는지, 강사 목사님의 우
스개 소리는 배꼽을 잡게 한다. 점점 분위기는 은혜가 넘치는 쪽으로 바뀌
어져 가고, 여기저기서, 아버지..., 주여....., 목매 인 소리들이 들려 오
기 시작한다. 목사님의 눈물어린 기도 소리는 우리들을 은혜의 늪으로 빠
지게 하고, 그 은혜의 늪 속에 빠진 우리는 나올 줄을 모르고, 성령 충만
함으로 가득 차 있다.
그 속에서 문?, 요즘 들어 눈물이 말라 가는 내 자신을 느낀다.
눈물을 흘리지 않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냐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눈물이
곧 은혜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주님께 눈
물로서 회개하고 난 다음의 그 후련함. 주님을 생각하며 주님이 내게 주신
넘치는 축복을 생각하며 감사함으로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주님과 가까워졌다는 것인데, 내가 흘린 눈물은 과연 얼마나
될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말하기가 부끄러울 뿐이다.
한 때는 우는 것이 남우세스럽다는 생각도 했었다. 우는 게 싫어서 아니
주님 전에 나오면 울기만 하는 내 자신이 싫어서, 주님 전에 나오는 것에
망설이곤 했었다. 그래도 울어야만 했었다. 그러나 요즘 눈물이 줄어드는
내 자신을 발견하곤 깜짝 놀란다. 그때보다는 말씀도 더 많이 들었고, 말씀
을 읽기도 더 많이 읽었고, 알기도 더 아는데 왜 눈물이 말라 갈까?
그때 그 눈물 뒤에는 찬송이 흘러나오고 감사함이 흘러 나왔는데 왜 이럴
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내 자신의 유익만을 생각하고 있는 나의 모
습, 교만에 가득 차 있는 내 모습, 가식 투성인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견디기 힘든 시련 속에서는 오히려 눈물의 찬송을 할 수 있었는데, 조금
견딜만하니까 점점 주님을 멀리하려고 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곤 나를 꾸짖
어 본다. '너 라는 인간은 그 정도밖에 안되니?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 내
는 그런 기회주의 자 였니? 단것이 독이 되고 쓴 것이 약이 된다는 사실
을 알기나 하니? 라고, 날마다 울어도 부족한데 그 조금 울었다고, 그 만
큼 울었으면 됐다고? 이제는 그만 울겠노라고? 웃기지 말아!' 그렇다.
어찌 몇 번 은혜 받았다고 해서 은혜 받기를 꺼려해서 되겠는가. 울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인데, 우리를 빛 가운데서 살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어찌 우리가 우는 것을 꺼려해서 되겠는가.
오늘도 나는 내 자신을 채찍질해 본다. 날마다 우는 것을 생활화하자. 우
는 것이 은혜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울 때가 은혜 받았을 때라는 것을
느꼈었다면.....
주님을 부인하며 세상 향락만을 쫓아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나의 그 모습을 안타까워하던 누나는 나에게 주님을 알게 하려고 부단한
노력을 했었다. "지금도 주님은 너를 애타게 기다리고 계신단다.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예수를 믿어라."라고 할 때마다, 나의 비아냥거리는 소리는
그칠 줄을 몰랐다.
"헛소리 말고 누나 나 열심히 믿으쇼."
그럴 때마다 누나는 안타까움에 눈물로써 기도를 하고 있었다.
철저한 무신론자로서 내 자신만을 믿어 왔던 내가, 어느 날 기다림에 지친
주님께서 매 질을 하였을 때도 깨닫지 못하고 저주만 하였었다.
"너를 크게 쓰시려고 주님을 알게 하려고, 이렇게 만드셨을 꺼야. 전능하
신 하나님께서, 쇠 풀무에서 나오는 정금같이 너를 귀하게 쓰실 거라"는
누나의 말씀을 듣는 순간, 내 입에서는 악담이 나오고 있었다.
"나를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신 하나님이라고? 헛소리하지마! 나를 사랑하
면 이렇게 만들어 놨겠어?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을 지언정, 혀 깨물고
죽을 지언정 예수는 안 믿어!" 그렇게 주님을 부인하던 내가 내 스스로는
숟가락 하나도 들을 수 없고,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살이 썩어 들어가도 그저 보고만 있을 정도로 약해지고 초라해졌을 때,
어릴 적 시골 예배당에 친구 따라 가서 들었던 찬송가가 생각났다.
[낮에나 밤에나 눈물 머금고, 내 주님 오시기만 고대합니다.........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마루 바닥에 무릎을 꿇고 눈물의 찬송을 부르던, 늙은 할머니의 모습이
커다란 영상이 되어 나의 뇌리를 스치고 있었다.
나는 점점 주님의 품안으로 안겨 가고 있었다.
이어집니다.......
뭔가가 가슴에 감동을 줄 것만 같은 분위기가 무르익어 간다.
