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꽃보다/이것이 인생이다

[간증] 주님, 아픈만큼 은혜받게 해 주세요...39

자오나눔 2007. 1. 15. 21:44
   원종 사거리에서 자리를 잡고 전도지를 돌리기 시작 한지도 벌써
   몇 달이 지났다.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30분이면  어김없이 전도
   지를 가지고 나가서  돌리고 있었는데, 거기 원종  사거리에는 떡
   파는 할머니가  터줏대감 노릇을  하고 있었다. 전도지를  돌리다
   보면 사람들이 전도지를  받기 싫어서 돌아 가  버리거나, 물건들
   도 구경치 않고 그냥  가 버리기에 장사하는데 신경이 쓰일 만도
   하다.
 
   그러나 할머니도 노점상이었고, 우리도 날마다  가는 것이 아니고
   매주 토요일  오후에만 그 자리를 우리  목양교회 자리로 만들어
   왔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뻔뻔스러워져 갔다.  올 때마다 핍박하
   시는 할머니께 웃음으로 대할 수 있는 여유도  생기게 되었다. 그
   모습이 미워 보였던지 할머니는 아예 노골적으로 다른 곳으로 가
   서 돌리라고 하신다. 못 들은 척은 하지만 속으로는 별로다.
   단지 성령님의 역사가  할머니께 임하셔서 전도지를 돌릴  때, 웃
   으면서 돌릴 수 있도록 만들어 달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
   러면서 전도지를 들고만 있으면 사람들이 와서 한 장씩 가져가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우스운 상상을 해 보기도 한다.
   언젠가 간증을 들으니까 한 유명한 장로님이 노방 전도를 나갔다
   가 지나던 행인들이 오히려 전도지를 돌리고, 술  취한 취객이 전
   도하는 역사가 일어남을 체험했다고 하던데.....
 
   오늘은 같이 돌리던 이  집사님이 몸이 아파 나오지 못해 혼자서
   사거리로 나갔다. 날씨는 엄청  더웠다. 모두들 피서를 갔는지 길
   가는 행인들도 별로 없다. 더위에  지쳐서인지 전도지를 건네주는
   손이 부끄럽게 그냥 지나쳐  버린다. 몹시 힘이 든다. 마음속으로
   기도를 해본다. "하나님 아버지여! 전도지를 다 돌리지 못해도 좋
   으니 받아 가는  전도지 버리지나 않게 해 주시옵고, 단  한 명이
   라도 좋으니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 주님을 영접하는 역사가 일어
   나기를 원합니다."하며 계속 전도지를 건네준다.
 