초반전은 우리들의 마음을 열어 놓기 위한 뜻이었는지, 강사 목사님의 우
스개 소리는 배꼽을 잡게 한다. 점점 분위기는 은혜가 넘치는 쪽으로 바뀌
어져 가고, 여기저기서, 아버지..., 주여....., 목매 인 소리들이 들려 오
기 시작한다. 목사님의 눈물어린 기도 소리는 우리들을 은혜의 늪으로 빠
지게 하고, 그 은혜의 늪 속에 빠진 우리는 나올 줄을 모르고, 성령 충만
함으로 가득 차 있다.
그 속에서 문?, 요즘 들어 눈물이 말라 가는 내 자신을 느낀다.
눈물을 흘리지 않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냐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눈물이
곧 은혜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주님께 눈
물로서 회개하고 난 다음의 그 후련함. 주님을 생각하며 주님이 내게 주신
넘치는 축복을 생각하며 감사함으로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주님과 가까워졌다는 것인데, 내가 흘린 눈물은 과연 얼마나
될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말하기가 부끄러울 뿐이다.
한 때는 우는 것이 남우세스럽다는 생각도 했었다. 우는 게 싫어서 아니
주님 전에 나오면 울기만 하는 내 자신이 싫어서, 주님 전에 나오는 것에
망설이곤 했었다. 그래도 울어야만 했었다. 그러나 요즘 눈물이 줄어드는
내 자신을 발견하곤 깜짝 놀란다. 그때보다는 말씀도 더 많이 들었고, 말씀
을 읽기도 더 많이 읽었고, 알기도 더 아는데 왜 눈물이 말라 갈까?
그때 그 눈물 뒤에는 찬송이 흘러나오고 감사함이 흘러 나왔는데 왜 이럴
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내 자신의 유익만을 생각하고 있는 나의 모
습, 교만에 가득 차 있는 내 모습, 가식 투성인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견디기 힘든 시련 속에서는 오히려 눈물의 찬송을 할 수 있었는데, 조금
견딜만하니까 점점 주님을 멀리하려고 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곤 나를 꾸짖
어 본다. '너 라는 인간은 그 정도밖에 안되니?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 내
는 그런 기회주의 자 였니? 단것이 독이 되고 쓴 것이 약이 된다는 사실
을 알기나 하니? 라고, 날마다 울어도 부족한데 그 조금 울었다고, 그 만
큼 울었으면 됐다고? 이제는 그만 울겠노라고? 웃기지 말아!' 그렇다.
어찌 몇 번 은혜 받았다고 해서 은혜 받기를 꺼려해서 되겠는가. 울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인데, 우리를 빛 가운데서 살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어찌 우리가 우는 것을 꺼려해서 되겠는가.
오늘도 나는 내 자신을 채찍질해 본다. 날마다 우는 것을 생활화하자. 우
는 것이 은혜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울 때가 은혜 받았을 때라는 것을
느꼈었다면.....
주님을 부인하며 세상 향락만을 쫓아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나의 그 모습을 안타까워하던 누나는 나에게 주님을 알게 하려고 부단한
노력을 했었다. "지금도 주님은 너를 애타게 기다리고 계신단다.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예수를 믿어라."라고 할 때마다, 나의 비아냥거리는 소리는
그칠 줄을 몰랐다.
"헛소리 말고 누나 나 열심히 믿으쇼."
그럴 때마다 누나는 안타까움에 눈물로써 기도를 하고 있었다.
철저한 무신론자로서 내 자신만을 믿어 왔던 내가, 어느 날 기다림에 지친
주님께서 매 질을 하였을 때도 깨닫지 못하고 저주만 하였었다.
"너를 크게 쓰시려고 주님을 알게 하려고, 이렇게 만드셨을 꺼야. 전능하
신 하나님께서, 쇠 풀무에서 나오는 정금같이 너를 귀하게 쓰실 거라"는
누나의 말씀을 듣는 순간, 내 입에서는 악담이 나오고 있었다.
"나를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신 하나님이라고? 헛소리하지마! 나를 사랑하
면 이렇게 만들어 놨겠어?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을 지언정, 혀 깨물고
죽을 지언정 예수는 안 믿어!" 그렇게 주님을 부인하던 내가 내 스스로는
숟가락 하나도 들을 수 없고,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살이 썩어 들어가도 그저 보고만 있을 정도로 약해지고 초라해졌을 때,
어릴 적 시골 예배당에 친구 따라 가서 들었던 찬송가가 생각났다.
[낮에나 밤에나 눈물 머금고, 내 주님 오시기만 고대합니다.........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마루 바닥에 무릎을 꿇고 눈물의 찬송을 부르던, 늙은 할머니의 모습이
커다란 영상이 되어 나의 뇌리를 스치고 있었다.
나는 점점 주님의 품안으로 안겨 가고 있었다.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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