   한참을 돌리고  있는데 떡  파는 할머니께서  내게 다가오시더니
   "오늘은 왜 혼자서 돌리냐"며  말을 건넨다. "사정이 있어서 혼자
   만 왔다"고 했더니 전도지를  달란다.  '주님! 이것은?' 뭔가가 가
   슴으로 전해 옴을 느낀다. 말없이 웃으며 전도지를  한 장 건네주
   었더니 많이 달란다.  의아해 하는 나의 표정에  할머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떡 사러 오는 손님에게 끼워서 줄꺼여!" '아버지! 이
   게 무슨 일이래요? 그렇게 핍박하고 전도지는 줘도 받지 않던 할
   머님이 전도지를 돌려 주신데요. 유명한  장로님만 성령님의 역사
   를 체험한 것이  아니네요. 저에게도 이런 일을  체험하게 하시네
   요?? 감사합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한동안 전도지를 돌리지를 못하고,  할머님
   의 빛나는  얼굴을 보고 있었고 성령님이  함께하시는 그 모습에
   끝내 두 눈에서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평일에는 집에서 쉬어야만 했다.
   그래도 몸 상태가 많이  좋아져서 준열이와 같이 있는 시간이 많
   아졌다. 준열이와 놀다가 화장실을 다녀오니, 준열이는 침대 위에
   다 한 상 가득히  잘 차려 놨다. 화채 그릇 네 개와  수저와 젓가
   락을 세 쌍을 놨다. 나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하더니 기도를 하라
   고 하며 "아빠! 아멘!"을 한다.
   어쩌나 보려고  기도를 했더니 기도가  다 끝난 뒤 아멘을  한다.
   그러더니 "아빠  모거(먹어)"하며 빈 그릇을 밀어  주더니 젓가락
   을 집어준다. 먹는 시늉을 했더니 "마이찌?(맛있지) 마이찌?"하며
   물어 본다. 한참 있다가  빈 그릇을 가지고 베란다로 간다. 빈 그
   릇에 무얼 담는  시늉을 하더니 그릇을 가지고 와 "아빠  모거(먹
   어)"하며 더 먹으란다.
   배불러 못 먹겠다고 했더니 웃으며 그릇과 수저 젓가락을 찬장에
   넣는다. '준열아, 고맙다,  네가 차린 상에는 빈  그릇 뿐이었지만,
   어느 진수성찬  산해진미보다 더 값진 상이었단다.  근데 준열아!
   사람은 우리 둘 뿐인데, 수저와 젓가락은 왜 한 벌 더 놨니?'
   눈물 대신 은혜로  받아들이고 우리를 사랑하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몸은 비록 만신창이  되어 혼자서는 마음대로 외출  한 번 할 수
   없는 상태지만,  주님을 부인하던 이  입술에서 주님께 회개하며,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찬양을 하게 되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찬양하는데 소홀하지 않으리라고 다짐을 하면서도 육신의 고통을
   핑계삼아 찬양하는데 소홀  하는 것을 정당화하려는 나를 발견하
   곤 했다. 정말  가증스러운 일이었다. 그럴 때 나는,  나의 입술에
   서 나오는 찬양을 듣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집사님 한 분의 고백
   을 듣는 순간 또 다시 깨어져야 했다.
 
   흔히 말하는 대로 나에게  남는 것은 시간밖에 없었기에 읽을 줄
   도 모르는 악보를 뒤적이며 복음성가를  배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어린 조카들의  도움을 받아 가며 새로운  곡을 배우고 연습하고
   또 연습하기를 몇 번.... 식사를 하고 가면 찬양을 부를 때 트림이
   나올까 봐 빈속으로 휠체어를 타고 예배당으로 달려간다.
 
   누나의 도움을 받아야만 갈  수 있었던 내가 비록 휠체어를 타고
   가는 것이지만, 혼자서라도 갈 수 있다는 기쁨에  조금 일찍 출발
   을 했다. 예배당을 가는 길은 나에게는 멀고도 험하기만 했다. 하
   수도 공사를 한답시고 도로를  온통 파 놓아 장애물이 너무나 많
   았다. 그렇지만 나를 위해 멀고도 험한 길을  가신 예수님을 생각
   하며, 다시 길을 재촉했다. 옷은 벌써 땀으로  다 젖어 버렸다. 휠
   체어를 탈수 없는 좁은 길에서는 부축을 받기도  하며, 어쩔 때는
   혼자서 한쪽 발로 뛰어 가기도 했다. 그럴  때는 정말이지 두발로
   걸어다닐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한쪽 발로라도 뛰어갈 수 있게 하심에 감사드린다.
   한쪽 발로 뛰어  예배당을 향해 갈 때는  내 몸이 날아가는 듯한
   기분을 느끼곤 했다. 그 기분을 누가 알까?  힘든 만큼 보람이 있
   다고 누가 말했는지는  모르지만 수긍을 할 수가  있었다. 어렵게
   도착해 예배당 안으로 들어서니 얼마나 포근함을 느낄 수 있었던
   지....
 
   핍박을 받고도 예배드리러 오신 집사님의 얼굴이 왜 그렇게 편안
   하게 보였는지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친정집에  갔다
   온 딸의 모습처럼 얼마나 기쁨이 넘치는 지를 이제야 알 것 같았
   다. 예배당에 가려고만 하면 어려움이  닥쳐서 망설여진다고 하시
   지 마시고 용기를 한 번 내 보시길 권하고  싶다. 그리고 그 어려
   움을 헤치고 예배당으로  와 보시길 바란다. 그대는  분명히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님의 품속같이  포근하게 느껴지는 예배당의
   참모습을.....

   이어집니다....